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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 인력 훈련’ 언급에 韓 기업들은 “기술까지 뺏길라”

트럼프, 韓 인력 필요성 언급
입국 문제 해결 시그널에도 韓 기업 신중
‘美 인력 교육’ 전제 있을 시 공장 운영 차질
공장 설계 노하우 등 민감 정보 유출 우려
“韓 반도체 공장만 가도 외국인 근로자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헤럴드경제=한영대·서재근 기자] 미국이 현지 인력 교육을 조건으로 한국인 입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놨지만, 한국 기업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 인력 교육 과정에서 공장 설계 노하우와 같은 민감한 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 입국 정책에 확실한 변화가 있기 전까지 ‘신중모드’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일요일에 전 세계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하는 투자에 대해 매우 감사해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언급하면서 “그는 이들 기업이 고도로 숙련되고 훈련된 근로자들을 (미국으로) 함께 데려오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외국 기업들이 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은 물론 외국 근로자들과 미국인 근로자들이 함께 일하며 서로 훈련하고 가르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지금 이 나라에 배터리에 대해 아는 인력이 없다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 일부 인력을 (미국에) 불러들여 우리 인력이 배터리 제조든 컴퓨터 제조든 선박 건조든 복잡한 작업을 하도록 훈련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기업의 도움 없이 배터리와 조선 등 일부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힘든 만큼 비자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국내 기업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비자 문제 해결 과정에서 미국 인력 확대 및 교육이란 전제가 붙을 시 ‘기술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는 기업의 기술 노하우가 집결돼 있는데, 교육 과정에서 기업의 민감한 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공장 설계 노하우는 중요한 기술인 만큼 외부 인력에 노출되지 않은 게 관행”이라며 “실제 국내 주요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만 가도 외국인 근로자는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업체가가 해외에 진출할 때 통상적으로 공장에 들어가는 장비, 설비는 국산 제품을 사용한다”며 “이때 해당 설비 제조사에서 전문 인력을 보내 제품을 설치하는 데, 이 같은 역할을 미국 근로자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LG에너지솔루션인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배터리 생산 공장 전경.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전체 공사 일정은 물론 향후 공장 운영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현지 인력들에게 공장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기초적인 기술을 알려주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교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기업엔 부담으로 작용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기지를 운영하는 것은 크게 ‘공장을 짓는 과정’과 ‘완공 후 운영하는 과정’으로 나눠 생각해야 한다”며 “단순하게 미국인 고용을 늘려라는 식의 요구는 업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완성된 생산 시설에 배터리 제조 로직 등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만 최소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리스크가 존재하는 만큼 한국 기업들은 미국 비자 정책 수정안의 윤곽이 드러나야 인력 파견 방향 및 규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주축인 한화오션의 경우 현재 미국 필리조선소에 주재원용 비자(L-1)를 지닌 한국인 직원 50명을 파견한 상황이다. 필리조선소 건조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인 직원 파견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당장 파견 규모 확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주축인 HD현대는 지난해 7월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서울대 및 미시간대 등과 조선 인재 양성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만 비자 문제가 확실히 매듭이 지어지고 난 후 인력 파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추진 중인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미국을 설득하고, 기업들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재계는 강조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적극 나서 미국의 애매모호한 이민 단속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명확한 기준을 세워주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대규모 구금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며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추진 중인 현지화 전략은 제자리걸음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