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특경법으로 가중처벌…주요국 유일
살인죄 준하는 처벌…기준 광범위·모호
재계 “경영 판단 원칙 등 보완입법 우선”
與 “도전적 경영 판단 지원·제도 정비”
살인죄 준하는 처벌…기준 광범위·모호
재계 “경영 판단 원칙 등 보완입법 우선”
與 “도전적 경영 판단 지원·제도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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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 단장과 오기형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위원장, 경제8단체 상근부회장이 9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경제8단체 간담회’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한상의 제공] |
1·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자사주 매입시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개정안까지 여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제계는 이에 대한 보완 입법도 신속 이행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중 특히 기업들은 배임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데, 처벌 기준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어 빠르게 현실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계 “적용 범위 너무 넓고 처벌은 가혹”=경제단체들은 “한국의 배임죄 적용 범위가 넓고 처벌이 가혹한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비롯해 이사회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법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상의)는 3일 ‘경제형벌 개선 건의’를 통해 배임죄 개선을 포함한 18개 경제형벌 개선 과제를 정부에 전달한 바 있다.
상의는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 개정으로 배임죄 여부에 대한 기업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배임죄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과 형법·상법에서 배임죄를 가중 처벌하고 있는데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개선이 시급하다고 꼽은 사안은 과도한 처벌 수준이다. 특경법상 배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는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준하는 수준이다.
주요국 가운데 배임죄와 관련, 특경법을 통해 가중처벌하는 사례는 한국이 유일기도 하다. 실제 독일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벌금형’, 프랑스는 ‘7년 이하 징역 혹은 벌금형’, 일본과 영국은 각각 ‘10년 이하 징역 혹은 벌금형의 처벌 형량’을 적용하고 있다.
▶가중처벌 관련조항 개정 한차례…이후 35년간 변화 無=법안이 경제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경법은 중대 경제범죄를 가중 처벌한다는 취지로 1984년 만들어졌다. 제정 당시 가중처벌 기준금액 ‘1억·10억원’에서 1990년 법 개정으로 ‘5억·50억원’으로 상향됐다. 그러나 이후 35년간 이 기준은 변하지 않았다.
상의가 지난달 발간한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1990년 당시 가중처벌 기준 금액 ‘5억·50억원’은 현재 화폐가치로 약 15억·150억원에 해당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역시 최근 발표한 ‘기업 혁신 및 투자 촉진을 위한 배임죄 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1990년 이후 35년 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1.4배 증가했음에도 (특경법) 가중처벌 기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과도한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특경법상 배임죄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나치게 넓은 적용 범위도 개선돼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현행법률상 배임죄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폭넓게 규정한다. 법 해석에 따라 기업 임원은 물론 지시에 따라 실무를 수행하는 일반직원도 배임죄 주체로 처벌받을 수 있는 셈이다. 반면, 독일의 경우 ‘타인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법률상 배임 행위 요건도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두고 있어 법원이 이를 광범위하게 해석할 경우 정당한 경영활동까지 배임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손해 발생 위험만으로도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경우 ‘이익을 도모하거나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배임죄를 규정, ‘목적’이 있어야만 배임죄가 성립하도록 적용 범위를 설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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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 기소 인원, 日의 31배=경총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10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인원이 연평균 31명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965명으로 약 31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차이를 고려해도 우리나라에서 배임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게 경총의 설명이다.
광범위하고 모호한 규정으로 고소·고발이 남용되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배임죄 기소율(검찰·경찰이 처리한 전체 범죄 사건 중 실제 기소로 이어진 비율)은 14.8%로 전체 사건 평균 기소율(39.1%)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배임죄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법률에 명문화하지 않고, 판례로만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만큼 경영진의 정당한 경영 판단에도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어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상의는 보고서에서 “판례에서 인정되는 경영판단의원칙을 상법, 형법 등에 명문화해 검찰 기소 단계에서부터 이사의 책임을 면책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면책, 형사사건은 물론 민사사건(손해배상)까지 면책한다는 내용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與 “투자·혁신 뒷받침하는 도전적 경영 판단 지원”=이에 재계는 끊임 없이 배임죄 현실화를 포함한 보완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일준 상의 상근 부회장은 9일 서울 중구 상의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경제8단체 간담회’에서 “상법뿐 아니라 노란봉투법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법이 개정 되다 보니 기업들의 걱정이 많다”며 “배임죄, 경영 판단의 원칙 등 보완 입법이 우선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과거에 상법이 개정될 때는 전문가 특위 등을 통해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법안이 마련되고 국회에서 논의됐는데 최근 두 차례 상법 개정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처리되고 있다”며 “1차 개정 후 주주 등에 대한 해석이 논란이 있는 상태에서 2차 개정까지 이뤄지면서 기업들의 불안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여당 측은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정들을 재검토해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권칠승 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 단장은 “성장 전략으로서의 법과 제도의 정비가 (TF의) 원칙”이라며 “기업 활동과 민생 경제를 억제하는 여러 규정들의 합리성을 재검토하고 기업과 국민이 예측 가능한 법 질서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와 혁신을 뒷받침하는 도전적 경영 판단을 지원하고 보상과 책임이 필요한 경우에는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를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며 “이것이 우리 기업의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며 민주당이 지향하는 균형”이라고 밝혔다.
서재근·서경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