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모토 대신 연주하려고 급히 내한
첫 한국 방문, 첫 韓 언론 인터뷰 가져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 추천에 한국행
첫 한국 방문, 첫 韓 언론 인터뷰 가져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 추천에 한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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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NSO)아카데미 ‘컬러풀’ 무대에 협연자로 선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케빈 주는 이 공연에 ‘대타’로 깜짝 등장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깊고 풍부한 선율로 음악은 시작됐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솔로 바이올린이 문을 열어젖혔다. 로커 같은 기개였다. 생상스가 ‘스페인의 파가니니’로 불린 당대 거장 사라사테를 위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3번’. 뜨거운 열정과 사랑스러운 서정, 대담한 기교가 시종 넘실댔다. 1700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ex-Petri)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스물다섯의 바이올리니스트 케빈 주는 “너무도 아름다운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비상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생애 첫 한국 공연, 그것도 ‘대타’로 선 무대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케빈 주(25)가 30분의 연주를 마치자 객석에선 우레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대타’로 등장해 ‘스타’가 됐던 수많은 연주자처럼 그는 한국 관객과의 첫 만남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포펜 지휘자는 한국 도착 48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무대에 선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앙코르도 두 곡이나 들려줬다.
“어쩌다 보니 모든 상황이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잖아요. 공연을 며칠 앞둔 상태에서 포펜 지휘자의 이메일을 받았어요. 단 며칠 만이라고 한국에 올 수 있겠냐고요. (웃음) 고민은 있었지만, 와보고 싶었어요.”
케빈 주는 첫 한국 공연을 위해 예정돼 있던 독일에서의 페스티벌 일정을 조정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연 하루 전날 독일 뮌헨에서 날아와 부랴부랴 리허설을 마쳤고, ‘시차 공격’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로 무대에 섰다.
케빈 주가 선 무대는 지난 20일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NSO) 아카데미 5기 청년 교육단원들의 성과를 담은 ‘컬러풀’ 공연이었다. 올 초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60명의 차세대 음악가가 이날 하루의 무대를 위해 장장 7~8개월을 달려왔다.
애초 협연자는 세계 최정상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16년째 이끄는 악장 다이신 카시모토. 그의 명성 덕에 한국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손가락 부상을 입은 카시모토는 결국 한국을 찾지 못했다. 포펜 지휘자는 위기의 상황에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지금 당장 연주할 사람은 케빈 주밖에 없다”며 그를 추천했다. 두 사람은 2021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심사위원과 시상자로 처음 만났다. 케빈 주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악단의 ‘천군만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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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케빈 주가 대타로 선 첫 한국 공연을 위해 예정돼있던 지난 19일 독일에서 날아왔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한국 공연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도 처음이다. 입국 당일 리허설을 마친 뒤 헤럴드경제와 만난 그는 “KNSO아카데미 젊은 연주자들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나 좋았다”며 “내 음악에 귀 기울여 주고 맞추려 노력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 음악적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케빈 주가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겨우 세 번째다. 다행히 올 초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리히텐슈타인의 단 하나뿐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이 곡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연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곡이라 머리와 손가락이 악보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케빈 주가 바이올린을 처음 연주한 것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그는 겨우 세 살에 이 악기를 처음 잡았다.
“3대에 걸쳐 바이올린을 하는 셈이죠. (웃음) 집에선 늘 포크송이 바이올린으로 연주되곤 했어요. 그 소리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에게 바이올린은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 악기’다. 케빈 주는 “음악을 통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이 악기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했다.
케빈 주의 이름은 세계 유수 콩쿠르를 석권(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양인모를 잇는 파가니니 콩쿠르의 우승자가 바로 그다. 케빈 주는 2018년 당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결선에 진출한 연주자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미 세계 대회를 석권했으면서도 2024년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참가해 4위에 올랐다. 참가 이유를 묻자 그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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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케빈 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그의 ‘바이올린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이다. 그는 12세 때부터 6년간 이츠하크 펄먼 캠프에 참가했고,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펄먼과 리 린을 사사했다.
“캠프는 음악을 가장 중점에 뒀지만, 음악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준 곳이었어요. 굉장히 많은 아이가 모여 해마다 7주간 우정을 쌓고, 음악과 삶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커나가요. 부모님 없이 우리끼리 생활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곳이었어요.”
그가 음악을 할 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상의 경험과 삶 안에서 얻는 감정이다. 최근엔 연주 일정이 많아 뜸해졌지만, 그는 에세이를 쓰며 음악적 사고를 확장해 왔다. 홈페이지에 연주, 여행,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적어 올리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시간도 갖는다.
케빈 주는 “자유시간이 있거나 머릿속에 공간이 생기고 여유가 있을 때면 글을 쓴다”며 “그림을 보거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얻은 감성들을 다 흡수해 음악에 반영하려 한다”고 했다. 다른 예술 장르와 음악 사이엔 연결고리가 많아 이 과정을 통해 감성이 확장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통하더라고요. 우리가 그림을 볼 땐 처음엔 전체를 보지만, 점점 디테일이 보이고 그러다 그림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잖아요. 영화와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엔 큰 아이디어가 있고, 디테일을 만지며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예술이다 보니 같은 과정의 다른 예술이 음악적 성장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케빈 주에겐 ‘탁월한 기교와 고난도 곡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자신감’(스트라드)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연주자라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최신형 추동 엔진을 단 것처럼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도, 깊은 음색과 감성을 함께 전달하는 힘이 있다. 그는 “음악과 기술은 언제나 함께 가는 것이기에 음악에선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며 “ 음악을 할 때 나의 기술과 머릿속 생각, 감성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이제 막 20대 중반에 접어든 그에게 미래는 아득하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바이올린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혁신적인 음악가를 꿈꾼다”고 말한다. 그러다 한마디를 보탠다. “5년 후에 다시 질문하면 달라져 있을지도 몰라요.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