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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비즈] EU의 규제 숨 고르기, 효율적 ESG로의 전환점


지난 2월 24일 유럽연합(EU) 이사회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을 간소화하는 ‘옴니버스 패키지 1’을 최종 승인했다. EU 집행위원회가 2025년 2월 26일 해당 법안을 제안한 이후 약 1년 만에 입법 절차가 마무리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ESG의 후퇴라며 우려하지만, 이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EU의 치밀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이번 개정은 기업 부담 경감에 방점을 뒀다. 우선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의 경우, 적용 대상 기준이 직원 수 1000명 초과, 순 매출 4억 5000만유로 초과로 대폭 상향됐다. 또한, 상장 중소기업은 적용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되며, 보고해야 할 데이터 포인트 또한 약 61% 감축돼 보고의 효율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CSDDD의 적용 범위도 대폭 축소됐다. EU 기업 적용 대상이 직원 수 5000명 및 전 세계 순 매출 15억 유로 초과(역외 기업은 역내 순 매출 15억 유로)로 한정되면서, 대상 기업은 기존 대비 약 70% 감소할 전망이다. 아울러 기후 전환 계획 수립 의무와 EU 차원의 민사책임 규정이 삭제되었고, 과징금 상한 역시 전 세계 순 매출의 5%에서 3%로 하향 조정되는 등 기업이 짊어질 리스크가 상당 부분 경감되었다.

이는 과도한 ‘그린 테이프(Green Tape·환경 규제로 인한 관료주의)’가 기업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EU가 규제 원칙을 고수하기보다 침체된 유럽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을 택한 것이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에게 ‘자발적 표준’을 초과하는 정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제한한 점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현실적 조치다.

그러나 규제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ESG 경영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EU의 이번 접근법은 방대한 데이터를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 기반 접근’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기업은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에 근거하여 ‘스코핑(Scoping)’ 절차를 통해 심각한 위험 영역을 우선 식별하고 관리해야 한다. 즉, 전체 공급망을 일일이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리스크에 자원을 집중하는 효율적인 이행을 요구받게 된 셈이다.

EU 시장을 공략하는 우리 기업들, 특히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 이번 조치는 규제 대응을 위해 투입하던 인력과 비용의 압박을 덜어주는 긍정적 신호다. 당장의 법적 강제성이 줄어들면서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규제가 완화되었다고 해서 시장의 요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최상단의 대기업과 투자자들은 법적 기준과 별개로 자체적인 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ESG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다. 시장은 법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고객사의 요구 조건은 여전히 유효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EU의 선택은 기업들에 ‘규제 준수’를 넘어 ‘전략적 효율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수동적으로 데이터를 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스스로 리스크를 선별하고 관리하는 능동적 역량이 중요해졌다. 지금의 변화는 ESG 경영을 중단할 신호가 아니라, 불필요한 거품을 걷어내고 내실 있는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다질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강지숙 코트라 브뤼셀 무역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