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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행방묘연…모즈타바는 어떻게 이란 최고지도자에 올랐나 [더 비저너리-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

‘폭사’ 하메네이 차남, 전쟁속 새 최고지도자 올라
신변 노출 안해 “러시아서 수술” 등 추측 난무
트럼프도 “죽었는지 살아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이란 “건강한 상태서 모든 상황 통제중” 일축

혁명수비대·바시즈 인맥 업고 막후 실세 성장
동성애자 사생활·7000억대 부동산 재산 의혹
부친도 후계 반대…세습논란 속 전시권력 정점
중동전쟁 격화…미국과 종전 협상여부 주목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알자지라 캡처]

미국·이스라엘의 공습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진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2주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의 생존 여부와 실권 장악 여부를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생존설과 부상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뒤섞이며 이란 권력의 실체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16일(현지시간) 이란 내부 고위 인사의 음성 녹취를 인용해 모즈타바가 지난달 28일 테헤란 공습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보도했다. 미사일이 거처를 타격하기 직전 “무언가를 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고, 이후 폭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 공습으로 부친인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가족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지휘부가 사망했으며, 모즈타바 역시 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생존설과 달리 그는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지난 8일 이후 단 한 번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첫 성명은 국영 TV에서 여성 앵커가 대독했고, 신년(노루즈) 메시지 역시 성우가 대신 낭독했다. 영상 대신 과거 사진이나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이미지가 사용되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이 같은 상황은 내부 조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내에서는 모즈타바를 두고 ‘골판지 아야톨라(cardboard ayatollah)’라는 표현이 확산하고 있다. 실체 없는 지도자라는 의미다. 온라인에서는 얼굴 사진을 붙인 종이 인형을 찬양하는 영상까지 퍼지며 권위 훼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외부에서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새 지도자가 심하게 다쳤거나 죽었을 수 있다는 상반된 보고가 있다”고 언급했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역시 “왜 영상이나 육성이 아닌 서면 발표만 하느냐”고 지적했다. 반면 이란 측은 “경상을 입었지만 정상적으로 활동 중”이라고 반박했다.

실권을 둘러싼 의문도 커지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모즈타바를 전면에 내세운 뒤 실제 권력은 혁명수비대가 장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부 이란 대사관에서 그의 초상화조차 게시하지 않은 점도 이 같은 관측의 근거로 거론된다.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모즈타바가 실제로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혁명 가문에서 시작된 권력…성직자 집안의 아들

모즈타바가 이란 최고지도자로 선출될수 있었던 출발점은 바로 혈통이다. 모즈타바는 1969년 마슈하드에서 알리 하메네이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지난달 28일 미국의 공습으로 폭사한 알리 하메네이(86)는 37년간 신정체제의 정점에서 이란을 철권통치해온 인물이다.

모즈타바의 어린 시절은 부친이 팔레비 왕조에 맞서는 반(反)체제 성직자로 부상하던 시기와 겹친다. 알리 하메네이는 1970년대 중반 마슈하드에서 종교 수업을 이끌며 반정부 활동을 이어갔고, 사바크의 감시와 체포, 추방을 반복해서 겪었다.

PBS 분석에 따르면 모즈타바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체포와 가택 급습, 가족 전체가 정치적 압박에 놓이는 상황을 가까이서 경험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지자 하메네이 가문은 반체제 성직자 집안에서 곧바로 새 체제 핵심으로 이동했다. 혁명은 모즈타바 개인에게도 단순한 시대 변화가 아니라 권력 구조 한복판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준 사건이었다.

혁명 이후 가문이 테헤란으로 옮겨가면서 그는 혁명 엘리트 자녀들이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알라비 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종교 도시 콤으로 가 신학교 과정을 밟았고, 성직자 교육을 받으며 후계 구도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으로 부상했다. 다만 그의 종교적 위상은 아버지 세대의 거물급 아야톨라(성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꾸준히 따라다녔다. 즉 모즈타바는 교리와 학문만으로 떠오른 인물이라기보다, 종교적 외피와 권력 실무를 함께 축적한 유형에 가깝다.

직함 없는 권력…체제 심장부서 자란 ‘그림자 실세’

이라크 바그다드 미 대사관이 위치한 ‘그린존’으로 향하는 다리 인근에서 이라크인들이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모습. [AP]

그의 정치적 체질을 만든 더 중요한 토대는 전쟁 세대 경험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기 그는 바시즈 민병대와 혁명수비대 네트워크와 연결된 인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모즈타바가 혁명수비대(IRGC) 및 산하 바시즈와 깊은 연계를 쌓았고, 그 인맥이 이후 권력의 기반이 됐다고 전했다. 이란 체제에서 혁명수비대는 단순 군사조직이 아닌 안보, 경제, 대외정책, 국내 통제까지 관여하는 실질 권력 축이다. 모즈타바가 훗날 막후 실세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 조직과의 신뢰 관계 덕분이다.

1989년은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이슬람 공화국 창시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사망한 뒤 알리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에 선출되면서 모즈타바는 최고 권력의 아들이자 내부 참모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는 전면에 서기보다 최고지도자 사무실, 즉 ‘베이트’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넓힌 것으로 전해진다. 로이터는 그가 수십년에 걸쳐 아버지의 문지기이자 연결 고리 역할을 했고, 주요 보안 네트워크에 대한 통제력을 키워왔다고 평가했다.

이후 모즈타바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본격 부각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다. 특히 강경 보수 성향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부상하던 시기 그가 선거와 권력 재편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잇따랐다. 로이터는 모즈타바가 아마디네자드 지원과 연관된 인물로 자주 언급됐고, 공식 직함 없이도 배후 조정자로 인식됐다고 전했다. 2009년 대선 뒤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당시에도 그의 이름은 강경 진압과 연계된 인물로 자주 거론됐다. 대중 앞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체제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그림자처럼 등장하는 권력이라는 인식이 이 무렵 굳어졌다.

미국이 그를 공식 제재 대상에 올린 것도 이런 평가를 반영한다. 미 재무부는 2019년 모즈타바를 제재하면서, 그가 공직을 맡지 않았음에도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행동해왔고 “부친의 불안정한 지역 야망과 국내 억압적 목표를 진전시키는 데 관여했다”고 밝혔다. 이는 모즈타바가 더 이상 단순한 ‘후계자 후보’가 아니라 이미 체제 운영의 핵심 축이라는 미국의 판단을 보여준 사례다.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상속·충성·조정 능력으로 작동하는 비공식 권력의 전형이라는 의미도 담겼다.

‘동성애자’·‘7000억대 부동산’ 논란…정당성 시험대

하지만 그가 후계자로 거론될수록 한계도 분명해졌다. 첫 번째는 세습 논란이다. 이슬람 공화국은 왕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체제다. 그런 나라에서 최고지도자 자리가 부자 승계처럼 비쳐 보이는 것 자체가 정치적 부담이었다. 두 번째는 종교적 권위 문제다. 최고지도자는 단순한 국가원수가 아니라 시아파 종교 권위와 국가 권력을 함께 쥔 자리다. 모즈타바는 중견 성직자이긴 하지만, 전통적 기준에서 압도적 종교 권위를 갖춘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세 번째는 대중적 정당성의 취약함이다. 그는 존재감은 컸지만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모두가 이름은 알지만 대중 정치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권력이었다.

여기에 최근 사생활과 재산 관련 의혹까지 겹치며 논란은 확대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란의 새로운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미 정보당국의 기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의 부친인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역시 생전에 이 문제를 인지하고 아들의 후계 적합성을 우려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해당 정보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서방 정보기관 내부에서 그의 지도자 적합성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재산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유럽 정치 전문매체 유락티브와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영국·독일·오스트리아·스페인 등에 걸쳐 약 4억유로(약 6900억원) 규모의 부동산 자산이 모즈타바와 연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런던 고급 주택, 프랑크푸르트 호텔, 알프스 리조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자산은 이란 석유 수익을 기반으로 페이퍼컴퍼니와 해외 금융망을 거쳐 형성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블룸버그 역시 관련 자산의 실질 통제권이 모즈타바에게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순교서사 속 혁명수비대 신뢰 확보한 ‘몇 안되는 인물’

로이터는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대중에게는 여전히 낯선 인물이지만, 혁명수비대(IRGC)와 강경파 내부에서는 체제를 이어갈 수 있는 지도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미 정보당국 평가를 인용해 이란 정권이 붕괴하기보다 오히려 더 강경하고 군사화된 형태로 재편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혁명수비대가 있다고 분석했다. 모즈타바 체제는 결국 개인의 카리스마나 대중적 기반보다, 전시 상황에서 조직이 필요로 한 결과로 등장한 권력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그 배경에는 실제 치열한 내부 권력투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등극 과정이 이란판 ‘왕좌의 게임’에 가까웠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리 하메네이 사망 뒤 약 일주일간 이란 권력 핵심부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후계 구도를 놓고 맞붙었다. 자연스러운 승계처럼 보였지만, 생전 알리 하메네이가 제시한 잠재적 후계자 명단에 모즈타바는 포함되지 않았고, 온건파는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 하산 호메이니, 알리레자 아라피 등을 대안으로 검토했다는 것이다. 반면 혁명수비대는 아흐마디 바히디, 알리 아지즈 자파리,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호세인 타에브 등 강경파 인맥을 중심으로 모즈타바를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오른쪽)가 부친 알리 하메네이와 함께 있는 모습.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달 28일 미·이스라엘 군사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이후 모즈타바는 이달 8일 이란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AFP]

결국 전쟁이 권력의 추를 강경파 쪽으로 기울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란 성직자들과 권력 엘리트가 위기를 관리할 지도자보다 ‘순교’한 지도자를 대신해 ‘복수’할 지도자를 찾는 데 더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전문가회의는 보안 문제를 이유로 화상 투표를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모즈타바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이는 그의 부상이 단순한 세습이라기보다 전시 체제 속에서 혁명수비대와 강경 성직자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침묵 역시 단순한 건강 문제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시 체제에서 이란 권력의 핵심은 최고지도자의 공개 행보보다 국가 운영 시스템과 지휘 체계 유지에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란 측이 모즈타바가 경상을 입었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공개 노출 자체가 전시 지휘 체계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은 이런 공백을 체제 취약성의 신호로 읽고 있다. 같은 침묵을 두고도 전혀 다른 서사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모즈타바의 권력을 떠받치는 또 다른 축은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조직이다. 이란 최고지도자는 헌법상 국가 최고 권력자지만, 실제로는 군·정보·사법·종교 네트워크를 동시에 장악해야 한다. 로이터와 서방 정보당국 평가는 모즈타바가 오랜 기간 최고지도자 사무실을 통해 보안 네트워크를 관리하며 혁명수비대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온 인물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그가 체제를 바꾸는 개혁형 지도자라기보다 기존 권력 구조를 유지·관리하는 데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향후 이란 체제는 성직자 중심 공화국보다는 군사·안보기구 영향력이 더 강한 형태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전쟁 상황 속에서 보안기구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로이터도 혁명수비대가 이번 승계를 떠받친 핵심 세력이라고 전했다. 다만 체제가 안정적으로 굳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외부 전쟁이 장기화하면 지도자의 상징성과 실제 통치 능력 간 괴리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