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내 보험사기 법안 처리 전무 상태
사기 설계사 퇴출, 명단 공개 법안 멈춰
2024년 1조원대 적발…역대 최대 규모
과잉청구·보험사기로 보험사 실적 악화
사기 설계사 퇴출, 명단 공개 법안 멈춰
2024년 1조원대 적발…역대 최대 규모
과잉청구·보험사기로 보험사 실적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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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보험사기를 억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모습. 박성준 기자 |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보험사기를 억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강조하고 나섰다. 보험사기 적발 규모는 2024년 1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보험사기 가담 설계사 퇴출, 사기범 명단 공개 등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22대 국회 출범 이후 통과된 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지난해 보험사 실적 악화까지 겹치면서, 보험업계가 입법 지원을 직접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주요 보험사 CEO들이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보험업계는 보험사기 근절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현재 금감원·경찰이 운영 중인 실손의료보험 보험사기 집중신고기간의 연장과 보험사기 근절 관련 법 개정 추진 사항에 관한 관심을 촉구했다. 범죄 이력 모집종사자 퇴출과 재진입 차단, 사기범 명단 공개 시행 등 업계 공통 요구사항과 관련해 금융당국이 관심을 가져달라는 취지다. 이와 함께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참여 의무화, 미참여 의료기관 제재, 블랙컨슈머 방지를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개정 검토 등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요구도 나왔다.
이처럼 보험사기 관련 업계 요구가 확대된 데에는 보험사기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데도 법과 제도적 개선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출범 이후 발의된 보험 관련 법안 19건 중 입법 문턱을 넘은 건은 한 건도 없다. 보험사기와 직접 관련된 법안만 해도 보험업법·보험사기방지특별법·자동차관리법에 걸쳐 다수가 계류 중이다.
현행법상 보험사기 설계사 제재는 재판(최소 3년)과 청문(2년) 등 최종 확정까지 5년 이상 소요된다. 그사이 해당 설계사는 다른 보험사로 이직해 영업을 이어갈 수 있고, 사기 수법이 전파되는 경로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 판결로 범죄사실이 확인된 설계사의 청문 절차를 생략하고 즉시 등록을 취소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유영하 의원(2024년 8월)에 의해 처음 발의됐고, 같은 취지의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법인보험대리점(GA)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법안도 김상훈 의원을 중심으로 발의됐다. 하지만 법안들 모두 현재 국회 내 표류 중이다.
편취액이 1억원 이상, 조직 보험사기를 실행한 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강준현 의원 대표발의)도 소위 회부 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사기범 명단공개는 이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를 통과했으나, 기본권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삭제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양형 기준이 개정돼 의료인·설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의 보험사기 가담이 특별 가중요소로 반영됐지만, 행정적으로 가담자를 시장에서 신속히 퇴출하는 장치는 여전히 빈약하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형사처벌까지 가야 계도가 통하는데, 지금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보니 일반 소비자들도 보험사기가 범죄 인식 자체가 낮다”고 말했다.
그러는 새 보험사기는 2024년 기준 적발 규모 1조1502억원, 인원 10만9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 보험사기 규모는 연간 약 8조원, 국민 한 사람이 지는 사회적 부담은 16만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 중심의 생계형 사기에서 병원·브로커·설계사가 역할을 분담하는 조직형 사기로 빠르게 변모하는 추세다.
이런 변화는 보험사 실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내 5대(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손해보험사의 합산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약 11.5% 감소했다. 자동차보험과 함께 장기보험의 실적 악화가 보험사 경영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 중인데, 장기보험 예실차 손실 확대 배경에도 과잉청구와 보험사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해외는 법적·행정적 대응 체계를 정비해 보험사기 예방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형법에 보험사기죄를 별도 죄목으로 명시해 일반 사기와 구별되는 엄격한 구성요건과 형량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대형 GA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금융청이 업무개선명령·면허취소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도록 보험업법을 개정했다. 영국은 업계 공동 비영리기구인 보험사기조사국(IFB)을 통해 사기 데이터를 실시간 공유하고, 수사기관과 상시 공조 체계를 운용한다.
국내 보험업계도 멈춰 선 입법의 조속한 추진, 정부합동 대응체계 구축과 공·민영보험 간 정보교류의 실질화 등을 공통 과제로 제시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합동 대응과 함께 법·제도적 미비점을 하나씩 보완해 나가야 한다”며 “보험사기가 반드시 적발된다는 인식이 퍼져야 시도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