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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시간들’ 윤가은 감독 “영화는 삶을 더 나아지게 해” [인터뷰]

BIFF 초청 ‘극장의 시간들’ 중 ‘자연스럽게’
관객 아닌 제작자 관점에서 극장 의미 조명
세 번째 장편 ‘세계의 주인’ 토론토 경쟁 초청

윤가은 감독 [(주)티캐스트 제공]

[헤럴드경제(부산)=손미정 기자] 극장이 여가의 당연한 일부이던 시절이 어느덧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젠 모두가 영화의 위기를, 극장의 침체를 말한다. 그 위태로운 흔들림 속에서 영화와 극장은 그럼에도 버티며 여전히 존재한다. 영화와 극장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오늘은 어쩌면 이들이 지금까지 우리의 인생에 남겼던 따뜻하고, 한편으로 아련한 흔적을 곱씹어보기에 더 없이 의미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감독과 관객의 시선을 자유롭게 오가며 그런 극장과 영화가 지닌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다. 영화는 이종필 감독과 윤가은 감독이 각각 연출한 영화 ‘침팬지’와 ‘자연스럽게’ 등 두 편으로 구성됐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돼 지난 19일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 이 60분 남짓의 영화는 이튿날 부산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관람하면서 하루아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극장의 시간들’ 속 두 편의 영화 중 두 번째 ‘자연스럽게’를 연출한 윤가은 감독과 지난 20일 부산 해운대구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이 대통령의 영화제 방문 전에 진행됐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소중했다”

“개봉을 앞둔 ‘세계의 주인’ 후반 작업이 한창일 때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어요. 팬데믹을 지나면서 영화를 만들 기회가 중요하고, 어렵고,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촉발한 제작 일정에도 냉큼 한다고 했어요. 한창 차기 장편을 만들고 있던 터라, 당시 느꼈던 일하는 즐거움을 연장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죠.”

윤가은 감독 [(주)티캐스트 제공]

‘자연스럽게’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과 어린이 배우들의 현장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배우 고아성이 감독으로 분했다. 어린이 배우들을 동료로 영화를 찍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극 중 고아성의 모습에서 전작 ‘우리들’(2016), ‘우리집’(2019)을 만들며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윤 감독이 투영되는 듯했다. 윤 감독은 “나라고 하기에는 아성 배우가 너무 과분하다”며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성 배우가 맡은 역할은 저를 대입해서 만든 것은 아니에요. 사실 오히려 배우가 스스로 만든 부분이 많았어요. 시나리오에는 대사가 아닌 간단한 설명밖에 없었거든요. 배우들과 함께 아주 간략한 설정만을 갖고 현장에서 함께 발견하고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윤 감독의 의도에 따라 영화의 모든 장면은 즉흥적인 연기로 채워졌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가 헐거울수록,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물론 얻은 것이 있으니 잃은 것도 있었다. 배우들이 대본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보하면 할수록, 제작진이 해야 할 일은 두 배, 세 배로 많아졌다.

“현장에서 발견한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선 제작진이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죠. 영화를 보면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면서 찍는 것 같지만, 정확한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제작진이 준비해야 하는 거예요. 함께해 준 훌륭한 제작진이 없었다면, 준비 과정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에서 극장은 후반부에 반전처럼 짧게 등장한다. 세 명의 영화광이 극장에서 만나며 시작하는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와 비교했을 때, 영화는 ‘극장의 시간들’이라는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에 윤 감독은 ‘자연스럽게’의 관객의 입장이 아닌, 만드는 사람으로서 영화에 다가가 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윤가은 감독 [(주)티캐스트 제공]

“제가 느낀 극장은 조금 다른 경험이에요. 만들면 만들수록, 제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관객들 앞에 걸리고 그것을 제가 봐야 영화가 완성된다는 생각이 강해져요. 스스로 만든 것을 극장에서 보는 것은 천차만별이거든요. 저는 요즘 그런 차원에서 저 나름의 ‘극장의 시간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는 자연스레 윤 감독의 인생에 자리 잡은 극장과 영화의 이야기로 흘렀다. 그에게 극장은 놀이터이자 일터이고, 동시에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도망쳐 오기도 하는 도피처다. 윤 감독은 “관객이자 감독으로서 극장이 내게 주는 의미는 수시로 바뀐다”며 운을 뗐다.

“극장은 친숙하면서 낯설고 특이해요. 깜깜한 곳에 자의로 그곳에 온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넣어놓고, 불을 끈 채 커다란 스크린을 들이밀며 어떠한 것을 보라고 하잖아요. 제게 극장의 의미는 그때그때 바뀌지만, 한 가지 변화하지 않는 것은 ‘극장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곳’이라는 점이에요. 극장은 영화가 좋든 나쁘든, 어떤 식으로든 삶을 환기하게 만드는 이상한 곳이죠.”

“감정의 대리경험이 삶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들어”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놓은 지 꼭 10년이 됐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영화관이 저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왔다. 윤 감독은 “영화가 시장에 나오면 손익분기가 넘었냐, 돈을 얼마나 벌었냐가 회자하지만, 영화가 내게 가졌던 의미는 그런 맥락은 아니다”면서 “나는 실제로 영화가 저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가 들려준 ‘아동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말했다.

“김 평론가가 어린이 동화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앞으로 아이들의 삶에 닥칠 많은 사건과 이해 불가의 문제들을 받아들일 때 그 통로로서 역할을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지만, 사실 동화를 통해 아이들은 ‘이런 감정도 있고,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경험하는 거죠. 영화도 그래요. 다양한 감정을 대리경험 하면서, 위로도 받고 때론 그것이 인생의 가이드가 되기도 하잖아요. 보는 경험을 통해 삶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영화인 것 같아요.”

윤가은 감독 [(주)티캐스트 제공]

내달 22일에는 그의 세 번째 장편인 ‘세계의 주인’이 개봉한다. ‘우리집’ 이후 윤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영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18세 여고생 ‘주인’(서수빈 분)이 홧김에 질러버린 한마디로 모두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의 주인’은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인 플랫폼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으로 초청돼 개봉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는 BFI런던영화제,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 이어 ‘중국의 선댄스’로 불리는 핑야오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됐다. 윤 감독은 영화를 만들고, 소개할 수 있음에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제가 6년 만에 장편을 만들었는데, 그간 논 것은 아니거든요. 사실 영화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도 자꾸 미끄러지다 보니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집’이 마지막이었으면 좀 더 즐길 걸 그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시기에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고, 그리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영화제라는 통로를 통해 제 영화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감사했죠.”

윤 감독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극장의 시간들’이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경험으로 남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윤 감독은 “여러 편의 영화가 묶이면서 저희도 몰랐던 새로운 경험과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 보였다”면서 “관객들 역시 각자의 극장 영화 경험에 붙여서 이 영화를 봐주신다면 감상하는 재미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