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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대기업 성장 제조사 단 두곳 뿐…“피터팬 증후군 만연, 일찌감치 어른 포기” [자산 2조 덫에 걸린 기업들]

대기업·상장 회피 현상 만연…제조업 일자리 창출도 끊겨
국내 제조기업 42%가 ‘50인 미만’ 소기업…미국 2배 넘어
셀트리온도 대기업 집단 지정에 R&D 혜택 축소부터 걱정
경영권 약화에 상장도 리스크…“한국에선 상장이 도박”

[챗GPT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성장 잠재력을 가진 기업들이 대기업으로의 도약은 물론 상장조차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혜택 축소나 경영권 약화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장기적으로 고용 감소로 이어지면서 국내 경제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90년 이후 대기업 성장 제조사 2곳…“고용 축소 악순환”


4일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 기업집단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중소기업으로 시작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11개 기업 중 제조기업(그룹규모 기준)은 셀트리온과 에코프로 2곳뿐이다. 나머지는 8곳이 정보통신기술업체, 1곳은 도·소매업체였다.

이는 국내 산업 구조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미국과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크다. 20년 전인 2005년과 올해 미국의 시총 10대 기업을 비교하면, 미국의 경우 자리를 지킨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 1곳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밀려나고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새롭게 등장했다. 반면 한국은 삼성, SK, 현대차, LG 등 대부분이 유지되고 HD현대와 농협이 2곳이 새로 진입하는 데 그쳤다.

대기업 육성은 ‘일자리’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특히 제조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다. 전·후방 산업과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어 공급망 단위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21년부터 4년 연속 대기업 집단에 포함된 셀트리온의 경우, 전체 임직원 수가 2020년 2041명에서 지난해 2680명으로 700여명 늘어났다. 고용노동부도 이같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인정해 셀트리온을 지난해 ‘일자리 으뜸 기업’으로 선정했다.

전문가들은 셀트리온과 같이 일자리 창출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성장을 꺼리면서 고용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고용 추세를 보면 대부분이 제조업, 대기업에서 일어난다”며 “그러나 제조업 대기업이 크지 못하면서 고용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제조기업 중 종업원 50인 미만인 소기업은 42%로 미국(18%), 독일(19%) 등의 2배가 넘는다. 반면에 대기업의 제조업 일자리 비중은 28%에 그쳤다.

피터팬 증후군 만연…대기업 해제됐던 셀트리온도 “환영”

그러나 국내 기업들에게 대기업으로의 성장은 도약의 기회가 아닌 ‘악재’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2016년 셀트리온이 대기업으로 지정됐다가, 지정 기준이 상향되며 다시 해제됐을 때에도 셀트리온 측은 이를 오히려 호재로 받아들였다. 가장 큰 이유는 연구개발(R&D)에 대한 혜택 문제였다. 셀트리온은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R&D 투자가 많고 기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세액공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지정 해제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혁신기술과 관련한 기업 R&D에 한해선 세액공제 비율을 높여주는 혜택이 있지만 산업 구조를 고려해 이 역시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민간 R&D 투자 환경 개선과 산업기술혁신 성장을 위한 조세정책 포럼’에서 “국가전략기술과 신성장·원천기술 R&D는 높은 공제율을 적용받지만, 대상 기술이 한정적”이라며 “기술 간 융합이 빠른 만큼 일반 R&D 공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하면 경영권 잃는다” 인식에 상법 개정까지

대기업은 물론 상장조차 중소·중견기업들에겐 위험 요소가 더욱 많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경영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기업지배구조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짚었다. 특히 주주 권리 확대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에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같은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한 1차 개정안엔 이사 선임 때 주주의 의결권을 늘리는 집중투표제,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내로 제한하는 3% 등이 담겼다.

이와 관련 박양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기업 입장에선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경영적 판단을 하더라도 일부 주주의 이해관계에 반하면 소송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글로벌 산업 환경은 특정 분야를 선점하는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데 신속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준선 교수는 “상장하면 소액주주의 공격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데 경영권 보호 장치는 부족하고, 마지막 장치인 자사주 소각까지 의무화하는 상황”이라며 “한국에서는 상장 자체가 위험한 도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 입장에서의 리스크는 큰 반면에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고성장 중소기업이 규모를 키우는 주요 방식인 다른 중소기업 대상 M&A에 대한 혜택이다. 현재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주식취득 때에만 기술가치 금액의 5% 세액공제가 전부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나라 기업 성장정책은 기업이 성장하면 형평성을 이유로 지원이 단절되거나 축소되는 ‘성장 역차별 구조’”라며 “성장 가능성이 높거나 실제로 빠르게 성장 중인 기업에는 보상과 인센티브를 제공해 글로버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