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하리보 김치’ 16일 개막
무대 위 포장마차, 초대된 관객 2명
‘김치 디아스포라’에 담은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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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하 작가의 연극 ‘하리보 젤리’의 한 장면.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84년생. 40대에 접어든 그의 유년 시절엔 ‘하리보 젤리’가 지금처럼 흔한 군것질거리는 아니었다. 유럽 공연계가 주목하는 창작자인 구자하 작가 겸 연출가는 “그땐 하리보 젤리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아 소규모 수입상점에서나 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하리보 젤리와의 첫 만남은 독일 베를린에서였다.
“베를린에 처음 와서 공연 작업과 DJ를 병행하던 시기였어요. 클럽 대기실에 가면 늘 하리보 젤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어요. 그곳에선 젤리와 보드카를 먹더라고요. 저도 그때 처음 먹어봤어요.”
구자하 작가의 연극 ‘하리보 김치’(Haribo Kimchi)는 하리보 젤리와 김치의 합성어다. 그는 “유럽에 사는 한국인으로 그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나의 정체성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나 말했다.
‘하리보 김치’(16일, 18~19일)는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초연해 주목받았고, 한국에서도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독특한 형식과 구성 덕에 ‘하이브리드 연극’이라 불리는 구자하의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러브콜의 대상이다. 3회차 한국 공연 역시 일찌감치 매진됐다.
“음식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본질적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구 작가는 무대 위에 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두 개의 음식을 제목으로 가져왔다. 무턱대고 조합한 신조어가 아닌 셈이다. 그는 “한국인이 한반도에서 태어나 김치를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치는 한국인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이자 정체성”이라며 “초가공 식품 하리보 젤리가 후천적으로 갖게 된 취향이라면, 김치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갖게 될 수밖에 없었던 취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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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협력예술가인 구자하 작가 겸 연출가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
‘하리보 김치’는 사랑스럽고 애틋한 정서를 가진 작품이다. 무대엔 작은 포장마차가 차려진다. 이곳의 주인장은 구자하 작가 자신. 그는 관객 두 명을 포장마차로 초대해 직접 요리를 해주며 음식과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메뉴는 ‘김치전, 미역냉국, 버섯 튀김’이다. “유럽에 사는 한국인이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 가장 위안이 되는 추억의 음식”으로 그는 이 세 가지를 꼽았다. 여기에 디저트로 ‘젤리’가 나온다. 하리보 젤리 대신 구 작가가 직접 만든 젤리다.
구 작가는 이 작품을 한 마디로, ‘김치 디아스포라(diaspora,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집단 또는 이주 그 자체)’라고 했다. 이 안엔 음식에 얽힌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가 스몄다.
“김치와 함께 유럽에 도착했을 때 겪은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어요. 김치는 발효식품이라 오래 포장하면 가스가 차는데 이로 인해 생긴 이야기도 있고, 한국 음식뿐 아니라 아시아 음식에서 풍기는 냄새로 인해 겪게 된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요. 이런 경험이 없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라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서울로 올라와 살며 겪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그는 작가 자신의 내면과 정체성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다. ‘하마티아 3부작’으로 꼽히는 ‘롤링 앤 롤링’, ‘쿠쿠’, ‘한국의 역사’에 이어 ‘하리보 김치’까지 구 작가는 늘 경계인으로의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는 “이러한 작업이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이라기보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이라고 했다. ‘하리보 김치’에선 구 작가와 함께 달팽이와 장어, 하리보 젤리 등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는 이 셋은 “‘젤리니스(jelliness)’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젤리니스’는 구 작가가 만든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쉽게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지만, 외부 충격에도 다시 회복하는 능력을 담은 말이에요. 상당히 유연하죠. 흐르지도, 그렇다고 굳어지지도 않는 그 가운데 어느 지점이 제 정체성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유럽에서 비유럽인으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찾은 답이 바로 ‘젤리니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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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하 작가의 연극 ‘하리보 젤리’의 한 장면.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
구 작가의 행보는 독특하다. 그는 홍대 인디신에서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DJ로 활동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이론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부터 연극 작업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그는 기존 전통적인 연극 작업에서 벗어나 음악, 영상, 오브제 등 각종 요소를 결합한다.
구 작가는 “초창기엔 이걸 과연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 고민도 깊었다”며 “좋은 조언은 경청하나 타협하지 않고 해온 작업으로 인해 더 굳건해진 것 같다. 이 작업들은 세계 공연예술계 장르에 충격을 주기 위한 시도”라고 했다.
도발적인 형식 안에 담아내는 이야기는 그 어떤 연극보다 연극적이다. 그의 무대는 언제나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동시대성을 갖는다. 구 작가는 “연극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이라며 “내가 만드는 음악, 영상, 텍스트 모두 정치적 언어”라고 했다. 그가 자기 작품을 다른 장르가 아닌 ‘연극’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연극의 태생적 원리는 관객을 극장으로 초대하고 연대를 이뤄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거라 생각해요. 전 정치인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닌 어디까지나 예술가이기 때문에 정치적 힘을 예술적인 언어로 발현하는 것이 저의 고민이에요.”
‘하리보 김치’로 한국 관객과 만난 구 작가는 2027년 초연을 목표로 신작 ‘본 투 비 케이 투 비 팝(Born to be K to be Pop)’을 준비 중이다. 그의 첫 대극장 작품이자, 구 작가가 무대에 서지 않는 첫 작품이 될 전망이다. 그는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재,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낼 계획”이라며 “과거와 현재가 아닌 ‘포스트 K-팝’에 대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