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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지기’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대화 “고독한 예술가 이수빈” vs “애늙은이 김동현” [인터뷰]

16일 김동현·이수빈 금호아트홀 연세 공연
영재원·한예종까지…“서로 성향 잘 알아”
두 바이올린을 위한 특별한 무대 ‘기대’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왼쪽)과 김동현이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내 금호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첫 만남은 2011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였다. 자신을 ‘김포 촌놈’이라 부르는 김동현과 일찌감치 ‘한국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영재’로 불렸던 이수빈. 두 사람 모두 초등학교 때였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이수빈이 선배였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신지아의 무릎 위에 앉아 놀던 일곱 살 꼬꼬마 시절 영재원에 입성한 이수빈(25)은 “와, 언니들 너무 예쁘다”며 감탄만 했단다. 하지만 김동현(26)이 보는 이수빈은 “(이)수빈이는 클래스에서 늘 주목받는 아이”라고 돌아본다. 바이올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1년 만인 12살에 영재원에 들어갔지만, 김동현은 또래보다 늦은 편이라고 말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제겐 모두가 배워야 할 사람들이었어요. 특히 수빈이는 손 푸는 것도 멋진 선배였어요. 매번 ‘와, 하나도 안 틀리네’ 이러면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김동현)

영재원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약 5년. 고(故) 김남윤 교수 밑에서 함께 배우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실내악을 통해 손을 맞춰봤던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수빈이 오는 16일 연세대 내 금호아트홀에서 첫 듀오 리사이틀에 나선다. 같은 스승에게 배운 후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선 두 사람이 달라진 서로의 음악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보니 어떤 공연보다도 각별하다. 공연을 앞두고 최근 금호아트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안 맞을 이유가 없다”며 웃었다.

애늙은이 vs 고독한 예술가…다시 만난 14년 지기

14년 지기의 어제와 오늘을 보면, ‘MBTI는 과학’이며 ‘세 살 버릇 여든’ 가고,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

이수빈은 어린 김동현에 대해 “리더십이 있어 또래를 이끌고,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고 매사에 정확하고 분명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확고한 방향성이 있어 리허설을 할 때도 시간 절약이 된다는 게 장점이다. 물론 “그 장점이 단점이기도 하다”며 이수빈은 웃는다. 실제로 김동현의 MBTI는 ‘사물과 사람 관리 능력이 뛰어난 경영자’ 타입인 ESTJ다. 1999년생, Z세대의 나이가 의심스러울 만큼 어른스럽다 보니 어릴 때부터 별명이 ‘애늙은이’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왼쪽)과 김동현이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내 금호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수빈의 MBTI는 정반대다. ‘타인의 일에 공감하고 싶지 않아도 내가 겪는 일처럼 공감하는’ INFP다. 김동현은 “수빈이는 그때도 고독한 예술가 유형의 아이였다”며 “남들과 엮여 뭔가를 하기보단 자기 일을 묵묵히 가며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라고 돌아본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이수빈은 “친구가 없다는 얘기 아니냐”며 웃는다.

10년 만의 재회는 물 흐르듯 거리낌이 없었다. 지난해 연말 금호문화재단의 제안을 받았을 당시 김동현은 “수빈이가 하면 나도 하겠다”고 말해 연주가 성사됐다. 각각 스페인과 독일에 머물고 있어 페이스타임으로 첫 기획 회의를 할 당시를 떠올리며 둘은 “그때 정말 반가웠다”고 했다.

공연은 온전히 두 사람에게 맡겨졌다. “서로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지난 과정은 수월했다. 일반적으로 즉흥적인 P타입과 계획형 J가 만나면 ‘J가 피를 본다’지만, 김동현은 “제법 원활했다”고 돌아본다.

“J와 P가 만나 무언가를 할 때 J가 계획을 세우고 제안하면 보통 P가 수용을 하는데, J의 입장에서 악성 P는 갑자기 예상 못 할 무언가를 던지는 경우예요. 수빈이는 그런 쪽은 아니더라고요. (웃음)” (김동현)

지지고 볶는 살 떨리는 대화…“‘걸리버 모음곡’ 악보 보고 오면 더 재밌을 것”

피아노와 달리 두 대의 바이올린이 90분 이상의 한 무대를 꾸미는 것은 세계 무대를 막론하고 흔치 않다. 김동현에게도 바이올린 듀오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수빈은 “페스티벌에서 이벤트 성격으로 하는 무대 외엔 세계 어느 무대에서도 두 대의 바이올린 편성 자체를 쉽게 볼 수는 없어 굉장히 신선할 것 같았다”고 했다.

당연히 고충도 있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곡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김동현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애초 이번 공연이 금호아트홀의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의 일환이나, 두 사람은 “한 사람을 탐구할 수 없어 ‘위대한 작곡가들’이라고 정정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공연을 위해 두 사람은 할 수 있는 모든 곡의 리스트를 작성한 뒤, 연주와 감상의 난이도를 고려해 ‘적절한 밀당(밀고 당기기)’을 더한 프로그램을 짰다. 일종의 강약 조절을 한 셈이다. 텔레만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걸리버 모음곡’을 시작으로 듣기 편한 곡을 전반부에,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도전이 되는 곡은 후반부로 배치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루이 슈포어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주’와 전조가 수시로 일어 변화무쌍하고, 파워풀하며 가차 없이 음표가 쏟아지는 프로코피예프를 거쳐 바이올린 두 대의 시너지가 압도적인 이자이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약 30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음악들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왼쪽)과 김동현이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내 금호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수빈이 ‘제안’한 텔레만의 ‘걸리버 모음곡’은 “재치 있고 신비로운 맛이 있는 곡”이라는 점에서 첫 곡으로 안성맞춤이다. 텔레만은 김동현이 2012년 금호영재콘서트에서 데뷔했을 당시 첫 곡으로 연주했다는 점에서 연결고리도 생겼다. 김동현은 “음악 안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 32분의 3박자로 소인들을 표현할 때, 거인은 온음표로 그린다”며 “영화 효과음 같은 장식이 더해진 까불까불한 곡이다. 음악만 들어도 소설이 그려지지만, 악보를 한 번 보고 오시면 더 재밌게 들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두 사람은 이미 추석 연휴 직전부터 만나 모처럼의 휴일 내내 손을 맞췄다. 파트 배분에 있어선 굳이 회의를 깊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수빈은 “피아노가 왼손, 오른손 나눠 연주하는 것을 두 바이올린이 모두 하기에 퍼스트와 세컨드 바이올린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텔레만과 프로코피예프에선 김동현이 퍼스트, 슈포어와 이자이에선 이수빈이 퍼스트를 맡았다. 김동현은 “누가 덜 나오고 더 나와 서운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분량은 공평하다”고 했다.

“동등한 두 대의 바이올린이 지지고 볶고 대화하다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누르기도 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살 떨릴 수 있어요. 피아노라는 듬직한 존재 없이 두 대의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것이 낯설면서 흥미롭고 스펙터클한 연주가 될 것 같아요.” (김동현)

두 사람은 오랜만의 호흡에도 잘 맞는 듀오였다. 이수빈은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소리를 듣고 알아서 맞춰가며 주고받는 유연함이 생겼다”고 했다. 김동현은 “수빈이는 음악적 색깔, 소리의 깊이, 테크닉적인 소화력이 여전히 능수능란하고 더 깊어졌다”며 “시간이 워낙 빨리 가니, 다음엔 50살쯤 돼 만나면 그땐 또 다른 맛이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혹독했던 영재원,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 길러”

같은 스승에게 배운 또래 바이올리니스트지만 두 사람의 음악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두 사람에게 영재원과 한예종 시절은 음악가로의 기초 체력과 단단한 정신력을 다진 때였다.

김동현은 “김남윤 선생님은 같은 곡을 해도 학생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며 “클래스 특유의 정해진 색깔이나 느낌은 없고, 각자의 방향과 해석, 음악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줬다”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왼쪽)과 김동현이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내 금호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당시 김남윤은 제자들에게 음악은 물론 일상에서의 태도, 옷차림, 습관 등 모든 면에서 길잡이가 됐다. 김동현은 “영재원 입학과 그곳에서의 생활은 인생 최대 반전이자 중요한 갈림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김남윤 선생님은 너무나 큰 존재였고 항상 두렵고 인정받고 싶은 존재였다”며 “개인적인 사정을 봐주지 않으셨고, 주어진 것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혹독한 환경에서 강하게 컸다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이수빈 역시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세고 독해 선생님이 일부러 무섭게 하셔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약 오른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며 “그때 다져진 정신력 덕에 선생님의 제자들은 웬만해선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예종을 다니다 이수빈은 미국으로, 김동현은 독일을 거쳐 스페인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세계 유수 콩쿠르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주목받았다. 이수빈은 2013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바이올린 국제 콩쿠르 우승을 비롯해 숱한 콩쿠르를 휩쓸었고, 김동현은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보였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길 위의 동반자인 ‘악기’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이들을 채찍질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둘은 모두 200살을 훌쩍 넘긴 바이올린을 쓰고 있다. 김동현은 1763년산 요하네스 밥티스타 과다니니를, 이수빈은 1794년산 주세페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쓴다. 금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사용 중인 악기들이다. 김동현은 “오랜 시간 잘 관리된 좋은 악기이다 보니 연주 때 충분한 퀄리티가 나오지 않으면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진다”고 했다. 이수빈 역시 “악기 자체가 뛰어나다 보니 악기를 통해 성장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10대를 지나 20대 중반이 된 지금, 가고자 하는 길도 점차 선명해진다.

“인간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나잇값을 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는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계속 성장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고요. 무엇보다 악기로 하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좋은 발음과 언어로 전달하는 연주자이고 싶습니다.” (김동현)

“그동안엔 제 행복과 만족을 위해 연주했지만, 지금은 고난의 시간을 겪은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전달자’로의 책임이 커지고 있어요. 그들의 메시지와 정서를 담아내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더 쉽고 좋은 방향으로 전달하고 싶어요. ” (이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