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스 하우스’ 백악관의 변화 [강형원의 인사이트]

철거된 이스트윙 부지에 백악관 신축 연회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진은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바라본 백악관 전경. 1884년 완공된 워싱턴 모뉴먼트는 높이 555피트 5⅛인치(169.29미터)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었다. [강형원 촬영]



미국 미시시피강 서쪽 최대 신문사였던 LA타임스에서 일하던 필자는 1997년, AP통신의 세계 최대 사진부서를 맡기 위해 워싱턴으로 스카우트되면서 처음 백악관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1600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자리한 ‘국민의 집’ 백악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비교적 예측 가능했다. 4년 혹은 8년마다 바뀌는 대통령이었다. 행정부는 교체되고, 공식 초상화는 바뀌며, 참모진은 떠나고 들어왔다. 그러나 건축적·상징적으로 백악관은 절제된 안정감을 유지하며, 현재진행형으로 진화하는 미국 민주제도의 1번지 무대로 존재해왔다.

백악관은 1812년 전쟁 중이던 1814년 8월 24일 영국군에 의해 방화된 뒤 1814년부터 1817년 사이에 재건되었다. 남쪽에서 본 백악관의 높이는 70피트, 북쪽은 60피트 4인치다. 이 고전적 비례는 권위와 절제를 동시에 상징해왔다. 권력은 과시가 아니라 균형 속에서 표현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그 스케일 안에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흐른 이달, 필자는 미국 전국 순회 북토크의 일환으로 워싱턴을 다시 찾았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 이어 열린 행사였다. 필자의 영문 저서 ‘성인(聖人) 군자의 길을 간 한국은 선비의 나라’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한국 문명의 흐름 속에서 최고의 경지(Top Discipline)를 근간으로 정의한 선비 사상을 영어권 가치 언어와 스토리텔링 사진으로 풀어낸 이 책은 영어권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번 워싱턴 방문에서 나는 백악관 경내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장면을 마주했다. 북쪽 잔디와 남쪽 잔디 위로 솟아오른 두 개의 거대한 성조기 게양대였다.

2025년 6월 설치된 88피트 높이의 성조기 게양대가 백악관 남쪽 잔디 위에 서 있다.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 ‘마린 원(Marine One)’의 주요 이착륙 구역에 인접해 있어 안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강형원 촬영]


지난해 6월 설치된 이 게양대는 높이 88피트(27미터)에 달한다. 일부에서는 100피트(30미터)로 언급되기도 한다. 250년이 넘는 미국 역사 속에서 백악관 성조기는 본관 지붕 위의 비교적 아담한 깃대에서 게양되어 왔다.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 ‘마린 원(Marine One)’이 오르내리는 남쪽 잔디 위에 세워진 이 거대한 구조물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시각적 선언이다.

이 장면은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이 경쟁적으로 세운 대형 국기 게양대를 떠올리게 한다. 백악관 본관을 훌쩍 넘는 88피트의 수직 구조물은 공간의 위계를 재편한다. 과거 지붕 위의 깃발이 국가 원수의 존재를 상징하는 절제된 표식이었다면, 이제 잔디 위의 강철 게양대는 백악관을 압도하는 시각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을 지낸 믹 멀베이니(Mick Mulvaney)는 안전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예산관리국(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국장을 역임했고,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을 맡았다. 그 이전에는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멀베이니는 사우스 론에 설치된 88피트 게양대가 마린 원의 이착륙 동선에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존에 비교적 장애물이 적었던 잔디 공간에 대형 고정 구조물이 들어서면서 항공 안전과 운항 절차 변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정치심리학에서 깃대는 과시, 권위의 수직적 표지, 영토 선언, 주목 욕구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를 대중과의 동일시로 볼 것인지, 과시적 행위로 볼 것인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다섯 명의 대통령 재임 기간을 기록해온 필자는 건축이야말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 지속되는 권력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5년 10월, 백악관의 ‘심장’이라 불리던 이스트윙(East Wing)이 철거되었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절 마차 출입구로 시작해, 194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의해 다층 구조로 확장된 이 건물은 영부인과 참모진의 공간, 방문객 출입구, 소형 극장, 그리고 지하의 대통령 비상작전센터(PEOC)를 품고 있었다. 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오벌오피스가 있는 웨스트윙으로 출입했지만, 공식 행사나 연회 초청 시에는 이스트윙을 통해 들어갔다. 웨스트윙이 ‘두뇌’라면, 이스트윙은 ‘심장’이었다.

그 자리에 약 9만 제곱피트 규모의 대형 연회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 외부 경관과 기능 구조까지 포함한 근본적 재편이다. 백악관 건물보수공사는 워싱턴을 떠들석하게 하고 있다.

미국 역사보존 비영리재단(National Trust for Historic Preservation)은 철거된 부지에 새 연회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12월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에 제출된 소송은 해당 사업이 연방 환경법과 역사보존법을 위반했으며 의회 승인 없이 추진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행정부 측은 법원 제출 서류에서 현재 공사 현장이 이미 위험 요소가 될 수 있고 대통령경호국 작전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밝히며, 공사를 중단할 경우 국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1961년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설립한 백악관 역사협회는 오랫동안 대통령 및 영부인 공식 초상화 제작과 내부 보존 사업을 지원해왔다. 수십 년간 백악관 복원은 ‘보존’과 ‘연속성’의 언어였다. 그러나 최근 변화는 외부 조경과 공간 구성까지 특정 행정부의 선호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결과물이 되고 있다.

30년 가까이 백악관을 기록해온 기자로서 나는 수많은 정권 교체를 보았다. 그러나 이번 변화는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공간의 문법을 바꾸는 일이다.

남북 잔디 위에 대형 성조기를 날리는 것은 단순한 깃대 설치가 아니다. 권력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지에 대한 시각적 선언이다.

‘피플스 하우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그 실루엣과 동선, 그리고 상징의 균형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