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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간 지켜온 성곽 ‘서천읍성’ 사적 된다

서천읍성 동문 [국가유산청]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세종 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서천읍성’이 600여년 만에 사적 지정을 앞두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충남 서천군 소재 서천읍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17일 예고했다.

서천읍성은 금강 하구에서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 초기 세종 재위(1418~1450년) 중 바닷가 요충지에 돌로 쌓은 둘레 1645m의 연해읍성이다. 연해읍성은 조선 초기 주로 세종 연간에 국가 주도로 해안 요충지에 축조한 읍성을 말한다. 서천읍성은 연해읍성으로는 드물게 산지에 축성됐다.

서천읍성 전경 [국가유산청]

사천읍성 사정 지정(보호) 구역안 [국가유산청]

서천읍성은 세종 20년(1438년) 반포된 ‘축성신도’에 따른 ‘계단식 내벽’과, 세종 25년(1443년) 이보흠이 건의한 한양도성의 ‘수직 내벽’ 축조기법이 동시에 확인되는 등 축성정책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충청도읍지’ 등 문헌에 따르면, 서천읍성에는 접근하는 적을 퇴치하기 위해 성벽에 튀어나오게 쌓은 구조물인 치성이 17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사 결과 16개소가 확인됐다.

서천읍성의 치성은 대체로 90m 간격으로 설치돼 있는데, 이는 세종 15년(1433년) 세종실록에 적힌 기준인 150보(약 155m)보다 촘촘한 간격이다. 다른 읍성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이다. 성 외곽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 방어용 연못도 있다.

서천읍성 치성 [국가유산청]

서천읍성 ‘축성신도’에 따른 ‘계단식 내벽’ [국가유산청]

일제강점기인 1910년 내려진 ‘조선읍성 훼철령’으로 전국 읍성이 철거된 가운데 서천읍성도 내부의 공해시설(행정·군사 등의 공무수행에 필요한 시설)이 훼손됐지만, 성벽 대부분은 잘 남아있다. 전체 둘레 중 93% 남짓인 1535.5m가 잔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