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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아스포라’ [서병기의 문화와 역사]

KBS 1TV 프로그램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 고성과 김영철

 

‘디아스포라’(Diaspora)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하지만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지칭하는 말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

‘디아스포라’ 때문에 변호사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던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인 전후석 씨다. 그는 쿠바 배낭여행을 하다 쿠바 한인사회 재건을 위해 헌신한 고(故)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Kim 1926~2006, 한국명 임은조)의 딸 파트리시아 임 씨를 만나며 ‘헤로니모’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게 됐다.

“헤로니모는 디아스포라 개념을 소개할만한 상징적 인물이다. 쿠바에는 이민 6세까지 1000명 정도의 한인이 살고 있는데, 4세 이후는 100% 혼혈이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이 사라진다.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하고, 본국과의 관계를 유지할까? 한인의 정의를 좀 더 넓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숫자를 더 넓히지 않고 줄이는 경향이 있다.”

전후석 감독은 “쿠바 여행도 나의 정체성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 한인으로 살아가는 게 무엇일가? LA 폭동이 흑백갈등으로만 비쳐졌는데, 가장 큰 피해자가 한국교민이었다. 상점이 불타고 약탈 당해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 주류도 인종갈등으로 파악했다”면서 “한인들은 선출직 정치인도 거의 없고 오피니언 리더가 부족해, 돈만 벌려고 하는 부류의 이민자라는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브라질에 있는 5만 교포들이 사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유태인만 디아스포라가 있는 게 아니고, 한인도 디아스포라가 있음을 알게됐다. 대한민국의 모든 일도 한반도 내에서 뿐만 아니라 코리아 디아스포라가 영향을 미친다. 우리도 주인의식이 있다. 이는 본국을 향해 어떤 이득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아 존재 이유를 찾는 행위이자 작업이다.”

전 감독은 “고국과 디아스포라의 관계도 흥미롭다. 유태인은 나라를 잃고 3천년이나 타지에서 떠돌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했다. 그런데 한국은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다. 조선족, 탈북자, 재일동포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정서가 있다”면서 “한국인에 대한 정의를 축소해 스스로 배타적으로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에서 선진국으로 간 사람들은 한국을 배신했다고 보고,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 간 사람은 등한시한다”고 의미있는 말을 했다.

재외동포 750만 시대다. 부산 대구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런 나라는 흔치 않다고 한다. 우리가 우리를 포용하지 못하면 외국인을 포용할 수 없다. 한민족의 범위와 정의를 확장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해외에 흩어져 있는 재외동포들의 삶을 추적하며 자연스럽게 ‘코리아 디아스포라’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프로그램이 KBS 1TV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프로듀서 윤진규, 제작 허브넷)다.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는 올해 ‘아르헨티나의 슈퍼우먼 황진이 한인 앵커’, ‘미식성지 샌프란시스코의 별 황정인 셰프’ 등 설 2부작, ‘독일 소녀들의 한국어 합창 공연 이끄는 지휘자 정나래’, ‘유럽에 장맛 보급하는 프랑스 성주 유홍림’, ‘베트남 마켓왕 고상구 회장’ 등 추석 3부작 등 총 5편을 통해 우리의 세계 속 우군이자 대한민국의 민간홍보대사인 ‘재외동포’의 삶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보여주었다.

세계 각지에서 차별과 한계를 극복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의 삶을 직접 찾아 만나서 위로하고 응원하는 일은 대한민국이 응당 해야 할 일이며, 공영방송 KBS가 해야 할 일이다.

재외동포의 세대가 내려갈수록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코리아 디아스포라’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재외동포들이 지구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코리아 디아스포라’의 포용성이 ‘김영철이 간다’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다.

‘재외동포’에 시선을 돌린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공영방송 KBS가 계속해야 할 중요한 국가적 테마다. 명절 특집 뿐 아니라 정규 시즌 프로그램으로 계속 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 가능성을 이번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가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추석 특집 ‘김영철이 간다’는 독일·프랑스·베트남 재외동포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을 담은 감동의 여정으로 긴 연휴 시청자의 마음을 녹였다.

추석 3부작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세계 무대 속에 핀 ‘한인의 정’이었다. 김영철이 만난 재외동포들은 어떤 자본이나 기술보다 더 큰 힘인 한인 특유의 정과 성실함,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인물들이었다. 김영철은 특유의 따뜻한 공감력으로 해외 각지의 동포들을 만나 그들의 눈물과 웃음을 함께했다.

1부:‘K합창, 독일을 울리다’-재외동포 지휘자 정나래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한국 동요로 전국 합창대회를 제패한 재외동포 지휘자 정나래의 이야기가 첫 회를 장식했다. 그녀는 독일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노래와 정(情)을 가르치며, 음악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독일 사회를 감동시켰다. 재외 동포 1세대의 희생을 기억하고, 제자들과의 따뜻한 교감을 통해 세대를 잇는 한인의 정을 전한 정나래의 이야기는 감동과 울림이 있는 하모니로 호평을 받았다.

김영철이 찾은 곳은 축구의 도시로 유명한 도르트문트시였다. 도르트문트나 주변의 에센, 뒤스부르크, 보훔 등은 루르 공업지대로, 서부 독일에서 석탄과 철이 가장 많이 매장된 곳이다.

오페라하우스를 찾아 독일 청소년 합창단을 만난 김영철은 재외동포 지휘자 정나래와 합창단의 특별한 음악 여정을 함께하며 따뜻한 공감과 감동을 선사했다.

독일 합창단 소녀들은 ‘고향의 봄’, ‘걱정말아요 그대’, ‘홀로 아리랑’ 등 어렵게 익힌 한국어 가사를 또렷한 발음으로 진심을 담아 노래했다.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 하모니의 중심에는 재외동포 지휘자 정나래가 있었다. 독일 공영방송 ZDF가 주최한 ‘2023년 독일 전국합창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정나래 합창단은 이미 현지 언론으로부터 “문화적 융합의 기적”이라 평가받았다.

정나래는 “음정보다 먼저 가사를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노래의 뜻을 알아야 마음이 전해지니까요”라며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독일 소녀들은 노래 속에 담긴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고, ‘홀로 아리랑’을 부를 땐 “한국이 독일처럼 언젠가 하나가 되길 기도한다”라는 소망을 전했다. 13~16세의 앳된 독일소녀들이 이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자체가 신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정나래의 독일 정착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경남 진주에서 자라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독일로 향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집안 형편도 안좋아졌고, 아버지는 암 투병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주가정교사, 입주요리사, 편의점 알바 등 온갖 고생을 하며 버텨냈다.

합창단 부모들도 나래 지휘자를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과 열정으로 가르치는 모습에 감동해 이제 합창단 학생들과 부모들이 정나래 지휘자를 100% 신뢰하게 됐다.

그런 그녀가 중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가족에게서 받은 사랑과 독일 현지에서 사랑으로 지지해 준 1세대 재외동포 덕분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정나래는 이곳 청소년에게 먼저 사랑을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가사를 가르쳐 의미와 감정을 표현하게 했다. 정나래는 “호흡, 발성, 음정부터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했다.

또한, 파독간호사는 정나래의 양 어머니가 되어 합창단 식사를 조달했다. 이건 동포애이자 인간애이기도 했다. 독일의 어린 소녀들도 한국의 이런 ‘정(情) 문화’를 이해하는 듯 했다.

작은 언어적 결함을 노력과 열정으로 극복한 정나래는 “언어와 생김새가 다 다르지만 음악의 하모니처럼 우리는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2부:‘한국의 정을 심다’-유럽에 장맛 보급하는 프랑스 성주(城主) 유홍림

2부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200년 된 성(城)에 둥지를 튼 재외동포 유홍림의 이야기를 담았다. 간장과 된장을 담그며 한국의 맛과 정신을 프랑스 땅에 심은 그녀는, 입양 한인과 현지인들을 품으며 ‘타국에서 다시 만난 엄마’로 불렸다.

유홍림이 장독대 옆 텃밭에서 자란 채소와 손수 띄운 메주로 만들어낸 음식은 이역만리에 흩어져 살아가는 재외동포들과 입양 한인들에게 ‘고향의 맛’, ‘마음의 집’이 되었다. 프랑스 셰프들도 유홍림 셰프에게 장과 한국 전통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러 오고 있었다. 프랑스 고성에서 종가집을 연 것이다. 프랑스인에게는 ‘특이하고 오묘한 맛’인 장맛을 프랑스 음식과 결합시키는 ‘쿠킹 클래스’는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전북 전주 출신인 유홍림은 가난한 목사와 결혼하고 독일을 거쳐 프랑스 땅에 뿌리를 내렸지만, 이방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고단한 시간은 성의 장독대가 되었고, 오늘의 공동체를 키우는 거름이 되었다. 프랑스 현지 언론도 이 성을 재외동포와 이웃이 함께 모여 밥을 나누는 작은 한국이라 평했다.

무엇보다 유홍림이 만든 한식은 고향 음식을 넘어 재외동포, 입양한인들을 한국과 연결시켜주는 ‘정’이자 ‘기억’이고 ‘치유’였다.

그녀가 만든 김밥을 맛본 입양 한인 다비드는 “어렸을때 거제도에서 프랑스에 입양됐는데, 한국 음식을 먹으면 마치 한국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며 어린 시절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또 다른 입양 한인 루크는 “유홍림 선생님이 미역국, 소갈비, 잡채 등으로 차린 엄마의 밥상을 먹으면 한국에 대한 닫친 마음이 열린다”고 말했다.

3부:‘베트남 마켓왕, 고상구 회장’-한인 기업인의 도전기

베트남의 유통 혁신을 이끈 재외동포 기업인 고상구 회장의 도전기를 조명했다. 작은 점포 하나로 시작해 150개 ‘K-마켓’ 체인을 일궈낸 그는 베트남인의 일상 속에 K-푸드를 심으며 새로운 ‘마트 한류’를 만들었다.

그의 성공 뒤엔 한인의 끈기와 사람을 향한 진정성이 있었다. 2천 명 현지인을 고용하며 가족처럼 지켜온 기업 문화, 그리고 ‘한식 마트’를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킨 그의 철학은 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에 새긴 상징이 되었다.

880만명이 사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점심시간 K-마켓 푸드 코트에는 떡볶이, 김밥, 제육볶음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보기 위해 베트남 젊은이들이 줄을 선 모습에 놀랐고, 현지 가정의 냉장고 안에 참기름, 김치, 한국 술 등 한국산 식재료가 가득한 풍경에 김영철은 “80%가 우리 거네요!”라고 했다. 하노이가 K-푸드 성지가 된 듯했다.

베트남 전역에 150개 매장을 운영하는 ‘K-마켓’의 창업자 고상구 회장의 안내로 K-마켓을 찾은 김영철은 곤드레나물, 도라지, 포도, 사과 등 항공 운송된 한국의 제철 과일 등 온통 한국어 상품으로 가득한 진열대를 보고 “여기가 베트남이라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온통 한글 천지네요!”라며 또 한번 놀랐다.

무엇보다 “리테일(유통)은 디테일!”이라고 강조하는 고상구 회장표 K-마켓의 철저한 유통 시스템과 현지인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현지화 전략에 김영철은 “단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베트남의 일상 속에 한국을 심고 있다”라고 했다.

고 회장은 마트 출입문을 대로변 외에도 아파트 단지쪽으로로 만들어 이용률을 높이며 아파트 단지 길목을 확보하는 ‘포켓 상권’(내 주머니에 들어와 있는 상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매장은 한 걸음이 천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옆인데 입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고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켓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고상구 회장도 처음에는 순탄치는 않았다. 현지인들의 텃세, 문화를 모르는데서 오는 실수 등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대구에서 악세서리 제조업을 했던 고 회장은 베트남으로 와 백화점 사업을 했지만 투자금을 다 잃고 6개월만에 정리했다. 낯선 땅에서 시작한 첫 사업이 반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그러다 인삼주 사업으로 대박이 나 K-마트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시 2014년 화재로 대형물류센터가 전소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무려 500만 달러(한화 6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직원들이 월급을 모아 고 회장님께 전해드리려고 하자 고 회장은 “지금은 누구나 일을 해야 하고, 가족과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니 월급은 꼭 받아야 한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만 받겠다”며 돈을 돌려줬다. 직원들은 자신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고 회장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회장의 구호가 공허하지 않고 직원들의 마음속에 온전히 자리잡았다. 직원중에는 2002년도에 입사한 원년 멤버들이 유독 많았다.

어려운 시절 고생을 같이 한 직원들과는 배부른 날의 영화도 같이 누린다는 고상구식 경영철학은 직원들을 끈끈한 평생동지로 묶어놓았다. 이들은 단순히 월급을 받는 직원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K-마트는 성공을 꿈꾸는 베트남 청춘들 사이에서, 간절히 들어오고 싶은 꿈의 직장이 됐다. ‘일등’이 아니라 ‘일류’를 추구한다는 고 회장은 베트남 유통시장의 물살을 바꾸고 있다. 배타적인 베트남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고, 베트남 경제계의 차단막도 뛰어넘었다. 동남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메가마켓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입점하는 쾌거도 이뤄냈다.

고상구 회장은 “우리는 다른 나라에 살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정말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이다. 한국을 인정해 주는 길이고, 재외동포들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것이 바로 애국”이라고 말한다.

재외동포청과 KBS가 함께 한 이번 3부작은 전 세계 750만 재외동포가 일궈가는 세계 속의 ‘또 하나의 대한민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