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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에도 살인범 바짓가랑이 잡고 버텼다…당신의 희생, 오늘도 46만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 [우리동네경찰서]

대한민국 경찰의 창경 80주년,
헤럴드경제는 서울의 31개 경찰서를 소개합니다.
우리동네 경찰서 (3) 서울 서부경찰서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의 모습.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서울 은평구 치안을 책임지는 서부경찰서에선 매년 8월이면 추모식을 연다. 20여년 전 도주하는 용의자를 잡다가 순직한 두 형사를 기리기 위해서다. 후배 경찰들은 아직도 두 선배의 남겨진 자녀들에게 ‘삼촌’을 자처하고 있다.

은평구는 46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인구수가 많은 만큼 밀착 치안 유지가 필요한 곳이다. 사명감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서부서 1층에는 서부서 소속으로 순직한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직원들은 “56년 서부서 역사의 정신이 깃든 곳”이라고 말한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 내 추모공간의 모습. 이상섭 기자

두 형사의 얘기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갓 시보를 마친 신임 경찰관 이재현(당시 28·순경) 경장은 본인의 희망으로 강력반 형사가 됐다. 185㎝의 체구에 서글서글한 성격의 그는 ‘타고난 강력반 형사’로 촉망받았다. 심재호(당시 33·경사) 경위는 10년 차 경찰관으로 베테랑 형사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두 사람은 그해 8월 1일 제보를 입수했다. 부녀자를 폭행 후 도주해 수배가 내려진 용의자 이학만이 자기 애인을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다는 것이었다.

‘이학만 사건’으로 순직한 고(故) 심재호(왼쪽) 경위와 이재현 경장. [서울경찰청 제공]

잠복하던 두 형사는 카페에 모습을 드러낸 용의자 체포를 시도했다. 미란다 원칙을 알리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용의자가 칼을 꺼내 심 경위를 향해 두 차례 휘두른 것. 도주로를 차단하고 있던 이 경장은 쓰러진 선배를 붙잡았다. 순간 용의자는 이 경장의 등도 노렸다.

흉기에 찔리고서도 이 경장은 몸싸움을 벌여 용의자를 제압해 바닥으로 짓눌렀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도와주면 죽인다”며 발악하는 용의자를 보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 사이 이학만은 이 경장을 향해 아홉 차례 더 흉기를 휘두르고 도주했다.

두 형사는 긴급히 후송됐으나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운명을 다했다.

서울 서부경찰에서 지난 8월 진행된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 추모식. 서부서 경찰관들과 유족이 추모하고 있다. [서울서부경찰서 제공]

‘이학만 경찰 살해 사건’으로 알려진 이 일 이후 경찰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두 형사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심 경위와 이 경장은 지난해 경찰청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됐다. 두 형사는 서부서 1층 현관에 흉상으로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서울 서쪽의 터줏대감…청소년 선도 역할

서부경찰서 구청사 모습. 2015년까지 쓰던 건물로 재건축을 거쳐 2019년 지금의 신청사로 탈바꿈했다. [서울서부경찰서 제공]

서부서는 서울의 열다섯 번째 경찰서로 1969년 개서했다. 당시 연간 8.3%씩 서대문구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며 치안 수요도 커졌다. 서울 서부권의 치안을 담당하던 서대문경찰서로부터 은평구 일대의 관할권을 넘겨받았다. 현재는 응암·신사 등 2곳의 지구대와 녹번·응암3·역촌 등 3곳의 파출소를 담당하고 있다. 서부서는 지난 2015년 낡은 구청사를 허물로 신청사 착공에 들어갔다. 4년간 임시청사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9년 신청사로 이주해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과거 서울 서부경찰서 임시청사 모습. [서울서부경찰서 제공]

은평구민은 대략 46만명. 서부경찰서는 은평구 9개 동, 21만여명의 치안을 책임진다. 어린이와 청소년도 많이 산다. 은평구의 초·중·고를 합친 학교 수는 66곳(올 2월 기준)으로 서울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그래서 서부서의 역점 치안 정책은 ‘청소년’을 향해 있다. 청소년 보호, 선도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운영한다. 청소년들과 접점을 넓히며 지역 내 소년범을 대폭 줄였다. 2023년 363명이었던 소년범 수는 지난해 231명으로 크게 줄었다. 올해 9월 기준 지역 내 소년범 수는 150명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부서는 아동·청소년 보호 사단법인 엔젤스헤이븐과 아동복지시설 꿈나무마을과 3자 업무협약을 체결해 위기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 내 학교폭력, 아동학대 등 범죄피해 아동, 저소득가정 자녀 등 위기청소년을 각 기관에 연계하고 선도 의뢰할 수 있도록 통합 보호 체계도 구축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 내 역사관의 모습. 이상섭 기자

이 밖에도 관내 ▷중·고등학교 교장 ▷구청 ▷아동보호시설과 협업 간담회를 개최해 핫라인을 구축했다. 51대 서부경찰서장인 이아영 총경은 최근 관내 주요 학교 관계자,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열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서부서 관계자는 “지역 경찰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부서의 얼굴들]
김동재·김민섭 부자(父子) 경찰관

서부서 직원들이 입을 모아 ‘직원 중 은평 토박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은평구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마치고 현재도 서부서에서 근무하는 서부서 경무과 소속 김민섭(40) 경사와 퇴임 경찰관 김동재(71) 씨가 대표적이다. 대를 이어 경찰 공무원으로 봉사하는 부자(父子) 경찰 가족이다.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근무하고 퇴임한 전직 경찰관 김민제 씨(왼쪽)와 아들인 서울서부경찰서 경무과 김민섭 경사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김동재 씨는 1979년 임용돼 1982년부터 서부서에서 주로 형사로 근무했다. 살인·마약 사건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 받은 표창장만 50개다. 김씨는 “표창장을 더 받을 수 있었는데, 50개를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그 뒤로는 다 후배들한테 넘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들 김민섭 경사는 “아버지 속옷과 양말을 챙겨주러 옛날 서부서에 자주 왔었다”며 “당시 아버지 속옷 가져다 드리면 삼촌들이 사주는 콜라를 마시면서 집에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회상했다. 김 경사는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경찰이 됐다.

아버지는 아들이 경찰이 되겠다고 처음 밝혔을 때 만류했다. 김씨는 “음주차량에 300m 끌려가기도 하고 형사 생활하면서 많이 다쳤다”며 “걱정되는 마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김 경사가 경찰의 꿈을 접지 않은 이유는 어릴 적 봤던 ‘경찰 아버지’ 덕분이었다. 김 경사는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동네에 나가면 상인분들이나 주민들이 아버지랑 살갑게 지냈다”며 “또 서부서 직원끼리도 끈끈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경찰 하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경사는 은평구에 대해 “저를 키워준 동네. 여기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직업도 이곳에서 가졌다”며 “이제는 결혼을 해서 평생 또 살아갈 동네인 만큼 경찰로서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경사는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선배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좋은 길잡이로서 큰 위로가 된다”며 “묵묵하게 두 경찰을 뒤에서 지원해 준 어머니와 아버지의 응원으로 행복한 경찰로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서부경찰서 녹번파출소 한지욱 순경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사업 자금 되찾아 준 한지욱 순경
이날 만난 또 다른 서부서의 얼굴은 올해 임용된 1년 차 경찰 한지욱(29) 녹번파출소 순경이다. 그는 지난 9월 한 인테리어 업자가 도난당한 사업 대금 200만원을 되찾고 범인 A씨를 직접 검거했다. 인테리어 업자는 현금인출기에서 200만원을 인출한 후 그대로 잊고 떠났다. 이를 지켜보던 A씨는 이를 훔쳐 달아났다.

신고를 접수한 한 순경을 포함한 녹번파출소 경찰관들은 해당 은행 영업이 개시하자마자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A씨는 본인이 추적될 것을 알고 주변 빌라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배회하는 등 추적에 혼선을 줬다. 그럼에도 관제센터와 끈질기게 추적해 2시간 만에 피의자를 검거했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 되찾은 200만원을 전달한 한 순경은 “피해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안도하면서 감사하다고 하는데 정말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실 피해자가 경찰이 이렇게 나서줄 것이라고 기대를 안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되찾아 주니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커졌을 것 같아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 순경은 “어렸을 때부터 경찰 꿈이 있었다. 문무를 갖춘 직업을 찾으니 경찰이었다.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고 각종 운동과 법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퇴직할 때까지 작은 일에도 뿌듯함을 느끼고, 또 지역 주민들이 살갑게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