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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칼럼] 젊은 남자, 그들은 왜 뒤처지고 어떻게 화를 내는가

전세계적으로 청년 남성이 여성에 비해 교육·고용·결혼에서 고전하면서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했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저는 미국 남성들이 경제적 삶과 사회적 삶, 가족의 삶에서 얼마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는지 정말로 걱정됩니다. 20년간, 30년간, 40년간 학자들은 여성과 아이들에게만 집중했잖아요. 이에 우리는 정말로 남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인간 사회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했던 젊은 남성들이 언제부터인가 측정 가능한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어 젊은 남성은 이제 젊은 여성보다 친구를 사귀고, 좋은 성적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확률이 낮아졌다.”

첫 문구는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인 리처드 리브스의 책 ‘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이하 ‘소년과 남자들’)에서 저자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주최 회의에서 들었다는 경제학자 멀리사 커니의 말이다. 두번째 인용문은 미 ‘블룸버그’ 뉴스 편집자 너새니얼 포퍼의 저서 ‘분노세대’의 일부다.

두 책은 각각 2022년과 2024년 미국에서 출간됐으며, 한국에선 올해 9월과 1월 번역 발매됐다. ‘소년과 남자들’은 영어 원제(Of Boys and Men)를 그대로 차용했으나 한국판엔 친절하게 ‘오늘날 남성은 왜 뒤처지는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분노세대’의 영어 원제는 ‘월스트리트의 괴물들’(The Trolls of Wallstreet)이며 한국판의 부제는 ‘밈과 혐오로 시장을 교란하는 불안 세력의 탄생’이다. 제목이 사뭇 노골적이다. 이들 책 뿐 아니다. 리브스가 거론한 관련 선행 연구서로는 ‘남자의 종말’ ‘밀려난 남자’(Man Out) ‘남자답게 행동하기’ ‘길을 잃은 남자’(Man, Interrupted) ‘소년 위기’ 등이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남성, 특히 젊은 남성들을 말하기 위해선 절망적인 뉘앙스로 점철된 단어를 동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를 주제로 한 이야기 자체가 ‘정치적 금기’가 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리브스는 “나는 이 책을 쓰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쓰지 말라고 충고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며 “작금의 정치적 분위기에 소년과 남자들의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은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언급만으로도 당장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젠더 갈등’은 공동체를 뒤흔들 ‘뇌관’이되, 정치와 정부는 이를 충분히 다룰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이는 전세계 공통이다. 특히 한국에선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아직도 낯선 사회 문제다. 모든 국가에서 전통적인 계급이나 이념 갈등을 최우선 당면 과제로 삼아왔으며 서구에선 인종·종교, 한국에선 지역·세대 등의 문제에 비해서도 사실상 간과된 주제였다. 더구나 여성 인권 신장 시대를 거친 오늘날 ‘젠더 갈등’의 가장 큰 축이 ‘뒤처지는 남자들’과 ‘화난 남자들’이라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좌우 정치세력에 의해 곡해·왜곡돼 왔다는 것이 두 저서가 내세운 주장이다. 실상과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청년 남성의 보수·극우화’ 같은 말단의 정치적 현상에 시야가 갇힌 채 기성세대가 쩔쩔매고 있는 형국이다.

‘소년과 남자들’은 ‘뒤처지는 남자’의 원인과 대책을 제시한다. ‘분노세대’는 2021년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대항해 미 주식 ‘게임스톱’의 이상 폭등을 이끌었던 청년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 ‘월스트리트베츠’(WSB)에 대한 탐사이다. 이 책은 분노한 젊은 남성이 정치·사회적 파장을 넘어 금융시장질서에 파괴적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라는 점을 꼼꼼한 사실 추적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로선 중요한 참고자료가 아닐 수 없다.

더디 가는 ‘소년의 시간’, 뒤처지는 남자들

지난 9월 미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단연 최대 화제작이었다. 미니시리즈 부문 6개 상을 휩쓸었다. 이 작품은 13세 소년이 같은 학교 여학생을 살해한 사건을 그렸다. 학교 내 따돌림, 소셜미디어를 통한 성 착취, 남성 극단주의, 남녀 혐오 등 현대 교육과 청소년 문제를 가감없이 담아내 호평받았다. 특히 범행의 가장 중요한 동기로 드러나는 것은 소년이 가진 ‘인셀’이라는 자학적 인식과 공포다.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여성에게 인기가 없어 연애나 결혼 상대를 찾기 어려운 젊은 남성을 경멸적으로 이른다. 서구권에선 젠더 갈등이나 청년 남성 문제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한국의 온라인 속어로는 ‘도태남’이라는 멸칭과 거의 동일한 의미다.

‘소년과 남자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전통적인 가족 부양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남자들이야말로 바로 그 전통적 잣대로 판단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것이 뭘 의미할까? 노동시장에서 무시당하는 남자들은 결혼 시장에서도 고생할 것이라는 얘기다”라고 말이다. 여성 능력과 권리의 신장으로 결혼과 고용 시장은 변했지만, 가족의 부양자이자 보호자로서의 남성성에 대한 전통적 인식은 시대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 간극에서 젊은 남성들의 절망과 분노가 발화한다.

결혼시장에서의 남성의 실패는, 여성에 비해 교육과 취업 시장에서 점증하는 열세 현상과 나란히 한다. 초중고교 수준의 학업 성취도에서 여학생 우위가 확대되고, 대학의 법·경영·의학은 물론 전통적인 남성 우위 전공인 공학, 컴퓨터공학, 수학 학위 취득에서도 여성이 앞서거나 남성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다. 이는 주요국에선 거의 예외없는 국제적인 추세다. 고교 졸업 및 대학 진학·졸업률도 여성 우위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같은 현상은 남녀간 성장기 뇌발달의 ‘시차’와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며, 이를 ‘차별의 합리화’가 아닌 ‘제도 개선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소년과 남자들’ 저자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충동조절과 계획, 미래 지향과 관련된 뇌의 부위인 전전두피질은 남자아이들이 여자들보다 약 2년 늦게 성숙한다. 소뇌는 여자아이들의 경우 11세에 완전한 크기가 되지만, 남자아이들은 15세가 돼야 한다. 신경 기능의 향상을 위해 뇌의 여러 부위 중 일부를 ‘가지치기’하는 과정 역시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더 일찍 이루어진다. 그 차이는 16세 전후에 가장 크다. 결국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적어도 한 두 살 일찍,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현재의 충동과 감정을 조절해 학업에 열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같은 학업성취도의 격차 심화는 노동 시장에서 남성의 우위를 빠르게 사라지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로 상징되는 첨단기술의 발전과 자유무역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글로벌화는 남성 근로자에게 더 불리한 조건이 되고 있다. ‘소년과 남자들’은 “우리는 여성에게 유리한 교육 시스템과 남성에게 유리한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나, 그 상황도 가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와 멜러니 와서먼은 “미국 남성은 지난 30년 동안 노동시장의 기술 습득, 고용률, 직업적 위상, 실질임금 수준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성 고용의 가장 큰 감소는 25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남성들에게서 일어났다. 저자는 이를 “남성 일자리는 자동화와 자유무역이라는 원투펀치를 맞았다” “남성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로봇과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곤경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공매도 세력을 응징하라’, 금융 시장 반란에 나선 ‘화난 남자들’

2021년 게임스톱 사태 전후의 WSB 15년을 추적한 ‘분노세대’ 역시 젊은 남성들의 세태 묘사로 출발한다. “전통적인 남성성의 특징인 공격성과 경쟁심보다 협력과 감성 지능을 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는 젊은 남성들이 갈수록 늘어났다”고 저자 포퍼는 썼다. 젊고 일자리가 불안정한 남성들 사이에 만연한 외로움이 WSB라는 ‘부적절하지만 만족스러운 해방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WSB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의 하위 모임(서브레딧) 중 하나로 주식 투자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던 곳이었다. 게임스톱 사태는 WSB에서 활동하던 개인투자자들이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맞서 주식을 집중 매수하며 주가를 급등시킨 사건이다. 게임스톱은 미국의 비디오 게임 유통 대기업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등 콘솔과 게임, 주변 기기 등을 파는 점포를 전역에 갖추고 있다. 그런데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 비중이 점차 늘면서 사세가 위축하고 주가도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멜빈 캐피털 등 일부 헤지펀드가 대규모 공매도에 나섰고, 이것이 WSB의 분노를 자아냈다. 게임스톱의 정당한 평가에 근거하지 않고 부당하게 주가를 낮추려는 헤지펀드의 음모라고 본 것이다. 이에 WSB 사용자들이 집단적으로 게임스톱의 주식 및 ‘콜 옵션’ 매수에 나섰고, 주가는 2021년 1월초 주당 약 19달러에서 한달도 안돼 500달러까지 2500% 이상 상승했다. 결국 해지펀드들이 대규모 손실을 메꾸기 위해, 공매도로 가격 하락에 베팅했던 주식을 사들이면서(숏스퀴즈) 사실상 WSB에 항복했다. 이 과정에서 WSB 사용자이자 ‘스타’였던 일론 머스크도 ‘밈’을 통해 주가 폭등에 가세했다.

WSB의 온라인 문화 원조는 ‘남초커뮤니티’인 ‘포챈’으로 젊은 남성들이 익명으로 음담패설이나 욕설을 거리낌없이 쏟아내던 곳이었다. ‘분노세대’는 20대 남성들의 학업·취업 하향화와 유급 근로시간의 감소, 비디오게임·컴퓨터 이용 시간의 급증 등의 통계를 인용하며 “포챈만의 문화가 형성된 배경에는 이처럼 달라진 세상에 등장한 새로운 부류의 청년들, 즉 시간은 남아돌고 사회에서 도태되었다는 자괴감에 빠진 젊은 남성들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WSB는 정치 문제에는 거리를 두면서 젊은 남성들의 마음 속에 쌓인 분노와 에너지를 금융시장으로 돌렸다.

‘분노세대’는 WSB의 창립·운영자인 제이미 로고진스키와 조던 자자라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청년 남성들의 삶과 욕망, 현실을 극적이고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처음엔 정치적으로 다소 진보 성향을 보였고, WSB 역시 금융계의 위선과 불공정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선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과 맥이 닿아있었다. 그러나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운동을 기점으로 이들 역시 지지자로 돌아섰으며, 다수의 남초커뮤니티도 부흥했고 일부 서브레딧은 트럼프 기세의 본진이 됐다. “트럼프가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만연한 분노와 반문화적 성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대변하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성난 얼굴의 그들’을 돌아보라, 지금이야말로

‘분노세대’의 저자가 본 WSB의 젊은 남자들은 외롭고 화가 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들의 낙오와 고립, 분노가 모두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WSB가 일으킨 거대 금융자본과 시장을 향한 반란에는 비뚤어진 열정과 합리적인 분노, 무대책의 한탕주의와 전략적인 지성이 복합돼 있었다. ‘소년과 남자들’은 남성성이 ‘유해’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문제는 진보와 보수, 전통적인 페미니스트와 가부장주의 모두 젊은 남성들을 중심에 놓은 젠더갈등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 고용, 가족에서의 ‘남성성의 위기’를 섬세하게 분석한 ‘소년과 남자들’은 구체적인 대책으로 남성친화적인 교육제도와 노동시장 및 직종의 성별 구조 혁신, 아버지 역할의 재구성을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없어졌다거나, 여성 지위 개선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평등은 ‘양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젊은 남성들의 문제를 ‘생물학적 성차’와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통해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젊은 남자들이 빚어낸 현상을 끈질기게 추적한 ‘분노세대’는 대책을 따로 제시하진 않았다. 그러나 방향은 명확하다. 분노한 젊은 남성들이 가지는, 세상의 불공정에 대한 목소리에 기성 세대와 정책 입안자들이 온신경을 집중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불공공정이 계속된다면, 젊은 남성들의 ‘도발’로 인한 불확실성은 증대할 것이다. ‘트럼프 현상’이나 ‘극우화’가 그렇듯이 책임있는 당사자가 외면하면, 무책임한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황을 악용하기 쉬워진다.

“어떤 점에서든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진정한 평등은, 오직 그 차이에 대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 ‘소년과 남자들’이 인용한 미국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말이다. 백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