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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과 FDI : 한국의 기회와 도전



지난 4월 2일, 미국 정부가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상호 관세를 발표했다. 글로벌 교역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무역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은 이 변화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맥킨지의 싱크탱크인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오늘날 세계 무역 질서의 변화를 크게 두 가지 렌즈를 통해서 본다. 하나는 상품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지리적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우호국 간의 교역 정도를 보여주는 ‘지정학적 거리’라는 기준이다.

무역의 지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난 15년간 상품의 평균 이동 거리는 4600km에서 5200km로 늘었다. 비유를 하자면 예전에는 서울에서 푸켓까지 거리를 이동하던 상품이 이제는 발리까지 이동하는 격이다. 반면 지정학적 거리는 좁아지고 있다. 이 말은 정치·외교적으로 가까운 나라끼리 거래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유럽과의 교역이 확대되고 중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줄어든 결과, 지정학적 거리가 약 5% 감소했다.

무역의 복잡한 역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중 관계다. 언뜻 보면 관세 장벽이 높아지고 교역량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의 부가가치가 동남아 등 제3국을 거쳐 여전히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중국 수입 규제 속에서 베트남이 최근 대미 전자제품 수출을 늘렸는데 베트남산 노트북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부품이 다수 포함돼 있는 식이다.

또 MGI가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6000여 개 품목을 분석한 결과, 희토류처럼 대체 불가능한 품목이 5%였고 대체가 쉽지 않은 품목은 60%에 달했다. 결국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서 무역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기보다는 예전과는 다른 형태로 ‘우회적 연결’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DI(해외직접투자) 흐름은 무역의 변화보다 더 직접적이고 선행적인 신호를 준다. 무역이 이미 생산된 상품의 이동을 보여준다면 FDI는 자본과 생산기지, 일자리의 이동을 통해 앞으로 산업과 공급망이 어디로 옮겨갈지를 미리 보여주기 때문이다. FDI는 미래 무역 지형을 예고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최근 MGI 분석에 따르면 2022년 이후 발표된 신규 FDI의 약 4분의 3이 반도체·배터리·데이터센터·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 집중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본의 이동에서도 무역과 마찬가지로 ‘프렌드쇼어링’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속도는 훨씬 빠르다. 무역의 지정학적 거리가 완만하게 좁아진 반면 FDI의 지정학적 거리는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축소됐다. 한국 기업의 경우 이 추세가 더욱 선명해 무려 4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는 구체적 투자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한국 주요 기업들은 미국에 누적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며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거점을 확대했다. 일부는 3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진행했고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도 각각 100억달러 이상을 집행했다. 반대로 한국으로 유입되는 FDI는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세 배 이상 늘었다.

이 변화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공급망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동시에 동맹국 중심의 네트워크에 편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안정적 시장을 확보하고 미래 산업에서 주도권을 넓힐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이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기업에는 세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시장과 고객을 겨냥할 수 있는 민첩한 조직 운영이 필요하다. 셋째 데이터 기반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무역과 자본의 흐름은 모두 ‘재편’이라는 거대한 방향 속에 있다. 한국이 이 파고를 위기가 아닌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쎄미온 야코블레프 맥킨지앤드컴퍼니 시니어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