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무혐의 판단에 묻힐 뻔한 사건
檢, 압수수색·자백 이끌며 진실 밝혀
보험사기 사건도 검찰·경찰 협업 성과
“수사·기소 분리시 피해자 억울함 커져”
檢, 압수수색·자백 이끌며 진실 밝혀
보험사기 사건도 검찰·경찰 협업 성과
“수사·기소 분리시 피해자 억울함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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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중소기업에서 있었던 경영권 탈취 시도 사건. 경찰은 이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검찰은 보완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검찰 깃발 [연합] |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경영권 탈취’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회사 대표의 고등학교 동창이 회삿돈을 빼돌리고, 경영권을 빼앗으려고 했다. 당초 주범 A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에서 자백했다. 법원 선고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범 B씨에게는 유죄가 확정됐다.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없었다면 경영권 분쟁으로 ‘진흙탕 싸움’이 빚어질 뻔했다. 애초 이 사건은 한 차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적이 있었다. 초기 수사를 맡은 경찰에서 경영권 탈취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검찰에서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하는 등 보완 수사를 한 덕분에 자백과 기소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회사를 대리한 박원연 변호사(법무법인 로베리)는 16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1차 수사기관인 경찰의 판단에 대해 기소권자인 검찰이 검토·보완한 덕분에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 당초 무혐의 처분=본지 취재에 따르면 피해 회사는 해외 제품을 수입해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기업이었다. 이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피해자 C씨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A씨를 만났다. A씨는 C씨를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전무를 맡았다. C씨는 세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씨의 소개로 그의 후배 B씨를 명의상 대표로 임명했다.
C씨는 A씨를 신뢰했지만 A씨는 C씨가 회사 경영을 방만하게 한다고 여기고, 경영권을 빼앗아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C씨가 회사 운영자금을 구해달라고 하자, A씨는 회사 주식을 담보로 대출금을 구해왔다. 정상적인 대출인 척 했지만 사실은 A씨의 처형이 빌려준 돈이었다.
대출 계약에도 독소조항이 있었다. 돈을 갚지 못하면 C씨가 관리하는 회사 주식 전체가 담보로 넘어가는 조건이었다. A씨가 B씨를 명의상 대표로 추천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A씨는 B씨를 이용해 C씨의 주식을 가로채고, 법인카드·인감·비밀번호·공인인증서 등을 갱신·변경했다.
뒤늦게 A씨의 계략을 알게 된 C씨는 A씨와 B씨를 고소했지만, 경찰의 판단은 실체와 거리가 멀었다. 경찰은 핵심 혐의인 경영권 탈취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범행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횡령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C씨는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박 변호사는 “경찰 수사관은 A씨의 하소연만을 근거로 C씨의 주식이 합당하게 넘어간 것으로 판단했다”며 “공범에 대해 수사하려 하지 않았고, 경제 범죄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았다”고 지적했다.
▶검찰 보완수사로 반전…유죄 확정=반전은 검찰의 보완수사 덕분에 가능했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C씨 측이 추가 증거를 제출하자, 검찰은 공범인 등기부상 대표 B씨의 휴대전화를 압수, 디지털포렌식을 진행했다. 주범 A씨와 나눈 메시지 등 객관적인 증거가 확보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B씨 “회사 운영자금 내가 만들어보겠음. 어쨌든 내가 만든 게 깔끔하니.” A씨 “그래요. 이 건은 다시 안 올 기회라 생각합니다. 완전히 다른 형식의 계약서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의심을 피하죠. 그렇게 해 놓으면 안심할겁니다ㅋㅋㅋ”
이에 대해 검사는 A씨를 불러 “어떤 의미로 주고받은 메시지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A씨는 “이번 기회에 잘 하면 회사 명의를 가지고 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문자를 주고받은 시점에 회사를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다”고 답했다.
A씨의 자백이었다. 결국 사건의 진면목이 밝혀졌다. 검찰은 A씨와 B씨를 경영권 탈취 관련 혐의(업무방해), 횡령 두 가지 혐의를 모두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법원에서도 유죄가 인정됐다. A씨는 선고 당일 사망하면서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 B씨에게는 두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3단독 김정웅 판사는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으로 피해자(C씨)가 사실상 회사 경영을 불가능하게 하는 등 업무방해의 정도가 매우 무겁다”며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하며 휴대전화 메시지를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도 시도했다”고 밝혔다.
▶보험사기 사건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검찰의 보완수사 덕분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국내 한 손해보험사의 대구지역센터에서 센터장, 영업실장과 수십 명의 보험설계사가 보험사를 속이고 10억원대의 보험모집수당을 가로챈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원칙적으로 비대면 보험설계사는 전화마케팅을 통해 보험을 모집해야 한다. 보험사는 이들이 가족 등 지인을 보험에 가입시켜 수당을 챙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 서버에 연고·지인을 등록하게 한다.
그런데 해당 권한을 가지고 있는 센터장·실장이 설계사에게 현금, 고가의 선물 등 대가를 받고 사기 행각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수십 명이 동원된 조직적인 범죄였다. 수사 강도가 높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1차 고소장(피의자 3명) 접수를 받고 초동 수사를 맡은 경찰은 서로 “관할 문제로 조사를 안 하겠다”며 피의자의 주소지·고소장 내용 등을 문제 삼았다. 수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30여 명의 피의자는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조사에 대응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지 2개월이 지나서야 수사가 시작됐지만 경찰은 불송치 결정했다. 담당 수사관은 불송치 결정 이유에 대해 “피의자가 가입시킨 보험계약자들에게 전화로 물어봤으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진술이 아니었다”며 “추가로 입증할 증거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 역시 검찰의 보완수사 이후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지난해 6월 피의자들의 각 계좌를 조사하라고 하는 등 보완을 요구했다.
전체 30명에 대한 2차 추가 고소장이 대구지검에 접수되자, 대구남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전담 수사관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 측은 검찰·피의자별로 수사를 보완해야 할 사항과 증거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 뒤 지난 7월 피의자 30명 전원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이후 수차례 경찰과 검찰은 수사 보완 요구를 주고받으며 증거를 추가로 확보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지난달 경찰의 수사보완에 근거해 기소를 결정했다.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당시에도 고소 대리를 맡있던 박 변호사는 “검찰의 구체적이고 성실한 수사보완 요구와 여기에 충실한 경찰의 끈질긴 노력과 야근으로 자칫 가려질 뻔한 범죄사실을 규명하는 성과를 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앞으로 보기 드물게 될 수 있다.
▶“검찰 개혁안, 보완해야 할 부분 많아”=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앞으로 보기 드물어질 수 있다. 최근 정부가 검찰청 폐지와 함께 수사·기소권 분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건마다 자동으로 부여되던 수사통제 기능이 없어지고, 1차 수사기관의 판단이 사실상 최종 판단이 된다. 범죄 피해자인 고소인이 검찰 등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검찰 개혁안은 매우 우려스럽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업무 과중으로 일선 경찰서의 수사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청 폐지에 앞서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은 수사 미진 시 경찰의 처분결과에 대한 불복 절차”라며 “일선 경찰서의 수사인력 보강, 처우개선, 예산 편성과 물적 기반 확충도 필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범죄 피해자의 억울함이 없도록 보완장치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세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