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제재 없는 지침 수준에 그쳐
정부 연구용역서 이미 실효성 경고…공시율 70% 불과
정부 연구용역서 이미 실효성 경고…공시율 70%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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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기업의 육아휴직·유연근무제 등 일·생활 균형 제도 운영 현황을 공개하도록 한 ‘워라밸 공시제’가 올해 처음 시행됐지만, 제재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용역 단계부터 제도의 한계가 지적됐음에도 법적 강제력이나 정부 지원책이 빠진 채 도입되면서, 대상 기업 3곳 중 1곳이 아예 관련 정보를 공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고용노동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노동부가 지난해 발주한 ‘일·생활 균형 경영공시제 도입 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참여를 의무화하더라도 법적 강제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담겼다.
워라밸 공시제는 일정 규모 이상 민간기업이 육아휴직·출산휴가·시차출퇴근제 등 일·생활 균형 제도 도입 현황을 공개하도록 한 제도로, 올해 3월부터 시행됐다. 취업준비생이나 근로자가 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 유연근무 활용률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해 ‘가정 친화적 기업문화’를 확산하겠다는 취지다.
노동부는 제도 도입 당시 별도의 공시시스템을 만드는 대신, 가장 널리 쓰이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활용해 상장사의 사업보고서에 관련 항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첫해부터 공시율이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코스피 상장사 848곳의 사업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육아휴직 정보를 공시하지 않은 기업이 221곳(26.0%), 정보를 아예 기재하지 않은 기업도 77곳(9.1%)에 달했다.
즉, 전체 상장사 10곳 중 약 3.5곳은 관련 항목을 누락하거나 파악이 불가능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공시를 누락해도 법적 제재가 없는 지침 수준의 제도”라는 점을 실효성 저하의 원인으로 꼽는다. 육아휴직 정책은 노동부가 담당하지만, 실제 공시는 금융감독원이 관리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다 보니 관리 사각지대도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정부 연구용역에서도 이미 실효성 부족이 지적된 바 있다. 보고서는 “기업별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수치를 조작하거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할 부작용이 있다”며 “일·생활 균형 달성은 주관적 만족도의 영역으로, 이를 단순 수치화할 경우 불필요한 서열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공공기관·상장기업·금융기관의 경영공시제처럼 참여를 강제하기 어렵다”며 “일·생활 균형은 기업의 자율과 정부의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워라밸 공시제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법적 근거가 부재하고, 부처 간 역할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김위상 의원은 “공시제가 도입됐지만 법적 근거와 부처 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벌써 제도가 사문화되고 있다”며 “공시 의무를 강화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2023년부터 근로자 1000명 이상 기업에 육아휴직 사용률 공시를 의무화했다. 김 의원 역시 한국에서도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육아휴직 현황을 의무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