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연체, 사후조정에서 사전조정으로
은행 관행 개선, 과도한 빚독촉 방지
‘시효 완성 원칙·예외적 연장’ 방침
금융사 연체채권 매각 후 점검 의무
![]() |
![]() |
앞으로 사고·질병·실직 등으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은 연체 초기 단계부터 금융회사로부터 상환 유예나 금리 조정 등 자체 채무조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채무조정 요청권이 있다는 사실을 금융회사들이 의무적으로 안내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다.
또 금융회사가 대부업자 등에 채권을 매각하더라도 불법 추심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장치가 마련되면서 과도한 추심에 시달리는 사례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 연체자 양산하는 관행 끝내야”=금융위원회는 26일 서울 광진구 신용회복위원회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포용적 금융 대전환’ 2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연체자 보호와 신속한 재기 지원을 위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금융위원장과 법무부, 금융감독원, 신용회복위원회 등 관계기관을 비롯해 은행연합회·여신전문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대부금융협회 등 금융권 협회, 금융지주사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금융회사의 반복적인 연체채권 시효 연장을 통한 회수 극대화 관행을 개선하라고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당국 역시 공공부문 중심의 사후적 채무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인 자체 채무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매년 신규 장기 연체자는 30만명 내외로 발생하고 5년 이상 초장기 연체채권도 285만8000건(작년 말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현재 우리 금융권은 곤란에 처한 차주에게 일거에 원리금 상환을 요구하고, 연체채권 매각을 통해 고객보호 책임에서 손쉽게 벗어나며 회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소멸시효를 기계적으로 연장하여 장기연체자를 양산하고 있다”면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의 빠른 재기보다는 회수 극대화 중심의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체 초기부터 자체 채무조정 유도=앞으로 금융회사들은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기 전에 채무조정 요청권을 의무적으로 별도 안내해야 한다.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면 미납 이자뿐 아니라 대출 원금 전체에 연체이자가 부과돼 채무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느 수준까지 원금이나 이자를 조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사전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은행권을 시작으로 전 금융업권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당국은 금융회사별 채무조정 실적도 사후평가 시스템에 도입하고, 현재 마련 중인 은행권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에도 자체 채무조정 실적을 반영할 예정이다. 특히 자체 채무조정 과정에서 원금을 감면할 경우, 해당 감면액을 세법상 대손금으로 인정해 손실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금융회사들의 자체 채무조정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내부 기준을 구체화하고 업권별 모범사례 확산을 유도할 방침이다.
▶소멸시효 완성해야 대손금 인정=기계적인 소멸시효 연장 관행도 끊어낸다. 그간 금융회사는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와 관계없이 상각 시점에 법인세법상 손비로 인식해 왔지만, 앞으로는 소멸시효가 실제 완성된 경우에만 손비로 인정하도록 제도를 바꾼다. 다만 채무자의 은닉 재산이 발견되는 등 금융회사에 책임이 없는 경우 손비 인정 이후에도 예외적으로 시효 연장을 허용한다.
적용 대상은 금융권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설정한다. 은행·보험사는 5000만원 이하, 저축은행·상호금융·여신전문금융사는 3000만원 이하 연체채권에 우선 적용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해당 기준을 적용할 경우 전체 금융권 연체채권의 약 90% 이상(계좌 수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며 “제도 안착 상황을 지켜본 뒤 적용 기준 상향 여부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소멸시효 완성 사실을 채무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하고, 내부 기준에 따라 연장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현재의 ‘원칙적 연장·예외적 완성’ 관행을 ‘원칙적 완성·예외적 연장’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또 소멸시효 연장을 위한 무분별한 소송을 차단하기 위해 당국은 법무부와 협력해 금융회사에만 인정돼 온 소송촉진특례법상 공시송달 특례를 폐지하는 방안도 조속히 추진할 방침이다.
▶연체채권 팔고 손 터는 관행도 제동=금융당국은 채권 매각 이후에도 원채권 금융회사의 고객 보호 책임을 유지하도록 제도를 정비한다. 채권을 매각해 회수만 하고 책임을 사실상 끊어내는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은행과 같은 원채권 금융기관들은 채권을 넘겨 받은 양수인의 불법 행위 여부를 점검하고, 위법 사항을 발견할 경우 감독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또 원채권 금융기관은 채권 매각 계약서에도 재매각 가능 여부와 재매각이 가능한 기간·기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연장되는 ‘좀비채권’이 쌓이지 않도록 재매각 조건을 명확히 하고 과도한 추심으로 인한 채무자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억원 위원장은 “연체채권 매각 내용을 금감원에 보고하고 대외 공시토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당국은 신복위의 신속 채무조정이 진행 중인 채권은 매각을 제한해, 매각으로 인한 신용평점 하락 등 채무자 불이익도 방지할 방침이다. 유혜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