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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정 브릿지코드 M&A센터 전략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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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한 제조업 대표의 말이다. 30년 넘게 회사를 일군 창업자였다. 매출은 안정적이었고 거래처도 탄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없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를 계기로 ‘회사 이후의 시간’을 처음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그때까지 승계는 늘 ‘나중의 일’이었다. 자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고, 내부에는 경영을 맡길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매각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결코 특이하지 않다. 한국의 수많은 중소·중견기업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1세대 창업자들은 이제 은퇴를 고려할 나이다. 특히 지방 제조업과 지역 기반 산업일수록 경영자 평균 연령은 더 높다.
문제는 고령화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고령화’다. 많은 기업에서 승계는 전략적 과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미뤄온 숙제에 가깝다.
기업 매각은 실패의 상징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 결과 승계는 계획의 영역이 아니라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 수단이 된다. 건강 악화, 가족 갈등, 외부 환경 변화와 같은 변수가 발생한 뒤에야 논의가 시작된다. 그러나 인수·합병(M&A) 시장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본다. 현장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은 실적이 아니다. 오너 의존도다. 주요 거래처가 대표 개인의 네트워크에 묶여 있지는 않은지, 의사결정 체계가 개인 판단에 집중돼 있지는 않은지, 내부 통제와 재무 관리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지 등을 본다.
실적이 준수함에도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숫자는 양호하지만, 숫자를 만들어낸 구조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승계 이후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할인율은 높아진다. 결국 기업가치는 ‘성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
승계가 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3~5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조직을 재설계해 오너 의존도를 낮추고, 재무 투명성을 높이며, 지배구조를 정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인수 이후 성장할 수 있는 스토리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회사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주체가 확신을 갖고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된다. 기업은 여전히 “아직은 괜찮다”는 판단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선택지는 점점 줄어든다. 매각을 결심했을 때는 이미 협상력이 약해진 상태인 경우도 적지 않다.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구조적 변화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언젠가’의 고민이 아니라 ‘지금’의 설계다. M&A를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적 도구로 인식할 때, 승계는 더 이상 위기의 언어가 아니다. 기업 승계는 단순한 지분 이전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쌓아온 시간과 기술, 고용과 신뢰를 다음 세대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준비된 승계는 기업의 가치를 지키지만, 준비되지 않은 승계는 기업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고령화 시대의 M&A는 매각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일찍, 얼마나 구조적으로 준비했는가의 문제다. 승계가 전략이 되는 순간, 기업의 미래는 비로소 연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