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평선과 수평선의 만남” 김제의 사찰 모악산 귀신사…서해의 망해사 [정용식의 사찰 기행]

(86) 전북 김제시 귀신사, 망해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전북 김제시 귀신사 전경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는 말을 예전에 종종 쓴 적이 있다.

공자는 인간의 성품과 자연의 특성을 연결해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유연하고 활동적이어서 즐거움을 추구하고 어진 사람은 산처럼 안정되고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아 장수를 누린다”고 해서 필자는 ‘인자(仁者) 지자(知者)’ 중 뭘 선택할지, 바다와 산중 어디를 좋아할지 고민해 본 적도 있다.

산이면 어떻고 바다면 어떠랴! 폭염을 피할 수만 있으면 무조건 오케이(OK)라고 할 정도의 더위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고즈넉함이 있는 곳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멍때리고 싶을 때 가면 좋을 곳은 어디일까.

전라북도 김제는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김제평야와 더불어 서해 수평선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동쪽 끝자락에는 모악산(793m)이라는 명산도 자리하고 있다. 호남 미륵 사상의 발원지라는 모악산에는 국보 ‘미륵전’이 있는 금산사라는 큰 천년고찰과 80여개의 암자가 있으며 또 다른 천년고찰 귀신사도 있다.

김제 진봉산에서 바라본 만경강과 서해 모습

김제는 전라북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 위치하고 서해까지 연결돼 있는데 지금은 끝자락에 새만금호가 있다. 새만금 개발로 퇴적층이 형성돼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만경강 끝자락은 명승으로 지정됐고, 그곳에는 서해를 바라보고 있는 망해사라는 고찰이 있다.

동쪽 끝 모악산자락 귀신사와 서쪽 끝 바다에 접해있는 망해사는 같은 김제시에 속했지만 자동차로 1시간 거리나 떨어져 있다. ‘귀신사와 망해사’ 두 사찰은 크지 않고 꾸밈이 없어 소박한 편안함으로 반겨주는 사찰이고 한글 이름 어감이 너무 강렬해 머리에 각인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믿음이 돌아온다’는 귀신사(歸信寺)와 ‘바다를 바라본다’는 망해사(望海寺)는 실제는 좋은 뜻을 가진 이름들이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여러 해석이 분분해지기 십상이다.

산을 품은 사찰과 바다를 바라보는 사찰을 한여름 폭염 속에 찾아갔다. 망해사는 서해 일몰 명소라 하여 일부러 노을 지는 시간에 맞춰서 갔다.

김제 귀신사 배롱나무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末寺)인 두 사찰의 앞마당에는 꽃을 활짝 피운 배롱나무 한 그루가 화사하게 반겨준다.

모악산 귀신사 대적광전과 비구니 스님

김제 금구향교 홍살문

귀신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676년(문무왕 16)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창건 시 명칭은 국신사(國信寺)로 중앙(궁궐)의 입장을 대변하는 화엄 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일대에선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한다. 9세기 초에 귀신사로 개명했고 고려시대 왕자였던 원명국사가 중창해 고려 말까지 번성했다.

조선시대에는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불리는 김시습(1435~1493년)이 폐허가 된 귀신사를 보고 ‘귀신사허(歸信寺墟)’라는 시까지 지었다고 한다. 아마도 재건과 폐허가 반복되다가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명에 의해 중창됐다고 하니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제 금구향교 만화루

김제 하면 넓은 평야의 곡창지대다 보니 현감들이 부임하면 중앙에 바칠 뇌물을 모으느라 착취를 일삼고 떠날 때는 공적비를 세우고 갔다고 한다.

김제 금구향교 입구 비석

현감들이 스스로 도적임을 증명했다고 비아냥 받은 공적비들이 즐비하게 있다는 김제향교를 잠시 들러봤다.

금산사 방향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자그마한 마을 길 입구에 ‘귀신사’와 ‘청도리 삼층석탑’ 이정표가 함께 있다.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지만 잘 꾸며진 아담한 사찰이다.

김제 귀신사 돌계단

돌계단을 올라가니 무성하게 잘 자란 배롱나무와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이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귀신사 대적광전

17세기에 다시 지은 단층의 대적광전은 원래는 2층이었다고 하며, 빗살무늬 창과 단청을 하지 않은 전각이 예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내부의 흙으로 빚은 본존불 비로자나불과 좌우 아미타불과 약사불 등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도 보물이라는데, 여러 문화재를 보유한 천년고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절이다.

귀신사 명부전

귀신사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비구니 스님 두어 분이 누군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부산하다.

한때는 금산사를 말사로 둔 큰절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저 시골에 있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작은 사찰의 면모만 남아있는 듯하다.

귀신사 대적광전 뒤 돌계단

대적광전 뒤편 돌계단 위 언덕에는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귀신사 삼층석탑과 그 옆에 석수(石獸)가 있다.

귀신사 삼층석탑

3층 석탑은 신라시대의 조형미를 그대로 나타내듯 탑의 선이 정밀하고 빼어난 작품이지만 상단부가 많이 훼손돼 있다.

귀신사 석수

석수(石獸)는 사자 모양 같기도 한데 등 위에 남근(男根) 같은 석주(石柱)가 꽂혀 있어 민간신앙의 남근 숭배 사상이 불교와 융합돼 형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석수에서 바라본 귀신사 전경

돌계단 끝 언덕 양옆으로 오래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넓은 그늘을 형성하고 있다.

계단 끝에 앉아 법당에서 들려오는 염불 소리를 들으며 먼발치 마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더위도 세상 시름도 다 잊을 만큼 평온해진다.

귀신사 영산전

석탑과 비슷한 조각 수법을 지녔다는 승탑이 사찰에서 꽤 떨어진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다고 한다. 전성기에 절의 크기가 매우 넓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김제 청도리 삼층석탑 표지판

승탑도 보고 싶었지만 ‘청도리 삼층석탑’을 찾아 마을을 몇 바퀴 돌며 헤매느라 진땀을 빼다 보니 승탑 갈 염두가 나지 않았다.

청도리 삼층석탑

사찰 뒷길 100여m 지점에 있었는데 자주 사용하는 길이 아니다 보니 이정표 하나에 의존해 엉뚱한 곳만 헤매는 꼴이 된 것이다.

나오는 길에 아쉬워 멀리 떨어진 입구에서 다시 한번 대적광전 사진을 남기고자 했으나 염불 중에 열린 문 안으로 필자가 보였는지 사진 찍지 말라 손사래 치시는 비구니 스님의 희미한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지평선과 수평선을 한 몸에, 명승 김제 망해사

김제 망해사 안내판

망해사는 김제의 서쪽 끝자락에 있다. 사찰 종각에 걸린 서해 낙조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일몰 명소라고 해 늦은 오후 시간을 택해 찾아갔다.

642년(의자왕 2)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했고 왕조의 부침에 따라 성쇠를 거듭하다가, 조선 시대에 거의 폐허가 됐으나 1609년(광해군 1) 진묵 대사(震默大師)가 중창하고 머물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고 한다. 귀신사도 망해사도 그리고 많은 사찰이,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으로 폐허와 중창을 거듭하며 부침이 계속됐다.

진묵대사는 여러 곳에서 많은 이적을 행해 살아있는 부처로도 불렸던 스님으로서 술을 좋아해 술을 ‘곡차(穀茶)’라고 이름 붙인 스님이기도 하다.

망해사에서 기거할 때 일화 중 재미있는 것은 바로 앞이 바닷가라 해산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 굴을 따서 먹으려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왜 스님이 육식을 하느냐며 시비를 걸자 스님은 “이것은 굴이 아니라 바위에 핀 꽃(석화)이다”라고 해 ‘석화(굴)’의 어원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진봉산 정상의 전망대

진봉산 정상 전망대의 김제 설치물

조그만 언덕 같은 진봉산(72m) 정상에는 ‘새만금의 중심도시 김제’라고 쓰인 설치물이 있는 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시야 속에 서해와 멀리 고군산군도를 조망할 수 있다.

만경평야 지평선

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니 대한민국 제1의 곡창지대인 만경평야의 지평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진봉산 고개 넘어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 위에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서있어 ‘망해사’라 했고 망해사는 진봉산을 뒤로 두고 탁 트인 서해를 향해 있다.

지금은 새만금 간척지 사업으로 만경강의 연장인 새만금호 지역이 돼 포구 주변에 습지가 형성돼 있고 멀리 새만금 다리 길도 그대로 드러나 일몰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새만금 바람길 안내도

그래서 망해사 일원이 ‘국가 자연유산 명승 1호’로 지정됐고 전망대와 망해사는 걸어서 10여분 거리이며, 초입엔 10㎞ 정도 되는 ‘새만금 바람길’ 안내도가 있는데 망해사가 딱 바람길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 어울리지 않게 극락전, 낙서전, 삼성각, 요사채, 종각 등 달랑 몇 개의 전각만이 있는 초라한 규모이다.

게다가 2024년 10월 명승 지정되기 8개월여 전에 극락전이 화재로 소실되는 안타까움까지 더하게 됐다.

화재로 소실된 극락전 자리에 마련된 임시 공간

그 자리엔 임시공간을 만들어 불사가 진행 중이었다.

망해사 팽나무

진묵대사는 망해사 낙서전(樂西殿) 창건 시 팽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 나무들이 만경강을 바라보는 웅장한 자태로 400여년 이상의 긴 세월의 무게를 표출하고 있다.

망해사 낙서전

망해사 낙서전 내부

기역(ㄱ)형 평면을 갖춘 건물 낙서전은 방과 부엌이 딸려있어 아마도 법당 겸 스님의 거처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독특한 건물이다.

망해사 범종각

바다에 가장 인접한 곳에 설치된 날렵한 형태의 범종각에는 커다란 범종이 설치돼 있고 누구나 세 번 종을 칠 수 있도록 안내돼 있다.

망해사 범종각

해 질 무렵 서해를 조망하며 종을 치는 필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한 감동을 주며 범종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일몰 시각 만경강 하구의 모습과 어우러져 더욱 청아하다.

망해사 5층 석탑

대웅전 뒤 진봉산 자락에 매달린 듯한 삼성각과 마당 끝자락의 조그마한 5층 석탑, 그리고 그 옆의 배롱나무가 사찰을 더욱 평온하고 고즈넉하게 만들고 있다.

망해사 배롱나무

배롱나무 옆 바위 위에 편하게 걸터앉아 서해의 일몰을 감상하며 상념에 젖어 드니 명상이 따로 없다.

망해사 삼성각

망해사 돌담 따라 노을 사진과 망해사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 수십 점이 전시돼 있어 분위기를 더해준다.

망해사 돌담에 전시된 풍경 사진

서해 밑자락에 내려와 있던 구름 속으로 해가 들어가니 노을이 새만금호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것도 잠시, 일순간 어둠이 찾아온다.

종각도 배롱나무도, 낙서전도 모두 어둠 속에 잠기고 오직 요사채 희미한 불빛과 돌담을 수놓은 오색등만이 내 마음을 비치고 있었다.

망해사 돌담의 오색등

상념의 시간을 끝내고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인가 보다. 주차장에서 가파른 언덕 아래쪽에 ‘바람의 정원’이 있다는 이정표가 이제야 보인다.

꽃이 만개하는 계절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할 것이다. 모악산 귀신사도 좋고, 서해 망해사도 좋은데 필자는 인자(仁者) 쪽일까, 지자(知者) 쪽일까.

아직도 그 해법을 풀지 못한 채 고민을 안고 밤길을 달린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