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개봉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엑시트’ 이상근 감독 6년 만의 차기작‘1인2역’ 윤아 연기 변신·안보현 ‘멍뭉미’소외된 영혼들의 구원 서사 ‘힐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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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 ENM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오컬트의 탈을 쓴 동화다. 로맨스인가 했는데 힐링물이다. 적절한 온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무리하지 않는 적당한 웃음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밤이면 악마로 변하는 한 여자와 그를 지키는 청년 백수 알바생의 이야기. ‘악마’와 ‘백수’라 쓰고 소외된 청춘이라 읽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치유의 서사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이야기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데뷔작 ‘엑시트’(2019) 이후 이상근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차기작이다. 10여년 전 입봉의 꿈을 안고 쓴 각본이 ‘엑시트’의 성공에 힘 입어 세상에 나왔다. ‘좋은 사람들과 다시 한번 함께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으로 ‘엑시트’의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마찬가지로 ‘엑시트’에서 호흡을 맞췄던 임윤아가 합류해 안보현과 주연을 맡았고, 성동일과 주현영이 ‘악마 들린 코미디’의 뒤를 받쳤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영화 ‘좀비딸’이 지펴놓은 여름 극장가 흥행 열기에 순조롭게 올라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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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길구(안보현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인형 뽑기로 뽑은 ‘전리품’들을 방에 차곡차곡 채워 넣는 것만이 일상인 청년 백수다. “인생은 인형 뽑기와 달리 복잡하고 어렵다”. 사회생활이란 열차에서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었던 길구의 어두운 과거가 스쳐 지나간다. 일도, 목표도 없는 길구의 무기력한 일상은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 분)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길구는 우연히 아파트 단지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선지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친구는 선지에게 말 한 번 걸어보지 못하고, 그저 자신과 마주 앉아 감자탕에 들깻가루를 뿌릴지나 재차 묻는 길구를 타박한다. 감자탕과 함께 흠뻑 취한 길구는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13층. 아랫층에 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느닷없이 빨간 손톱에 긴 파마머리의 여자가 달려든다. 뜻밖의 몸싸움은 박치기 한번으로 일단락 되지만, 다음날 선지의 이마에 붙여진 반창고가 길구의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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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구는 선지의 정체를 좇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지의 아빠 장수(성동일 분)로부터 밤이면 ‘악마’가 되는 선지의 비밀을 듣는다. 장수의 ‘선택’을 받은 길구는 악마로 변한 이른바 ‘밤선지’를 지키는 아르바이트를 맡는다. 낮에는 ‘낮선지’와 함께 선지의 빵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밤선지’와 함께 산책하러 나가는 길구. 밤낮이 다른 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길구의 좌충우돌 아르바이트는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멈춰있던 길구의 시계는 선지를 만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길구는 밤선지의 기행을 따라다니면서 그 안의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첫눈에 반한 순간에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선지를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산책하는 것은 할 수 있다. 밤선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제 화에 못 이겨 도망가다 지친 밤선지에게 물부터 건네는 길구. 답답하지만 누구보다 진심인 그의 애정 방식은 갇혀있던 길구를 점차 세상과 이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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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도 마찬가지다. 천사 같은 낮선지와 악마를 품은 밤선지의 간극은 영화가 진행되며 조금씩 메워진다. 알고보니 누구보다 타인에게 상처주고 싶어하지 않고, 그러한 자신을 감추려 더욱 악행을 일삼는 척했던 마음 여린 악마.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소멸을 기다리던 밤선지는 길구를 만나면서 구원이란 희망을 품는다. 희망과 미래. 유난히 두 영혼과 단절돼 있던 이 단어들은 서로를 만남으로써 다시 그들의 삶 안으로 들어온다. 자연스레 빚어낸 ‘쌍방 구원’의 서사다.
배우들은 발군의 연기력을 뽐낸다. 사실상 ‘1인 2역’을 소화한 임윤아는 ‘공조’(2017), ‘엑시트’ 등으로 쌓아올린 코믹 연기의 내공을 마음껏 발산한다. 밤선지의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듯 우렁찬 포효와 거침없는 발차기, 두 눈을 부릅뜬 광기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물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어 사정없이 접영을 선보이는 밤선지의 수영 실력은 영화의 큰 웃음 포인트 중 하나다. 안보현은 착하고 순진하지만 듬직한 대형견 같은 길구의 매력을 십분 표현하고, 성동일과 주현영은 그들이 제일 잘하는 것들로 영화에 웃음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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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생동감이 넘친다. 감독이 펼쳐낸 선명한 색감 덕분이다. 악마로 변한 선지가 뿜어내는 빨간색부터 시작해 원색을 망설이지 않고 사용한 미장센은 이제 이상근표 영화의 정체성처럼 느껴진다. 의도적으로 킨 미러볼과 물감이 흩뿌려진 듯한 정원은 살짝 현실에서 발을 뗀 영화의 동화적 감성을 더한다. 이 감독은 “‘엑시트’에 이어 함께 작업한 채경선 미술감독이 원색을 좋아한다”면서 “나 역시도 색감을 갖고 상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때 인형 뽑기에 매달린 적이 있다”는 감독의 경험이 녹아있는 ‘인형 뽑기’가 영화 전반에서 제 나름의 의미를 담아 활용되는 것도 재미있다. 인형을 안고 취해 엘리베이터에 탄 길구가 마치 집게에 걸린 인형 마냥 올려져 악마를 맞닥뜨리는 것도, 세상과 마주한 길구가 어떻게 ‘성공’하는지도, 하물며 선지를 통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길구의 서사마저도 넓게는 ‘인형 뽑기’란 보이지 않는 세계관 어디쯤 있는 듯 보인다.
감독은 “인형 뽑기는 길구가 과거의 모든 일을 잊을 수 있는 기능적인 일로서 의미가 있다”면서 “동시에 인형 뽑기 설정을 통해서 ‘이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꺼낸다’는 의미를 담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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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악마가 등장해야 하다 보니 관객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필요한 설명들이 서사의 흐름 위에 있지 않고, 선지나 장수 등의 대사로 해소된 것은 아쉽다. 영화 중간중간 설명을 따라가기 바쁜 지점들이 있다. 영화 속 유일한 ‘빌런’이 서사 하나 주어지지 않은 채 힘없이 소모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빌런이 왜 등장해야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굳이 짚자면 ‘악마가 이사왔다’는 로맨틱 코미디와 오컬트 어디쯤 있다. 다시 말해 장르가 애매하다. 하물며 감독마저 “명확하게 어떤 장르라고 구분 짓기 어렵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인지 장르를 앞세워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점이 독특하다. 영화는 그저 장르적 경계 그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서서 있다. 마치 그것이 대체 뭐가 중요하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래서 영화는 편안하다. 미리 정해놓은 목적지를 향해 관객을 억지로 떠밀지 않기 때문이다. 1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