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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지휘자’ 백윤학 “춤이 곧 음악”

서울과학고·서울대 공대 출신
연주자들은 웃음 참기에 바빠
보수적인 1m 포디움 위 ‘혁명’
“내 춤, 음악적 순간 표현·지시”

 

포디움 위에 올라간 지휘자는 ‘겨울왕국’ 메들리를 연주할 땐 올라프에 빙의한 듯 잔망미가 넘치고 ‘알라딘’을 연주할 땐 우람한 지니가 된다. 관객들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고, 무대 위 연주자들은 ‘웃참(웃음 참기)’ 챌린지에 돌입한다. 하지만 정작 지휘자 본인은 비장하고 진지하다.

가로·세로 약 1m. 작디작은 포디움은 사실 엄격한 세계다. 이곳에 올라선 마에스트로는 오직 음악으로만 이야기한다. 당연히 말도 해선 안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찬란한 혁명이 시작됐다.

‘춤추는 지휘자’로 알려진 백윤학(50) 영남대 음악대학 교수(사진·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그의 지휘 실력만큼이나 ‘판타스틱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대가들도 젊은 시절엔 무대 위에서 춤을 췄다”면서 “춤추는 지휘자는 검색만 하면 나 말고도 많으니 ‘춤도 추는 지휘자’라는 별칭이 더 좋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무대 위 퍼포먼스만큼이나 이력도 남다르다. 다른 지휘자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의 세계로 진입했을 때 그는 서울과학고에 들어가 전국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입상했고,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했다. 그러다 대학 시절 합창단 동아리에서 지휘를 해본 경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프랑스 작곡가 포레(1845~1924)의 ‘레퀴엠’, 첫 지휘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면서 지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면 후회는 안 하겠다는 느낌이 강했죠.” 공부깨나 했던 수재는 졸업 후 서울대 음대 3학년으로 편입했다.

당시 ‘톤마이스터(TonMeister·소리의 장인)’ 직업을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음악가의 길을 선택했다.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음대로 편입한 사례는 그가 처음이었다. 일곱 살 때 시작했던 피아노 덕분에 편입을 위한 준비도, 재입학한 음대에서의 생활도 원만했다.

처음부터 ‘춤을 추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느끼는 음악을 그대로 몸으로 표현한 것. 그에게 포디움 위 춤은 ‘음악적 발현이자 열정’이다. 춤처럼 보이는 동작이 사실은 음악적 지시이자 음악 그 자체인 셈이다. 손 모양으로 ‘반짝반짝’ 별을 그리면, 연주자 역시 ‘반짝반짝’ 빛나는 음악을 만든다.

편입 이후 미국 명문 커티스음악원과 템플대에서 지휘와 오페라 코칭을 전공했다. 그는 “음악이 모국어는 아니라는 콤플렉스로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이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 유학 시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오디션에 수도 없이 응모했지만 족족 떨어졌다.

그는 “당시 받은 불합격 통지서 30~40장은 지금도 모아뒀다”며 웃는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몇 년 새 인기 공연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배경음악) 공연엔 그가 언제나 ‘섭외 0순위’다.

백 교수는 “누군가 OST 공연을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고 한다면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클래식 음악도 당대엔 늘 조금씩 혁신적이었고, 우리가 아는 위대한 작곡가들도 당대의 대중적 멜로디를 빌리는 열린 방식으로 음악을 대했다”고 말했다. 그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무대에 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지, 형식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편 백윤학은 오랜만에 합창단 지휘에 나선다. 오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시합창단의 여름 가족 음악회에서다. 그가 프로 합창단을 지휘하는 것은 30년 만이다. 그가 합창단 앞 포디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단원들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어 가능했다.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로 문을 연 후 인기 오페라 ‘카르멘’ ‘일 트로바토레’ ‘나비부인’ ‘나부코’ ‘라 트라비아타’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