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극본·연출
“많은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재밌어”
“70년대 욕망·시대상 유기적 연결”
“많은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재밌어”
“70년대 욕망·시대상 유기적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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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디즈니+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이하 파인)의 최종화가 최근 공개됐다. 1970년대, 바닷속에 묻힌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여정은 결국 파국으로 끝이 났다. 한탕주의에 목멘 서툰 인간 군상들의 민낯이 왠지 모를 연민을 피워내고, 모든 것이 ‘0’으로 수렴하는 욕망의 허무함이 짙은 여운을 남겼다. “원작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원작의 틀도, 대사도 최대한 가지고 가고 싶었죠”. 원작의 깊은 맛을 제대로 우려낸, 웰메이드 드라마의 탄생이다.
최종화 공개 후 ‘파인’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났다.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2’(2023) 이후 불과 2년 만에 새로운 텐트폴(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로 시청자들을 찾았다. 46세란 나이에 데뷔작 ‘범죄도시’(2017)로 늦깎이 흥행 감독이 됐고, ‘카지노’로 시리즈물에서도 탄탄한 연출력을 증명한 그다.
어느덧 ‘믿고 보는 감독’이 된 강 감독은 윤태호 작가가 쓴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파인’으로 또 한 번의 흥행 기록을 써냈다. 파인은 콘텐츠 시청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서 디즈니+ 한국 콘텐츠 종합 순위 1위 자리를 줄곧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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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감독은 “땅에 붙어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카지노도 그렇고 파인도 그렇고 실재하는 그 세계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면서 “(파인의)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서 덤볐는데, 반응들이 좋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파인을 만들며 강 감독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캐릭터다. 그는 원작 웹툰을 11부작 시리즈로 만들면서 부족한 개연성과 인물의 서사를 조금씩 채우며 캐릭터의 밀도를 높였다. 각색만 1년의 세월이 걸렸다.
‘파인’은 세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사가 흐른다. 관석과 희동, 그리고 정숙이다. 그렇다고 작은 캐릭터들을 허투루 소모하지 않는다. 모든 캐릭터가 하나같이 제 역할을 갖고 극의 힘을 더한다. 뚜렷한 서사의 줄기 위에 배역 모두가 빛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은 역시나 연출의 힘이다. 강 감독은 “많은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재밌는 이야기라는 틀을 명확하게 지키고 싶었다”면서 “글로 상상했을 때와는 또 다르게 현장에서 배우들이 끌고 가는 힘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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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하나하나는 배우들의 제안으로 완성됐다. 작중 침몰선의 위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복근’과 부산패 ‘덕산’이 대표적이다. 강 감독은 “김진욱 배우에게 대본을 보냈는데, 배우가 연기해서 보여준 캐릭터가 너무 좋았다”면서 “각각의 캐릭터가 흐리멍텅한 존재로 있었다가, 배우들이 연기를 통해서 ‘이런 캐릭터일 것이다’며 제시를 해줬고 그것이 그대로 작중 인물이 됐다”고 했다.
강 감독은 ‘파인’을 만들며 ‘1970년대’란 시대적 배경을 구현하는 것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인간 욕망의 형태와 크기는 시대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는 생각에서다. 명확한 시대적 배경을 놓고 그 안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욕망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고자 했다. 핵심 키워드는 ‘밀도’와 ‘원색’. 간판이 빼곡하게 들어찬 인사동과 넘치는 통행량으로 빽빽한 서울역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철저한 고증에 그만의 연출력을 입혀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강 감독은 “보통의 시대물에는 서울역을 정확하게 잡는다든지 하는 정형화된 앵글이 있다. 우리는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묘사해야겠다는 논의가 있었다”면서 “그 시대는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사대문에 국한돼 빽빽하기 그지없던 시절이었다.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엄청난 밀도를 찍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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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1970년대를 부대끼며 살아가는 ‘촌뜨기’들의 욕망은 의외로 소소하다. 사실 욕망이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발버둥에 가깝다. 강 감독은 “도굴꾼들을 이끄는 관석 마저도 ‘조금만 더 하면 좀 더 넓은 집에서, 애들 대학 보내고, 점빵 하나 차리며 살 수 있다’는 바람이 전부”라면서 “황 선장은 좀 더 큰 배를 사고 싶다고 하고, 누구는 자기 논을 갖고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한다.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것이 이 시대를 대변하는 욕망”이라고 말했다.
욕망의 크기와 무관하게, 생명의 무게는 이들의 욕망 앞에서 한없이 가볍게 그려진다. 관석은 함께 작업을 하던 촌뜨기들이 목숨을 잃어도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 몇 명이 죽은 줄 아냐”며 합리화한다. 이러한 막무가내식 전체주의적 사고마저도 감독이 그려내고 싶었던 1970년대와 맞닿아있다. 강 감독은 “자신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타인의 목숨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당시의 사고가 놀라웠다”면서 “국가를 위해서 사람의 목숨이 쉽게 생각되는 인권이 없는 시대였다. 그런 사람들의 사고도 같이 묘사되길 바랐다”고 했다.
‘파인’의 결말은 원작과 다르다. 원작에서는 희동과 선자를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 반면 드라마는 관석까지도 살려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관석은 마지막 장면에서 경주에 모인 도굴꾼 사이에서 얼굴을 비춘다. 강 감독은 “(주인공이 허무하게 죽은) ‘카지노’의 아픔이 있어서 주인공을 살려놔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는 “관석은 사실 트럭 추락 이후 촬영이 끝났었다”면서 “편집을 하면서 관석이 살아있는 모습으로 마무리 짓고, 시청자들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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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몇몇 등장인물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로 뒀다. 드라마는 칼을 든 ‘김군’ 앞에 선 정숙의 마지막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고, 관석의 가족들이 결국 어떻게 됐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강 감독은 “엔딩에서 누가 죽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지은 결말”이라면서 “정숙은 마지막에 믿었던 의상실 사장과 김군에게 배신을 당한다. 죽음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욕망의 마지막 지점은 멸망이란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시즌2를 제작하게 된다면 윤태호 작가에게 글을 맡길 생각이다. 관석의 마지막도 윤 작가와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다. 강 감독은 “윤 작가와 시즌2가 나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지 이야기를 했는데, 윤 작가가 왕릉 도굴에 대한 걸 조사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면서 “시즌2는 윤 작가의 글 안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고, 별도로 이야기를 확장할 생각은 없다. 그것을 웹툰화할지는 작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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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감독은 쉬는 법이 없다. 흥행의 맛을 봤지만 여전히 누구보다 간절하다. 데뷔까지 길고 어두운 터널을 겪어 봤기 때문이다. ‘범죄도시’의 흥행 이후에도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2019)을 찍고 난 후 네 편의 영화가 불발됐다. 강 감독은 “이렇게 열심히 해도 엎어질 수 있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면서 “내게 기회가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기회가 오기만 하면 열심히 하는 것이 몸에 뱄다”고 말했다.
당장 오는 10월에는 강 감독의 차기작 ‘중간계’가 개봉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서 만든 영화다. 강 감독은 “AI가 영화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년이면 더 많은 상업영화에서도 반드시 AI가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많은 작품이 웹툰, 웹소설 등 이미 검증된 인기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경향이 강하다. 강 감독은 최근 영상산업에서 사라지고 있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 감독은 “(원작 IP의 실사화는) 근본적으로 이미 소비가 된 작품을 재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약점이 있다”면서 “너무 한쪽에만 기대서 창작물을 가지고 오는 현상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