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물 ‘러닝메이트’로 연출가 데뷔
“학교는 현실 축소판…선거로 권력 다뤄”
“봉준호 ‘괴물’ 같은 작품 만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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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지난 19일 최종화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러닝메이트’에서 제작진과 배우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감독 한진원일 테다. 신예 배우들로만 꾸려진 이 작품은 영화 ‘기생충’의 각본가가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오스카 트로피를 안으며 작가로서 정점을 경험한 그는 이제 첫 연출작을 세상에 내놓으며 막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5년 전 선배 영화인들에게 기대어 숟가락을 얹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누구도 아닌 홀로 검증대에 오르는 순간을 맞은 셈이다.
“아무래도 기생충의 명성이나 후광이 있었겠죠. 하지만 이젠 그것도 다 리셋(초기화)되지 않겠어요? 적나라하게 (실력이) 공개됐으니까요”.
24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한 감독을 만났다. 막 새끼 새를 세상에 내보낸 어미 새 마냥, 첫 작품을 갓 세상에 공개한 그의 표정엔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선뜻 마주하기가 무섭다는 그는 아예 휴대폰에서 각종 포털사이트 어플리케이션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는 “‘기생충’이나 ‘유토피아’에서 나는 큰 그림의 조각 중 하나였지만, 주도적으로 한 창작 작업은 처음이다”며 “반응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더라. 그래서 안 보고 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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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제공] |
‘러닝메이트’는 고등학교 학생회장단 선거를 다룬 드라마다. 불의의 사건으로 전교생의 놀림감이 된 노세훈이 부회장 후보로 지목되고, 온갖 권모술수를 헤치고 당선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을 그린다. 치열한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 속 청춘들의 희로애락과 그 속에서 빛나는 우정 등 따뜻한 성장 스토리를 담아냈다.
처음부터 연출을 맡을 생각으로 러닝메이트를 쓴 것은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직접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누군가에게 연출을 맡기는 소위 ‘납품용 시나리오’가 아닌, 카메라 움직임까지 꼼꼼하게 표시하며 애정을 듬뿍 담은 시나리오는 그의 손에서 싹을 틔워 연출 데뷔작으로 피어났다.
첫 연출 데뷔작으로 학원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러닝메이트’ 1화의 문을 여는 “학교는 현실사회의 축소판이다”란 세훈의 내래이션으로 답을 대신했다. 학원물에 선거란 소재를 입힌 것은 흔히 폭력으로 대변되는 힘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액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풀겠다는 의도에서였다.
한 감독은 “사람은 두 명 이상이 있으면 권력관계가 생긴다. 완전히 평등할 수는 없다”면서 “그것을 영화로 잘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일진과 같은 폭력이지만, 다른 방식을 찾던 중에 학생회 선거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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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응원전과 선거 유세, 그리고 상상 초월의 여론전까지 러닝메이트가 펼쳐내는 ‘고딩들의 선거전’은 ‘어른들의 선거’에 뒤지지 않을 만큼 뜨겁고 치열하다. 한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현실을 알고 싶어서 요즘 학생회 선거 분위기를 조사했다”면서 “형식적으로 선거를 하는 학교도 있지만 정말로 열띤 선거전을 펼치는 학교들도 많았다”고 했다.
극 중 학생회장단을 향한 두 캠프의 대결은 ‘빨간색’과 ‘파란색’이라는 보색대비로 표현된다. 선거전이 가진 대비를 명확하게 주기 위한 의도였지만,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현실의 정치판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한 감독은 지나친 정치적 해석에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는 “차전놀이나 고싸움을 봐도 빨간색과 파란색이 맞붙고, 전 세계 정당들도 모두 같은 색을 쓴다. 보라색 초록색이면 사실 이상하지 않냐”면서 “(정치적 해석은) 한국에서 선거와 관련된 소재를 끼고 있는 한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러닝메이트’가 보여주는 선거 유세는 전반적으로 밝고 흥겹다. 정치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둡고 비밀스러운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한 건강한 논의의 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연출이다.
한 감독은 “선거를 좋은 것을 위한, 더 나아지기 위한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흥겹기를 바랐다”면서 “선거나 정치 코드가 들어가면 말다툼의 소재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러닝메이트가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는 어떤 트리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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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감독 한진원의 이름 세 글자를 설명할 때 아직까지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빼놓고 할 순 없다. 실제 봉 감독과 함께 일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것들이 모든 연출 과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현장에서 수십명의 배우 본명을 하나하나 기억해 부르는 한 감독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주연 배우들의 소감을 전하자 한 감독은 “순전히 봉 감독을 따라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봉 감독이 현장에서 소통할 때 배우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유대감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도 더 적극적으로 연기하는 느낌이었다”면서 “다음에 내 작품을 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한 감독은 “선배 감독님들이 앉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며 연출자로서의 느낀 무게를 다시금 털어놨다. 그럼에도 한 감독은 작가가 아닌 연출가로서 한발짝 더 나아가볼 생각이다. 어떤 감독이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다음 작품이 있는 감독”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인기 있는 원작 IP(지식재산권)를 바탕으로 탄생한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 안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한 감독의 바람이자 목표다.
한 감독은 “제작사들이 동의만 한다면 직접 쓴 작품을 더 연출해 보고 싶다. 글을 직접 쓰는 연출가들은 많지 않다”면서 “되도록 오리지널을 하고 싶다. 봉 감독의 ‘괴물’ 같은 작품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