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충남 공주시 갑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 |
| 충남 공주시 갑사 대적전과 승탑 |
8월 18일 영규(靈圭)의 승병과 조헌(趙憲)의 의병이 충남 금산에서 1만5000명의 막강한 왜군과 혈전을 벌여 전원이 순절했다. 4일 후, 8월 22일 조헌의 제자 등이 시체를 거둬 하나의 무덤을 만들었으니 이를 ‘칠백의총(七百義)’이라고 했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불과 4개월 후에 벌어진 일이다.
8월은 호국보훈의 달, 계룡산 하면 떠오르는 사찰은 동학사와 갑사이다. 여름엔 동학사 계곡이 생각나지만 필자는 서북쪽의 공주 갑사(甲寺)를 찾았다. 오래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상보의 ‘갑사로 가는 길’ 수필에 등장하는 동학사와 남매탑 이야기, 그리고 눈 내린 갑사의 아름다운 풍광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곳이다.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몰라도 예부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고 해 봄 풍경은 마곡사(공주)가 좋고 가을풍경은 갑사가 으뜸이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곡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한때 머리를 깎고 중이 돼 은둔하며 머무른 ‘백범당’이 있고, 갑사에는 최초의 의승장(義僧將) 영규 대사의 기적비(紀蹟碑)가 있다.
![]() |
| 갑사 내 영규 대사 기적비 |
기허당(騎虛堂) 영규 대사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고, 서산대사(휴정)를 찾아가 제자가 됐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3일 동안 통곡한 뒤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800여 명의 의승군을 조직해 8월 1일 조헌(趙憲)의 의병과 합군해 청주성에서 왜군을 격퇴하는 큰 승리를 거뒀다.
기세를 모아 곧바로 전라도로 향하는 왜적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왜적의 수와 그 기세에 중과부적이라고 판단한 관군과 영규는 작전 기일을 늦추자고 했으나 의병장 조헌은 그대로 진격했다.
영규는 조헌 의병장을 혼자 죽게 할 수 없다며 금산 전투에 승병을 이끌고 합류해 왜군과 결전을 벌였으나 조헌의 의병과 영규의 의승군은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 |
| 최초의 의승장 영규 대사의 묘 |
계룡산(鷄龍山) 갑사(甲寺)의 진입로 입구를 좀 지나 계룡초등학교 근처에 최초의 의승장 영규 대사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150m 정도 경사면을 올라가니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커다란 봉분 앞엔 흐릿한 옛 묘비 2개와 ‘의승장기허당 영규대선사지묘’라 새긴 현대적 묘비가 함께 서 있다.
![]() |
| 영규대사의 묘 인근 ‘의승장기허당영규대사 순의실적비’ |
초입의 ‘영규 대사 영정각’은 잡풀이 무성하고 폐가처럼 방치돼 들어갈 수조차 없고 묘지 인근의 ‘의승장기허당영규대사 순의실적비’도 너저분한 환경에 놓여 있다. 세월의 무상함과 왠지 무람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수도승 3만여 명이 사망했기에 의승장 및 의승과 관련해 밀양 표충사, 해남 대흥사, 김천 직지사, 합천 해인사 등 많은 사찰에 표충사와 기적비들이 세워졌다.
![]() |
| 표충원 |
최초의 의승장 영규 대사는 서산 대사(휴정), 사명 대사(유정)와 함께 임진왜란 3대 의승장으로 꼽혀 계룡산 갑사에도 표충원(表忠院)을 마련해 세 의승장의 영정을 모셨고, 영규 대사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계룡산 갑사
![]() |
| 갑사 전경 |
갑사로 들어가는 가로수 길은 단풍나무가 빼곡하다. 예로부터 추갑사(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자랑하는 곳이다 보니 가는 길부터 심상찮다. 이상보의 ‘갑사로 가는 길’에선 눈 오는 날의 갑사 풍광을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갑사는 가을 단풍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겨울 산사의 정취를 느끼며 호젓하게 찾고 싶은 곳이 됐다.
매년 4월이면 갑사 앞마을에선 매화를 닮은 노란 꽃 황매화가 지천으로 깔려 ‘황매화 축제’를 열기도 한다는데, 아쉽게도 봄의 황매화 가을의 단풍, 겨울 설경이 아닌 폭염에 갑사를 찾게 됐다.
![]() |
| 갑사 대웅전 옆 배롱나무 |
여름엔 인근 동학사 계곡이 좋아서 몇 차례 방문했던 기억이 있지만, 갑사의 여름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굳이 ‘영규 대사’를 찾는 명분이 아니더라도, 대웅전 옆 배롱나무 등 아름다운 꽃길 따라 석조약사불앞에서 계룡산의 맑은 계곡물 소리에 마음을 맡기고 있다 보면 여름의 폭염쯤은 순간 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찰 입구 계곡에 몸을 담가도 좋겠지만 오랜 고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노송과 아름드리 느티나무 숲속 바위에 걸터앉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계룡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을 정도로 명찰이었던 갑사는 계룡갑사, 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었으나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甲)”고 해 갑사(甲寺)가 됐다고 전해진다.
![]() |
| 신흥암 등 표지판 |
갑사에 가게 되면 더불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폭염과 등산 준비 부족으로 이번엔 미룰 수밖에 없었다. 갑사에서 600여m 올라가면 용문폭포가 있고 이곳에서 또다시 600m 올라가면 암자 신흥암 뒤에 있는 천진보탑을 보고 싶었다. 북방을 담당하는 사천왕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관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탑 모양의 천연바위인데 아도화상이 이를 보고 갑사를 창건했다 한다.
천진보탑에 들렀다가 혹여 여유가 된다면 계룡산 절경 연천봉, 문필봉, 관음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명소 수정봉(675m)까지도 올라가고 싶었다. 언젠가는 가 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흥암까지는 필요할 때 사륜구동 차량이 불자들을 수송한다는 글을 보니 찻길도 있는가 싶다.
계룡산은 정상이 864m의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지리산에 이어 경주, 한려해상 등과 함께 두 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될 정도로 수려한 기운이 서린 곳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8백년 도읍지라고 소개해 조선 초기 계룡산 남쪽 지역이 도읍지로 거론될 정도였고 정감록에도 정 씨 왕가가 이곳에 도읍을 정한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신라시대 신성한 산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던 다섯 산(山), 5악(五岳)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묘향산, 지리산과 함께 3대 산신제를 지낸 영산(靈山) 중 하나였다.
이렇듯 영험한 곳으로 소문이 나서 전통적으로 계룡산 일대에서 여러 신흥 종교가 탄생하고 자란 지역이 되다 보니 갑사 올라오는 길에도 무속인들의 점집과 굿당이 많이 보인다.
![]() |
| 갑사에서 바라본 계룡산 능선이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과 닮았다. |
전체 능선의 모양이 닭 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 계룡산(鷄龍山)이라 했지만 갑사에서 바라보는 능선의 모양은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과도 닮았다.
계룡산 주위로 대전, 공주, 논산, 계룡시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장 많이 찾는 등산코스가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길인데, 예전 두 차례 와 본 산행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도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 공주 갑사
![]() |
| 갑사 전경 |
갑사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末寺)이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화상이 계룡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이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417년 구미 도리사 창건으로부터 3년 지난 후에 갑사를 창건한 것이 된다.
679년(신라 문무왕 19년) 의상대사가 ‘갑사’로 개칭하고 중창해 화엄종 사찰로 삼았다고 전해지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두 고승 아도화상과 의상대사의 얼이 함께 서린 곳이 됐다.
이런 역사를 증명하듯 경내에는 남북국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15m에 이르는 철당간(보물)이 있고 조선시대 숭유억불에서도 왕실의 비호를 받아 ‘월인석보’(보물)를 판각하기도 하는 등 지금도 사찰 내부에 각종 귀중한 문화유산이 보존돼 있다.
안타깝게도 갑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됐으나 1604년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해 오늘에 이르렀다. 국보로 지정된 ‘삼신불 괘불탱’을 비롯해 ‘철당간’, 고려 초 ‘승탑’과 ‘동종’, ‘월인석보’, ‘석가여래삼세불도’, ‘대웅전’ 등 보물과 ‘석조약사여래입상’, ‘강당’, ‘대적전’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
| 룡사 힐링센터 공사 현장 |
천년고찰로만 생각했는데 꼼꼼히 돌아보니 꽤 큰절이고 지금도 이곳저곳 불사가 이뤄지는 듯 공사가 한창이다. 절과 주차장 사이에 ‘계룡사 힐링센터’도 아주 큰 규모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
| 부도탑군 |
갑사 큰길주차장에서 계곡 숲길 따라 30여분 올라가면 사천왕문과 그 위쪽에 부도탑군을 볼 수 있다.
![]() |
| 갑사 사적비 |
20여기의 빛바랜 부도탑은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바짝 위 바위에 세워진 갑사 사적비가 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어 예전엔 누각이었을 것 같은 2층 구조 강당(講堂) 높은 곳에 옛 이름 ‘계룡갑사’ 현판이 예스럽게 걸려있다.
![]() |
| 범종각 |
현판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범종각과 보물 동종을 보관하고 있는 동종각이 배치돼 있다.
![]() |
| 동종각 |
![]() |
| 동종 |
강당 옆 담장 따라 약간 비껴있는 ‘해탈문’이라는 돌담 사이 돌계단 길을 걸어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 |
| 해탈문 |
대웅전 뒤쪽에는 오래된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 여름꽃들로 정원이 잘 꾸며져 있어 사찰 전체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
![]() |
| 대웅전 |
![]() |
| 대웅전 내부 갑사소조삼세불 |
갑사는 정유재란 이후 지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주요한 전각들이 모여 있는 중심권역과, 우측에 대적전을 중심으로 하는 옛 사적 터, 그리고 좌측에 표충원, 팔상전 등이 있는 곳으로 나뉘는데 유(U)자 계곡이 그 경계를 짓고 있다.
![]() |
| 삼성각 |
대웅전 뒤편으로 삼성각을 지나 관음전 앞에 오니 ‘월인석보 보장각’이 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 |
| 관음전 |
세조 때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편찬한 불교 대장경을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인 ‘월인석보 목판’은 우리나라 유일의 판목이라고 해 보물로 지정돼 있으나 실물을 보지 못했다.
![]() |
| 월인석보 보장각 |
계곡 옆엔 엷은 미소를 띤 ‘석조약사여래입상’이 바위틈에 모셔져 있는데 계곡의 폭포 소리를 들으며 중생의 병을 치료해 준다는 약사불 앞에 앉아만 있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 |
| 계곡 옆 석조약사여래입상 |
![]() |
| 갑사 석조약사여래 입상 |
계곡을 건너가면 옛 사적 터이다.
![]() |
| 대적전 |
![]() |
| 갑사 대적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
그곳 옛 대웅전 자리에 대적전이 있고 그 앞에는 고려 초기의 ‘승탑’이 있는데 조각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팔각지붕의 사리탑이다.
![]() |
| 대적전 앞 승탑 |
승탑과 대적전, 마당의 배롱나무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배롱나무들이 각기 적절한 위치에 잘 심겨 있어 갑사의 여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 |
| 철당간 |
승탑에서 돌계단 따라 내려가니 하늘을 찌를 듯한 ‘철당간’이 서 있다. 지금은 잡풀 속에 홀로 놓여 있지만 예전엔 이곳이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두는 사찰의 입구였다.
통일신라시대 철당간으로서 철통 24개가 연결된 15m 높인데 원래는 28개 철통이었으나 번개를 맞아 4마디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 |
| 갑사 공우탑 |
계곡 옆 삼층 석탑에는 탑 중간 돌들에 ‘공우탑’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갑사 재건 당시 공사용 재목을 매일 싣고 왔다가 완공되는 날 죽은 소의 공을 기리고자 만든 탑이란다.
![]() |
| 표충원과 영규 대사 기적비 |
![]() |
| 표충원 내 (왼쪽부터) 사명 대사, 영규 대사, 서산 대사의 영정 |
갑사는 호국사찰답게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 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원’과 공주 출신이며 갑사에 출가한 최초의 의승장 ‘영규 대사 기적비’가 사찰 내에 있다.
![]() |
| 표충원 마당의 맥문동꽃 |
슬픔을 위로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자주색의 맥문동꽃이 표충원 마당을 은은하게 장식하고 있다. 맥문동의 꽃말처럼 세 의승장의 ‘순결함’과 ‘고귀함’이 가득 스며있는 듯 보인다.
갑사 강당(2층)에는 템플스테이 복장을 단정히 갖춰 입은 20여명의 청춘남녀가 스님의 말씀에 열중이다.
갑사를 나오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영규 대사 묘를 찾아 호국의 달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8월이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