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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만 얇지 않고 따뜻하지만 낭만적이지 않게…그것이 바흐의 소리” [인터뷰]

헤레베허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오는 18일 예술의전당, 6년 만에 내한

‘현존하는 가장 심오하고 학구적인 바흐 해석가’, ‘고(古) 음악 거장’으로 불리는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 [크레디아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음악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투명함과 자유로움, 제게 ‘소리의 순도’는 이런 것이죠.”

‘현존하는 가장 심오하고 학구적인 바흐 해석가’, ‘고(古) 음악 거장’으로 불리는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78)의 ‘소리의 이상’은 이곳에 있다.

모든 곡은 저마다의 소리를 갖는다. 헤레베허는 각각의 곡이 말하고자 하는 소리를 찾아내는 지휘자다. 그는 레퍼토리마다 딱 맞는 이상적 음향을 상상하고 구현한다. 그가 한국에서 들려줄 ‘바흐 B단조 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헤레베허는 “가볍지만 얇지 않고, 따뜻하지만 지나치게 낭만적이지 않으며, 정밀하지만 기계적이지 않은 소리를 상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누구나의 손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서로를 잘 알고 함께 호흡하는 고도로 숙련되고 지적인 음악가로 구성된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같은 앙상블에서만 가능하다”고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귀띔했다.

이들이 한국에 온다. 필리프 헤레베허와 그가 1970년에 창단해 55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오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내한 공연에선 ‘바흐 b단조 미사’를 연주한다.

헤레베허가 한국을 찾는 것은 2023년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의 내한 이후 2년 만이다. 그는 “다시 한국에 초대돼 영광”이라며 “한국은 언제나 아름답고 다채로운 나라다. 세계 최고의 관객 중 하나인 한국 관객들이 계신 이곳에서 다양한 문화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 즐긴다”고 했다.

‘현존하는 가장 심오하고 학구적인 바흐 해석가’, ‘고(古) 음악 거장’으로 불리는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가 콜레기움 보컬레 겐트와 한국을 찾는다 [크레디아 제공]

헤레베허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가 ‘바흐 b단조 미사’를 서울 공연에 올리는 것은 2006년 이후 무려 19년 만이다. 이 곡은 바흐의 대표적인 후기작. 그가 남긴 성악 작품을 집대성한 이 작품은 인류의 위대한 음악적 유산이다.

그는 “이 곡을 평생 200번 정도 지휘했는데, 단순히 프로그램의 한 순서가 아닌 실존적 여정에 가깝다. 매번 악보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며 “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을 듣고 전에 보지 못한 포인트나 발음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수십 년의 경험, 신학적 깊이, 대위법적 완성도, 그리고 제 이해를 뛰어넘는 영적인 힘이 응축된 작품, 그것이 이 작품들을 내게 특별하게 만든다”고 했다.

헤레베허는 이 곡을 1988년, 1996년, 2011년 등 총 세 차례 녹음했다. 그의 음악은 작곡 당시에 사용한 악기로, 그 시대의 연주법과 해석에 집중한 ‘역사주의 연주’에 기반한다. 이런 이유로 정통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헤레베허의 연주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역사주의 연주를 통해 우리는 바흐의 작품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향수나 순수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바흐가 상상했던 소리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그는 “이 악기들은 더욱 투명하고 따뜻하며, 수사적인 명료함을 제공해 음악의 구조와 의미를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현존하는 가장 심오하고 학구적인 바흐 해석가’, ‘고(古) 음악 거장’으로 불리는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 [크레디아 제공]

“목소리와 악기의 균형은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음악은 덜 거대하고 더 친밀하며 영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호흡합니다. 이를 통해 바흐의 목소리를 ‘더 크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진실하게’ 전달하는 거죠”

헤레베허는 의학을 공부하다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벨기에 겐트 대학에 다닐 때 만난 친구들과 모여 만든 앙상블이 바로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다. 그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는 저의 음악적 기반이자 집”이라며 “제 삶을 형성한 동시에 연주자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고 정신과 의사의 길을 내려놓고 전업 음악가로 나아갈 힘을 줬다”고 말했다.

의학과 음악은 공통점이 없어 보이나, 헤레베허는 정신의학을 공부한 경험은 “지휘자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음악가들은 보통 매우 개방적이고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풍부하다”며 “하지만 음악원과 달리 대학교에선 사고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에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휘자는 무엇보다도 분석적인 사고력이 있어야 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지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헤레베허는 취미로 음악을 시작해 학구적, 전문적으로 접근해 수십년간 ‘정신의 언어’로의 음악길을 걸어왔다.

“어떤 면에서 음악은 영적인 소통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심오한 인간적인 방식으로 말이죠. 음악은 언어가 없어도 고요, 긴장, 기쁨, 고통, 초월을 나눌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공연을 통해 음악이 단순한 소리를 넘어 마음과 정신을 동시에 울리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저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