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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실사 통한 ‘석화 사업재편 타당성 검증’ 최대 관건

석유화학기업 사업재편계획 마련 시
만기연장·금리 연장 금융지원 틀 마련
권대영 부위원장 “재편, 빠를수록 좋다”

권대영(앞줄 왼쪽 일곱번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조용병(윗줄 왼쪽 여섯번째) 은행연합회장이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산업 구조혁신 지원 금융권 협약식에서 협약서에 서명 후 시중 은행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신유근 한국수출입은행 본부장, 최우석 경남은행 그룹장, 박주선 기술보증기금 전무이사, 김서중 한국자산관리공사 부사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이환주 KB국민은행장,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 권 부위원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최원목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정재용 한국무역보험공사 부사장. (윗줄 왼쪽부터)정해수 부산은행 부행장, 이준석 수협은행 부행장, 서정오 IM뱅크 부행장보, 이천민 SC제일은행 부행장보, 김병칠 금감원 부원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김경호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고재덕 광주은행 부행장, 정동필 전북은행 부행장, 김호대 제주은행 부행장, 백상현 IBK기업은행 그룹장 [연합]


금융권이 30일 체결한 채권금융기관 자율협의회 운영협약은 석유화학산업 사업재편을 위한 금융지원의 틀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채권단의 금융 지원은 당장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숨통을 틔울 것으로 기대된다.

채권단으로서는 리스크를 안는 작업인 만큼 각 기업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행할 수 있는 사업재편계획을 내놓느냐, 그 계획의 타당성을 어떻게 검증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향후 계획 이행에 대해서는 기업·자율협의회 특별약정을 체결해 점검하기로 했다.

한국산업은행 등 21개 금융기관이 이날 맺은 협약에 따르면 석유화학 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은 각 기업의 구조혁신 지원 신청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구조혁신을 추진하는 기업이 주채권은행에 지원을 신청하면 주채권은행은 채권 보유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자율협의회를 소집한다. 이때 자율협의회는 외부 회계법인 공동실사를 통해 기업이 수립·제출한 사업재편계획 실효성과 타당성을 살피고 필요한 만기연장, 금리조정 등의 금융지원 방안을 검토한다.

기업과 자율협의회가 협의해 도출한 사업재편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양측은 사업재편계획과 금융지원방안 등이 포함된 구조혁신 약정을 체결하고 사업재편을 본격 추진하게 된다.

이번 협약과 관련해 은행권은 더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위해 협약에 따라 만기연장, 금리조정 등이 이뤄지는 채권에 대해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해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정상기업이 자구계획의 이행을 약정한 만큼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건전성 분류를 상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사업재편 과정에서 채권이 고정 등급 이하로 부실화되더라도 정상 또는 요주의로 분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으로서는 충당금 적립 부담을 덜게 됐다.

정부가 올해 연말을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개편 시한으로 설정한 만큼 각 기업의 지원 신청이 연말까지 이뤄지면 내년 초에는 실질적인 지원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금융권은 예측하고 있다. 다만 개별 기업 채권단 차원에서 진행하는 작업인 만큼 각 기업이 처한 상황이나 사업재편계획의 구체성과 실행 가능성 등에 따라 시기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본 원칙은 기업의 철저한 자구 노력과 대주주의 고통 분담이 마련된 경우에만 지원에 나선다는 것”이라며 “각 기업이 준비하는 사업재편계획의 충실도와 실현 가능성이 향후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고 회생가능여부도 여기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협약으로 금융권이 유동성 지원 준비를 마치면서 공은 석유화학 기업에 넘어가게 됐다. 기업의 자발적인 신청이 없으면 금융지원 절차도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협약식 현장에서 석유화학 업계의 감축목표 달성 계획이 미진하다고 지적한 것도 업계의 적극적인 이행 노력을 당부하기 위함이다.

그는 “아직 산단별, 기업별 구체적인 감축계획과 자구노력의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면서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산업계의 반응에 심히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자율적인 사업재편이 때를 놓치면 채권단 역할도 관찰자, 조력자로만 머무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위원장은 협약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신규자금(뉴머니)도 넣어야 하겠지만 기업이 하는 것을 먼저 봐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당초 사업재편계획을 내는 기한을 연말로 설정했으나 빠를 수면 좋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연말까지 기다릴 것 없다”면서 “기업 의지와 실행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업재편 그림을 조속히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금융위는 채권단도 책임감을 가지고 타당한 재편계획을 수립하는 데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석유화학은 산업 구조가 복잡한 데다 장치산업 특성상 기업의 자산과 여신규모가 상당해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사업재편계획을 수립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채권단 자율협약 추진 과정에서는 기업 등 구조조정 경험이 풍부한 산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석유화학 기업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약 33조원 수준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산은의 채권으로 알려져 있다.

박상진 산은 회장은 협약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기업마다 주채권은행이 정리를 하는데 일관성이 있어야 하기에 일종의 간사 은행으로서 조율하고 의견 소통을 하려고 한다”면서 “일단 각 기업이 자구책을 내놓고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은행은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석유화학 산업 재편이 규제 완화나 금융지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산업계가 적극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현대 산업은 전부 기술 산업인데 모든 문제를 규제와 금융 지원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서 “산업 정책을 통해 어떤 기술을 어떻게 개발할 건가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은희·김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