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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산업은 반도체, AI(인공지능), 이차전지 등 첨단 기술제조업 중심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 실질적인 소비생활과 내수경제를 뒷받침하는 유통산업을 간과한 것으로, 산업정책의 중대한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유통산업이 단순한 상품 전달을 넘어, 내수경제의 마지막 판매 접점이자 산업 전반의 신속한 혁신 성과를 실현하는 핵심 산업임을 간과한 것이다.
2020년 유통·물류산업은 그 규모가 114조원에 달한다. AI, 로봇, 빅데이터 등 신기술과 융합돼 100만 명 이상의 고부가 고용도 창출하고 있다. 유통은 최근 물류시스템과 함께 경제의 ‘혈관’으로서 생산된 경제적 가치를 국민에게 신속히 전달하고 재투자, 즉 신속한 경제의 순환을 가능케 한다. 소비자 물가의 안정적 관리도 유통의 효율성 확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국내 유통시장이 저가 정책과 물류 효율성을 앞세운 외국계 온라인 유통플랫폼 기업에 빠르게 잠식되어 가고 있다. 이들이 축적한 방대한 소비자 데이터는 AI를 통해 정교하게 분석돼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상품으로 제조되고 맞춤형 마케팅으로 활용된다. 이는 국내 토종 유통기업의 경쟁력을 위축시키고, 결국 유통시장의 독과점화로 이어질 수 있다. 유통의 독과점화는 가격 통제력의 약화, 제조업의 종속화, 경제정책 효과의 저하, 기업가 정신의 침체 등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한다.
유통이 단순 제화의 거래망을 넘어 한 국가의 소비 및 산업정보의 보고이자 정책 실현을 위한 기반 인프라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향후 AI·로봇·자율주행 기술 등과 연계된 스마트시티가 구현되면 유통과 물류시스템의 전략적 자원 가치는 커질 것이다. 소비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속으로 자율 로봇과 드론이 알아서 상품을 배달해 주는 모습도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어제 과음을 한 당신에게 자율 비서 로봇이 유통물류 시스템과 소통해 따뜻한 해장국을 배달시켜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해외 주요국들도 유통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시장 디지털화를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 중이며, 독일은 Logistics 4.0을 통해 유통물류 시스템의 자동화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지역 유통 혁신펀드를 조성해 지역 내 중소상권을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도 유통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예산·세제·R&D(연구·개발)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빅데이터와 AI 기반 유통정보센터를 설립해 국내 소비자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류관리· 감독해 기업이 이들 정보를 윤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유통 관련 규제와 법·제도를 정비하고 글로벌 표준화해 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전통시장과 중소 유통업체의 디지털 전환, 친환경 물류 인프라 구축 등 지역 기반의 균형발전도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혁신, 인재 양성, ESG 경영을 연계한 통합적 정책 추진도 필수적이다. 유통이 작동해 팔려야 혁신이 완성된다. 팔리지 않는 제품은 발명에 불과하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전 유통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