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경북 경주시 불국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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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청운교(위쪽)·백운교(아래쪽) |
‘불국정토(佛國淨土)’
번뇌와 고통이 없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상향, 즉 부처님이 계시는 청정한 세계를 의미하는 불교적 용어다. 신라는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 사회 통합의 통치 이념으로 삼아 불국토 사상을 널리 퍼뜨려 신라가 곧 자비가 실현된 이상적 사회인 부처의 나라임을 강조했다.
이는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 등 신라 시대의 대표적 사찰 건축에도 반영돼, 불국정토를 실현하겠다는 꿈을 담아 호국 사찰로 건설했다. 종교적 신념을 불문하고 대부분 불국사는 한 번쯤 들러봤을 것이다.
예전엔 경주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였고 신혼여행도 많이 갔으며, 불국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찰이자 문화유산이고 경주의 주요 관광지였기 때문이다.
이달 말(10월 31일~11월 1일) 경주에서 에이펙(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이를 기념해 산사 음악에 가장 적합한 음악인들을 초청해 불국사 앞마당에서 가을밤 깊은 울림을 전하기 위한 ‘선명상 음악회’가 있어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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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일주문 |
에이펙(APEC)에 참가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 21개 회원국에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불국사’에서 불국토(佛國土) 경주와 한국 산사 문화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취지가 좋은 음악회였는데, 에이펙 회원국 홍보를 위한 대상자 참여가 부족해 아쉬움이 남았다.
경주에는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사찰로 거대한 규모의 황룡사가 있었다. 불국정토를 속세에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꿈을 품었던 불국사도 전성기엔 지금의 8배에 달하는 대규모의 사찰이었고 치밀한 구성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절이다.
여러 차례 왔지만 다시금 꼼꼼히 둘러보니 국보 8점, 보물 6점이 있는 천년고찰의 모습이 기존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을밤의 선율 선명상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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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선명상 음악회 |
불국사 자하문(紫霞門) 아래 청운교와 백운교 앞에 무대가 설치되고 600여명의 사부대중과 시민들이 숨을 죽이며 명상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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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선명상 음악회 안내문 |
주미란의 ‘핸드팬’, 조여진의 ‘첼로’, 오태영의 ‘퍼커션’이 어우러진 ‘모던트리오’의 독특한 음색과, 처음 접한 악기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몽환적인 음악에 흠뻑 빠져들어 본다. 여기에 파도 소리를 내는 ‘오션드럼’과 유럽에서 들어와 빠르게 전통악기가 된 ‘양금’ 등 생소한 악기들의 음색이 연출하는 하모니는 가을밤의 예술적 정취를 더욱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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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선명상 음악회 |
명상음악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오래된 고찰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악임을 절감해 본다.
시를 노래하는 한국 전통 성악이라고 하는 정가(正歌)를 부르는 가수 하윤주의 울림도 가슴 깊이 스며든다. 박규희의 부드러운 선율의 클래식 기타 연주도, 명상음악가 홍순지의 노래도 깊은 휴식으로 빠져들게 한다.
두 줄로 켜는 해금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을밤 고즈넉한 절집과 너무나 어울리는 소리다.
천년고찰 불국사, 신라의 달밤에 울려 퍼지는 명상으로 이끄는 선율에 잠시 몸과 마음을 맡기다 보니 초가을 싸늘해지는 토함산 공기까지도 따뜻한 울림으로 덮어지고 있었다.
두 시간 이상 이어지는 음악의 선율은 대미를 장식할 불국사 합창단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연주까지 듣지 못하고 귀경을 재촉해야 하는 여운을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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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선명상 음악회 |
천년 고찰 가을 달밤 아래서 음악을 통해 ‘나를 잠시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며 행복이었다.
천년의 역사를 증명하는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를 비추는 조명 빛과 수백 년 되었을 소나무 사이로 희끗 보이는 상현달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산중의 초가을 밤바람까지 더해진 분위기는 내면에 얽힌 다양한 감정들을 풀어내기에 충분했다.
귀경길에 유튜브를 통해서나마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불국사에서 접한 명상음악의 울림과 여운을 이어간다.
불국토를 향한 토함산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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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비로전과 사리탑 |
불국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本寺)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재상(宰相) 김대성이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창건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제는 신라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연제 부인이 사찰 짓기를 소원해 창건했고 김대성이 중창해 불국사를 확장했다고 한다. 신라는 527년에 불교를 국교로 공인했기에 불국사는 불교 공인 1년 후에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개창하면서 아미타여래상과 비로자나불을 봉안했고, 재상 김대성은 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만들었다. 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불국사를 중창하면서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을 건설했다고 한다.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던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방화로 크게 불타는 등 세월을 거치면서 파괴와 복원 과정이 거듭되면서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오늘날의 불국사는 조선 영조 때 모습에 근거하여 복원한 것인데, 현재의 극락전과 대웅전도 영조 때 다시 세워진 것이다.
이후에도 경주 지방 유림 등의 지원으로 중창되기도 했으나 조선 말 향촌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불국사도 터만 남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대웅전과 다보탑을 보수해 임시 복원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에 들어 박정희 정권의 관광산업 육성책 일환으로 본격적으로 대규모 복원이 이뤄졌다. 이로 인해 불국사의 ‘신라불교문화영산대제’ 때 불국사 역사에 영향을 끼친 법흥왕, 이차돈, 표훈대덕, 원효, 김대성, 월산스님과 함께 박정희 영정도 함께 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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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앞마당의 석가탑(왼쪽)과 다보탑 |
불국사 중심 전각인 대웅전 앞마당에는 동서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고 정면에는 팔각 석등과 청운교, 백운교 돌계단이 내려다보이는 자하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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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범영루 |
자하문 양 옆에는 우경루(지금은 범영루, 泛影樓), 좌경루(左經樓) 등 두 개의 누각이 있으며 대웅전 뒤에는 강론을 하는 무설전이 있어 불국사 중심권역이 하나의 독립된 공간처럼 직사각형 공간을 담장으로 두르고 있어 아늑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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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가는 길 |
불국사 대웅전은 창건 당시의 것인 기단과 석등 등 석조물과 함께 1765년 중창했지만 퇴락해 1970년대에 다시 중창했다. 내·외부가 매우 화려하게 장식한 우수한 불전으로 평가돼 보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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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대웅전 |
대웅전의 삼존불과 후불탱(後佛幀), 그리고 화려한 ‘영산회상도와 2점의 사천왕 벽화’(보물) 등도 모두 1769년에 완성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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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의 삼존불과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 |
무설전 뒤 경사 급한 계단 위에는 관음전이 있고 그 옆 비로전에는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높이 1.77m ‘금동비로자나불’이 있다.
손 모양이 일반적인 손 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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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전 |
불국사의 ‘비로전 금동비로자나불 좌상’(국보 26호)과 ‘극락전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 그리고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8호)을 통일신라시대 3대 금동불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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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전 금동비로자나불 좌상 |
비로전 좌측 보호각에는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사리탑(보물 61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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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탑 |
보관된 사리가 누구의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고려 전기의 작품인데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반환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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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앞마당 |
연화교, 칠보교에서 안양문을 통과하면 극락전 앞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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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금동아미타여래좌상 |
극락전에는 높이 1.66m의 불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늘어진 옷 주름 등 사실적이고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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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금빛 돼지 동상 |
극락전 앞마당에는 반질반질한 금빛 돼지 동상이 있다.
이는 극락전 편액 뒤에 돼지조각품이 우연히 발견돼 2007년 황금돼지해를 맞아 이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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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편액 뒤 돼지조각품 |
많은 사람이 만지면서 복을 빌다 보니 유난히 반질거린다.
문화유산의 보고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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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다보탑 |
불국사의 상징은 당연히 우리나라 화폐에도 등장하고,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국보 20, 21호로 지정된 다보탑과 석가탑일 것이다.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고 대웅전 앞마당 동서쪽에 마주 보고 있다.
다보탑(多寶塔)은 층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특수형 탑, 석가탑(釋迦塔)은 일반형 3층 탑으로서 우리나라 대표적 석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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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석가탑 |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석가탑을 ‘석가여래 상주 설법탑’이라 부르는데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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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보탑 돌사자 |
다보탑은 독특한 형식의 짜임새 있는 뛰어난 작품이지만 안타깝게도 1925년경 일본인들이 탑 속의 사리와 사리장치 유물들, 그리고 평면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 돌사자 중 3마리를 약탈해 가서 현재 1마리의 돌사자만 외롭게 남아있다.
석가탑은 전형적인 3층 석탑으로 지붕돌의 모서리가 모두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 하다.
2층 탑신에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닥나무 종이로 만든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이 발견됐다. 직선미의 석가탑과 화려한 다보탑이 강렬한 대비로 짝을 이루고 있다.
불국사의 예불 공간인 대웅전 오르는 길에는 돌계단인 청운교와 백운교와 자하문이 있고 극락전에 오르는 길에는 연화교와 칠보교 돌계단과 안양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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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가구식 석축 |
돌계단들은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다. 돌계단 옆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가공 석재를 가구식(架構式)으로 짜 올린 특이한 형태의 하층 석축도 보물(제1745호)로 지정돼 불국사의 대표적인 포토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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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청운교(위쪽)·백운교(아래쪽) |
국보 제23호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는 불국 정토로 들어가기 위해 건너는 다리이다. 18계단의 백운교와 그 윗부분 16계단의 청운교를 거쳐 자하문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석가탑, 다보탑이 나오며 이는 상징적으로 불국정토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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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연화교(아래쪽)·칠보교(위쪽) |
안양문을 통해 극락전으로 향하는 국보 22호 연화교(蓮花橋)와 칠보교(七寶橋)는 서방 극락세계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한다. 불교 경전에서는 아미타불과 보살들은 연화와 칠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관문인 안양문을 거쳐 극락세계를 오간다고 한다.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는 통일신라의 ‘불국정토’ 실현의 상징인 것이다.
10계단의 연화교 위에 8계단의 칠보교는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는 작으나 중간에 무지개다리를 통해 계단을 다리 형식으로 만드는 특이한 구성 형식은 매우 비슷했다. 웅장한 멋의 청운교와 백운교, 그리고 섬세한 아름다움의 연화교와 칠보교는 통일신라시대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들이라고 한다.
반원 아치형의 무지개다리가 있어 밑에는 연못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후 유행하는 반원아치 모양의 홍예교 유래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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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선명상 음악회 |
천오백 년 전, 많은 신라 사람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불국정토를 꿈꿨을 것이다.
오늘은 그곳에서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 평안과 위로를 주기 위한 선명상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음악 소리 울려 퍼지는 불국사의 가을밤은 시간을 초월한 ‘신라의 달밤’이었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