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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고환율’ 여파 국민소득 7.7%↓…올해도 ‘역성장 악몽’ 재연?

달러 국민소득 증가율 원화比 4.3%P↓
2022년 고환율에 국민소득 7.7%줄어
대만 1인당 4만585달러로 한국 앞서
올해 2% 경제성장 경로에도 ‘빨간불’
“중동사태 여파, 장기화 여부가 좌우”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중동 간 군사 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며 등락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사실상 ‘제자리걸음’한 데 이어 앞으로 중동 사태 장기화에 환율이 고공행진하면 올해는 4년 만에 ‘역성장’할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 2022년 이후 4년 만에 역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5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서 달러 기준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이 원화보다 4.3%포인트 낮았던 것도 지난해 고환율에 원화 가치가 절하된 영향이었다. 그 사이 지난해 대만의 1인당 GNI는 전년 대비 14.2% 늘어난 4만585달러로 한국을 앞질렀다. 김화용 한은 국민소득부장은“대만은 IT 제조업 비중이 우리보다 3배 높아서 반도체 수혜를 크게 입으며 성장세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관세 불확실성과 연말 수급 쏠림 현상 등에 연간 평균 환율(주간 종가 기준)은 1421.97원을 기록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1394.97원)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1276.35원)도 제치고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 환율은 안정세를 보였지만 지난달 말 중동사태가 발발한 이후 다시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월 월 평균 환율은 1456.28원, 1448.38원 등 하락세를 보이다 3월에는 여러 차례 1500원 선을 위협하며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9일까지 월평균 환율은 1476.46원까지 올랐다. 1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4.7원 내린 1470.8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지금 수준의 고환율이 이어진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지난 2022년처럼 1인당 국민소득이 역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22년 초 1200원(주간 종가 기준)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 올랐다. 9월 29일에는 연고점인 1439.9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한 달 넘게 1400원 초·중반대를 유지하다가 11월부터 하락 전환했다. 연평균 환율은 전년 대비 12.9% 급등한 1292.2원이었다.

그 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661달러로 전년(3만5168달러) 대비 7.7% 줄었다. 원화 기준 국민소득이 4.3% 늘었지만 급등한 환율이 이를 큰 폭으로 상쇄한 것이다. 두 지수의 격차는 12%포인트에 달했다.

반대로 2021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전년 대비 10.3% 늘어난 3만5168달러였는데, 원화 기준 증가율(7%)보다 오히려 3.3%포인트 높았다. 경기가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하는 동시에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180.01원에서 1144.61원으로 3%가량 떨어진 영향이었다.

김 부장은 “2014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이후 명목성장률이 4.3% 정도 된다”며 “앞으로 환율의 영향을 ‘0’으로 가정하면 오는 2027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동 사태에 경제 성장 경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반도체 호황에 내수 회복 등으로 경제 전망치가 2%로 상향됐지만 중동사태 이후 경기 하방 압력이 커졌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연평균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안팎으로 오를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최소 0.3%포인트 떨어지고 경상수지는 약 26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제유가가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에는 성장률과 경상수지가 각각 0.8%포인트 떨어지고, 797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주력 수출 상품인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한국 경제의 호황 정도가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반도체 수출 경기 자체가 타격을 받느냐가 현시점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관건은 유가 안정화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환율도 유가 흐름에 큰 영향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 9일 브렌트유 가격은 아시아 시장에서 배럴당 119.5달러까지 오르며 2022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장중 배럴당 119.48달러까지 고점을 찍었다. 다만 9일(현지시각) “이란 전쟁이 마무리 수순”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등에 뉴욕증시 마감 무렵 브렌트유와 WTI 가격은 각각 종가 대비 4.61%, 6.56% 떨어지며 배럴당 90달러를 밑돌았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원유 수입 의존도가 100%에 가까운 한국의 경우 유가 상승이 곧바로 수입액 증가로 이어진다”며 “실제로 2022년에는 원유 도입 단가 상승으로 수입이 큰 폭으로 늘면서 수출 증가분을 상쇄했고, 결국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종전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확전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유가가 다시 급등할 경우 국내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게 줄어들고 외환시장 불안도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부장은 “중동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됐다”며 “국내 성장이나 물가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 여파는 결국 현상의 장기화 여부에 크게 좌우된다”며 “애초 미 정부 예상처럼 조기 종료되면 올해 성장률이나 물가 영향은 그나마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