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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쌓은 노동패널 데이터, 예산 삭감에 ‘위기’

[게티이미지뱅크]

‘노동·경제 현황조사’ 예산 12.3% 감액…국가통계 구멍 위기
데이터 단절·세대 연구 위축 우려...26년간 이어진 학술대회도 중단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재정당국이 올해 한국노동패널조사 예산을 크게 삭감하면서 국내 최장 기간 구축된 노동패널 데이터의 지속성과 활용에 심각한 위기가 제기되고 있다. 조사 대상 가구는 약 800여 가구 줄어들고, 26년간 이어져 온 학술대회는 예산 전액이 삭감되며 중단됐다.

12일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노동패널조사 예산은 17억6500만원으로 2024년(20억1200만원)보다 2억4700만원(12.3%) 축소됐다. 조사비용은 11억6900만원으로 줄며, 전체 조사 가구의 약 7%에 해당하는 800여 가구가 조사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한국노동패널조사는 한국노동연구원이 1998년부터 매년 약 1만200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해 온 대표적인 패널조사다. 통계법 제18조에 따른 국가승인통계로, 노동·경제 분야에서의 변화상을 추적하는 통계다. 노동패널조사는 매년, 사업체패널조사는 격년으로 실시하며, 조사 결과는 학술 연구와 정책 개발에 활용된다. 특히 동일 가구를 해마다 추적 조사함으로써 개인·가구의 변화 과정을 장기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 정책 수립과 세대 간 연구의 핵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그러나 관련 예산이 급감하면서 면접조사 방식이 중심인 조사 운영에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노동패널조사는 전국 1만2000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데다 조사문항도 1200개가 넘어 위탁조사를 맡기는데,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조사원 인건비가 대부분인 위탁조사비(17억8500만원)에도 못 미친다 이 탓에 약 800여 가구가 조사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런 ‘수치적 감액’이 단순한 양적 축소를 넘어 패널 데이터의 구조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패널 데이터의 핵심은 동일 대상을 장기간 추적 관찰하는 데 있다”며 “한 번 제외된 가구는 복귀시키기 어렵고, 조사 단절은 곧 패널 데이터의 연속성과 신뢰성 저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번 삭감은 세대 간 이동성 연구, 불평등 분석 등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해 온 ‘세대 연결 데이터’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모-자녀 간의 연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세대 연구는 노동패널만이 제공하는 강점이었으나, 조사 단절로 해당 데이터의 축적이 중단될 경우 연구 연속성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연구·학술 교류 역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노동패널 데이터를 활용한 정책연구와 학술연구 활성화를 위해 26년간 지속되어온 학술대회와 워킹페이퍼 발간 사업 예산이 2025년 전액 삭감되며, 관련 행사가 모두 중단됐다. 노동패널 데이터는 매년 약 200건, 누적으로는 3000건이 넘는 연구자료(정책보고서 257건, 학술지 논문 1676건, 학위논문 476건 등)에 활용되고 있다.

예산 삭감으로 국내 연구자들이 이용 가능한 정교한 통계 기반이 축소되는 가운데, 미국의 대표적 가구패널(PSID)은 매년 30억~4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패널 연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반면 한국노동패널조사는 이미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예산으로 운영되어 왔고, 이번 감액으로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김용원 책임연구원은 “패널 데이터는 일회성 조사가 아닌 축적형 통계로, 정책을 세밀하게 설계하고 사회 문제를 진단하는 데 핵심적인 도구”라며 “이번 예산 삭감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27년간 쌓아 온 국가 통계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추경 등을 통해 예산을 시급히 복원하고, 장기적 통계 구축에 대한 정부의 철학과 책임이 필요하다”며 “지속가능한 조사 체계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정책 역량과 통계 신뢰도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