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국가론·END론 의제 논쟁
미국과 관세·안보 협상 국면에서 이재명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라인(위성락 국가안보실장·조현 외교부 장관·정동영 통일부 장관)에서 잇달아 이견이 분출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라는 대북기조를 놓고 해석 차이가 표출되면서 ‘실용외교’ 노선에 이상신호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 주요 참모들 사이에서 한미동맹을 우선해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이른바 ‘동맹파’와 자주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자주파’와 관련한 언급이 공공연히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위 실장은 30일 보도된 국내 통신사들과 인터뷰에서 “제가 ‘무슨 파’ 이렇게 돼있는데, 저는 협상 국면에서 어느 포인트를 찌르고 들어가느냐, 무엇이 최적의 국익이냐만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 실장이 ‘동맹파’라는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은 것이다.
위 실장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도 “저도 (대통령실) 안에서 아주 강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 중 하나”라며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 양상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주파와 동맹파를 둘러싼 본격적인 논란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6일 더불어민주당 토론회에서 “이른바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며 “대통령 측근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수면 위로 불거졌다. 정치권에서는 해당 발언이 위 실장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후 정부 고위관계자는 26일(현지시간) 외신과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 안이 동맹파와 자주파로 나뉘어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 뜻도 그렇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 참석자들 모두 실용외교를 추구하는 ‘실용파’”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논란은 특히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천명한 ‘END(교류·Exchange, 관계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이니셔티브’를 둘러싼 해석을 둘러싸고 한층 증폭됐다.
위 실장은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세 가지를 별도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 ‘비핵화는 안 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세 요소가 우선순위 없이 서로를 추동하는 방식으로 병행 추진하는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외교 용어로서 ‘수교’를 뜻하는 관계정상화(Normalization)를 둘러싼 우려를 두고선 “남북 사이에서 관계정상화의 종착지(엔드 포인트)는 ‘특수관계 속 정상화’로 볼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북은 특수관계라고 규정돼 있고 역대 정부도 이 개념을 이어왔다”며 “‘특수관계’라는 개념에서 손을 떼면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가 얘기를 꺼낼 입지가 너무 줄어든다”라고 했다.
이는 정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남북관계를 ‘현실적인 두 국가’라며 ‘평화적인 두 국가’롤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정 장관은 29일(현지시간) 독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해당 발언과 관련해 “그렇게 해서 교류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며 “북쪽에서 ‘적대적 두 국가, 교전 중인 두 국가’ 이렇게 말해 대비돼 그런(오해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과거 진보정부의 외교 노선 갈등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 보고서’ 유출 사건에서 외교부는 ‘청와대와 NSC 사람이 반미주의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 때에도 ‘균형외교’ 노선을 천명했지만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에서 자주파가 힘을 얻으면서 외교정책이 남북관계·대화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 때엔 대북정책 슬로건인 ‘비핵, 개방, 3000’ 목표를 놓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외교·국방 참모와 대화 재개를 우선하는 통일부 간 이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논란의 정리는 방향키를 잡은 이 대통령의 몫일 수밖에 없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렇게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선 메시지가 나올수록 혼란만 커지는 상황이 된다”며 “각 부처의 의견은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을 총괄하는 것은 결국은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문혜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