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기 부정적 경험 따라 4가지 유형 구분…좌절 중첩될수록 우울·외로움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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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의 고립·은둔 청년 활동공간인 ‘두더집’에서 만난 권기현씨. 김도윤 기자.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청년 은둔, 다 같은 게 아니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의 새로운 그림자로 떠오른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국내 최초로 유형화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순히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동질적 집단이 아니라, 성인기에 어떤 실패와 좌절을 겪었는지에 따라 뚜렷하게 다른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특히 취업에서 반복적으로 좌절한 ‘취업좌절형’이 가장 많았으며,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좌절을 겪은 ‘복합좌절형’은 우울과 외로움 위험이 가장 높았다.
9일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이화여대 연구팀(안선경·김소연·정익중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2022년 서울특별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참여한 447명을 대상으로 성인기 이후 부정적 생애경험을 잠재계층분석(LCA) 기법으로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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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고립은둔 청년은 ▷진학·취업·관계 등 전반에서 실패가 겹친 복합좌절형(29.3%) ▷취업 실패 경험이 집중된 취업좌절형(32.0%) ▷인간관계 갈등이 주요한 관계갈등형(16.8%) ▷상대적으로 위기가 낮은 저위기형(21.9%) 등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됐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의 3분의 1이 ‘취업좌절형’이었다는 사실이다. 원하는 시기에 취업하지 못하거나, 원했던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은둔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는 불안정한 청년 고용환경이 은둔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임을 방증한다.
“좌절 중첩될수록 우울·외로움 심각”
연구진은 각 유형별 정신건강 차이도 분석했다. 복합좌절형과 취업좌절형 집단은 우울·외로움 지수가 가장 높았다. 반면 저위기형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익중 교수는 “고립은둔 청년을 단일 집단으로 보는 기존 접근과 달리, 이번 연구는 경험적 특성에 따라 이질적인 집단이 존재함을 보여줬다”며 “특히 부정적 경험이 중첩된 집단일수록 정신건강이 취약해 맞춤형 개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사에서는 복합좌절형의 20% 이상이 성인기 이전에도 5가지 이상의 부정적 경험(가정폭력, 경제적 어려움, 잦은 이사, 따돌림 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기의 상처가 성인기의 좌절과 맞물려 은둔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해석이다.
청년 고립·은둔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했다. 2019년 34만명으로 추정되던 고립 청년은 2021년 54만명으로 늘었고, 이 중 은둔 청년만 24만명에 달한다. 전체 청년 조사에서 “은둔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35%에 달했다.
연구진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활동의 일상화가 청년들의 사회적 연결망을 급격히 약화시켰다”며 “고용 불안정, 학업·취업 경쟁 심화가 겹치면서 은둔이 빠르게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팬데믹 이후 급증한 ‘방 안의 청년들’...해외는?
전문가들은 고립은둔을 단순한 개인의 성격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고용 실패, 대인관계 단절, 학업 좌절, 가족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사회적 배제와 낙인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논문은 특히 은둔 청년이 단순히 집에만 머무는 상태가 아니라, 우울·불안·자살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부모와 함께 살더라도 정서적 지지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족 내 갈등까지 동반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대응책이 시도되고 있다. 미국은 16~24세 교육·고용에서 단절된 청년을 ‘디스커넥티드 유스(Disconnected Youth)’로 정의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P3(Performance Partnership Pilots for Disconnected Youth) 사업을 운영한다. 교육·훈련·정신건강·고용을 통합 지원하는 다차원적 프로그램이다.
일본은 중앙정부-지자체가 협업해 ‘히키코모리 지원 스테이션’을 운영하며, 상담·취업·자립까지 이어지는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한국도 최근 ‘위기아동·청년 지원법’을 제정했지만, 실질적 지원망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는 평가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고립은둔 문제는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생애 발달 과정에서 누적된 경험의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아동·청소년기에 겪은 가정폭력이나 학업 실패가 성인기의 취업 좌절과 결합해 은둔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조기에 예방하고, 청년기에 맞는 발달과업을 지원하는 생애주기적 정책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안전망 강화가 늦어질수록 우울·외로움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