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통화 이후 푸틴 입장으로 선회한 트럼프
우크라이나에 돈바스 영토 포기 압박...종전 압박
FT, 백악관 회담 보도…"푸틴 대변하듯 고성 지르며 훈계"
"이제 지겹다" 지도 내던져…희망 품던 우크라·유럽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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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끝낸 뒤 따로 얘기하고 있다.[AFP=연합 자료]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전화 한 통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러시아 석유 불매 종용 등으로 러시아를 압박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태도를 180도 바꿨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우크라이나에 종전 협상을 종용,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크게 실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종전 조건을 수락하라고 촉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를 파괴할 것”이란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된 미·우크라이나 정상 간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욕설을 하고, 여러 차례 고성이 오가는 등 격앙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쟁에서 지고 있다며, 러시아의 요구 사항을 수용한 종전 협상안을 받아들이라 요구했다.
이는 하루 전인 16일 푸틴 대통령이 통화로 제안한 내용이다.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지역 일부를 포기하고, 대신 남부 전선의 헤르손 지역과 자포리자 일부 소규모 지역을 러시아로부터 돌려받는 것이다.
이날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이 충분히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한 지난 2월 백악관 회담과 분위기가 비슷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분쟁 종식을 확보하는 데 자신감이 있다고 말하며 “푸틴이 무언가를 얻을 것이며, 그는 특정 영토를 획득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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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정상회담을 갖는 자리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AP] |
외신들은 돈바스 지역을 양도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게는 “애초에 논의가 불가능한(non-starter) 사안”이라 지적했다. 러시아는 돈바스의 일부만 10년 이상 점령해왔고, 2022년 침공 이후에도 돈바스를 탈취하지 못했다. 반면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은 러시아가 제대로 탈취·통제하지 못하며 고전하고 있는 곳이다.
외신들은 전쟁이 시작된 2022년 이후 러시아가 헤르손과 자포리자에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며 통제하고 있는 영토를 넘겨주고, 러시아가 제대로 탈취하지도 못한 소규모 지역을 돌려받는 조건이다.
러시아의 요구에 우크라이나가 동의하지 않자, 회담 중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전장 지도를 한쪽으로 던져버리며 고성을 질렀다고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선 지도를 반복해서 보는 것에 “질렸다”며 “이 붉은 선, 이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곳에 가본 적도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이 주장한 논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는 지난 14일에만 해도 기자들을 상대로 한 공개 발언에서 “러시아 경제가 붕괴 직전”이라며 협상을 촉구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러시아 경제가 매우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주입식 교육’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제안해 2시간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화했다. 이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이 갈고 닦은 ‘협상 대상 다루기 기술’이 총망라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 종식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을 극찬했고,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러·우 전쟁에서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을 다시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감사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과를 극찬하며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이어 지난 8월 알래스카 회담보다 일부 양보한 내용을 종전 협상안으로 제시하며 트럼프를 설득했다. 알래스카 회담에서는 러시아가 헤르손, 자포리자에서의 전선을 그대로 동결해, 그 영토 일부마저 편입하겠다고 고집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의 수사(rhetoric)에 넘어가면서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의 희망은 꺾였다.
FT에 따르면 회담 내용을 보고받은 유럽 관리들 중 한 명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회담 후 매우 부정적이었다”며 유럽 지도자들이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다음 단계를 계획하는 데 있어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