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재료는 ‘의미가 숨겨진 암호’부르주아, 청동으로 모성의 ‘귀함’ 표현금은 ‘세속성’ ‘신성함’ 동시에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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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즈 부르주아, 엄마, 1999. 호암미술관 희원 설치 전경. |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영국 런던에 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 터빈홀에는 높이 9m, 너비 10m 크기의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이 있다. 작품 제목은 ‘마망(Maman, 엄마)’.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인 루이스 부르주아(1911~2022)는 이 작품을 여섯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테이트 모던 뿐 아니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도쿄의 모리 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국내에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 및 용인 호암미술관 호수 옆에서 볼 수 있다.
‘엄마’라는 이름의 거대 청동 거미상에 고개가 ‘갸웃’할 수 있지만, 이는 작가의 어린 시절과 연관이 있다. 당시 부르주아는 태피스트리(tapestry, 직물 공예) 작업장에서 실을 짓던 엄마의 모습이 마치 열심히 거미줄로 집을 짓던 거미와 닮았다고 생각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이와 함께 몸집에 비해 가늘고 약한 다리는 아버지의 외도로 상처받았던 엄마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엄마에 대한 작가의 마음은 작품의 외연이 아니라 소재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는 청동.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혼합물로,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인공 합금이다. 또 청동에 들어간 구리가 구하기 어렵다 보니 청동 역시 귀한 재료가 됐다. 부르주아는 전통적이면서도 귀한 재료인 청동을 통해 소중한 엄마의 존재를 표현했다. 이와 함께 작품 아래에서 위쪽을 올려봐야 보이는 거미 복부 안 알들은 천연 재료인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하얗고 순수한 아이를 상징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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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서 재료과학을 가르치는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는 신간 ‘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에서 작품의 재료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시대의 감각이며, 한 사람의 선택과 세계관이 담긴 언어라고 역설한다. 그는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는 의미가 숨겨진 암호”라면서 스물다섯 편의 암호를 화학자답게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청동으로 귀하고 소중한 모성을 표현했다면 바딤 자하로프나 구스타프 클림트 등 작가들은 금으로 모순적인 현대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금은 작품에서 재력의 직관적인 표현을 위한 재료로 쓰이지만, 동시에 신성함과 초월성도 상징한다. 클림트는 작품 ‘키스’에서 여덟 가지의 금박을 사용해 작품 속 공간과 의복을 표현했다. 하지만 사람의 몸만은 금으로 덮지 않아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를 드러냈다. 덕분에 작품 속 입맞춤에 초자연적인 의미가 부여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특히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아메리카’라고 이름 붙인 황금 변기로 금 활용의 정점을 찍는다. 권력을 드러내는 가장 천박한 방식인 금으로 가장 흔한 물건인 변기를 만든 후 세계 패권을 차지한 ‘아메리카’란 이름을 붙여 현대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저자는 “금이란 재료를 영리하게 활용해 방탕한 권력을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묘사한 관념적인 작품으로 거듭났다”고 평한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데보라 가르시아 베요 지음·강민지 옮김/미래의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