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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방지계획’ 정부 주도 시행…한국은 건설사가 안간힘

싱가포르 노동부 낙상방지 계획 수립
시공사 합리적 판단해 현장 적용·실행
韓 20대 건설사 추락 예방책 속속 도입
케이지·AI CCTV·외국인 작업반장 적용
전문가 “처벌보다 문화 개선이 우선”
“안전 문화 정착엔 최소 20년 걸릴 것”


#. 현대건설은 반복되는 건설현장 추락사를 막기 위해 ‘S.W.C 설계반영 의무화’를 시작했다. S.W.C 설계란 ‘Safety Working Cage(안전작업 케이지)’의 줄임말로, 외벽에 케이지를 부착해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곤돌라나 달비계를 사용할 때보다 바람의 영향도 적게 받고, 추락 위험도 줄어든다.

#. 롯데건설은 건설 추락사고 감축을 위험 구간은 ‘적색’, 안전 통로는 ‘청색’ 등 색채 기반 안전체계를 도입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진 만큼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관적으로 안전시설물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국내 건설사가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 작업 방식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건설 현장 사망사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추락사를 막기 위해 예방활동에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순식간에 일어나는 추락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문화’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중소 건설사까지 실제 무사고로 이어지기까지는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업방식 ‘곤돌라→케이지’ 변화…건설사 추락사 방지 안간힘=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공순위 상위 20대 건설사 대표들은 지난달 23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건설업 추락사고 예방을 위한 주요 사례’를 공유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건설업 사망사고의 57.6%는 추락사고가 원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과 9월 대형 건설사의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도 모두 추락사에 해당했다.

이날 공유된 ‘20대 건설사 안전보건 우수사례’에 따르면 먼저 현대건설은 추락사고 예방을 위해 ‘위험관리 계층구조(Hierarchy of Controls)’ 개념을 도입했다. 작업방법을 곤돌라·달비계 작업 방식에서 안전작업 케이지 방식으로 변경하고, 기존 방법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작업대 내부에 모니터링 CCTV를 도입, 충격흡수성이 강화된 안전모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핵심이다. 아울러 전체 현장에는 고소작업, 안전마감, 개구부 덮개 미설치 등을 감지하는 건설특화 인공지능(AI) CCTV를 설치한다.

롯데건설의 경우 추락 위험이 큰 구멍을 의미하는 개구부의 추락예방 3중 조치를 적용했다. 이동식 울타리를 ‘ㄷ형’으로 제작해 추락 위험을 줄이고, 개구부 주변에 안전대 걸이시설을 매립, 형광도색해 작업자가 알 수 있게 했으며 개구부 덮개를 상시 설치해 추락 위험을 줄였다.

이외에도 건설사들은 점점 늘어나는 고령·외국인 근로자에 위험장소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색채 구별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위험 구간은 빨간 색으로, 자재구간은 노란 색으로, 안전통로는 파란 색으로 표시하는 식이다. 또 위험물은 눈에 잘 띄도록 형광페인트로 칠하거나 서로 상응하는 고리와 갱폼을 같은 색깔로 칠해 직관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작업반장도 늘리고 있다. 우리 말이 익숙하고 현장 경험이 많은 외국안 작업반장을 대상으로 건설용어, 안전조치 등을 교육하고 소통 전문가로 양성하는 것이다. 어려운 전문 건설용어, 문화적 차이 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싱가포르, 가이드라인 주고 자율 적용=국내 건설사의 이같은 노력에도 궁극적으로 추락사를 막기 위해선 단순 건설업계를 넘어 전방위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장기 계획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싱가포르의 ‘추락방지계획(Fall Prevention Plan·FPP)’이다.

FPP는 싱가포르 노동부(MOM)가 제정한 산업안전보건법(WSH Act·Workplace Safety and Health Act)에 나와있는 세부 규정으로, 이를 통해 고소(높은 위치) 작업이 이뤄지는 모든 현장에서는 낙상 방지 계획을 수립해 시행토록 하고 있다. 특히 각 작업별로 추락을 막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단 MOM은 지침만 제공하고, 구체적인 적용은 시공사가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안을 판단해 시행한다. 이에 시공사는 낙상 방지를 위한 위험 평가, 제어 조치, 작업 절차, 개인 보호 장비 및 낙하 방지 장비, 검사 및 유지보수 등의 모든 사안에 대한 계획을 수립한다. 매 공사마다 이렇게 진행하니 자연스럽게 낙상을 방지하기 위한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에서 육상교통청 발주 지하철 공사현장의 안전관리자를 맡고 있는 딘씨는 “이를테면 지붕에서 일할 때는 작업자가 1.5m 이상 접근하면 자동으로 라일이 걸려 추락을 막는 시스템을 쓰는 식”이라며 “대책을 모두 시행했는데도 사고가 발생하면 철저한 조사가 뒤따르고, 작업자들은 최소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역시 처벌 위주의 안전관리가 아닌 가이드라인 중심의 구체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싱가포르처럼 안전 문화가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20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전성 제고 문제는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안전관리 책임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한 대형건설사의 S씨는 “3년, 5년, 10년해서는 바뀌지 않고 일관성 있게 계속 발전해나가야 한다”며 “중소 규모의 작은 업체들까지 안전 인식을 재고하기 위해서는 20년,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신혜원 기자, 홍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