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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업무 속 ‘출산의 기적’ 목격…“두려워도 용기내서 전화 누르세요”[위기임산부 24시간 상담 1년]

서울시 위기임산부 지원센터 고은 상담원
예상 못한 임신에 자가분만 중 전화 연락
기댈곳 없는 엄마·아이 모두 보호하는 일
법 빈틈 여전…청소년 산모 지원보완 시급

서울시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센터 내 상담실. 통합지원세터는 전화·온라인을 통한 상담 외에도 직접 상담 업무도 진행한다. 박지영 기자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전화번호를 누르고 기다리는 순간에 두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세요. 저희는 충분히 듣고, 도움을 드리기 위해 언제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인 고은 씨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임신·출산으로 패닉에 빠진 임산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용기’라고 강조했다.

고 씨는 한국장로교복지재단 애란원 산하 한국 위기 임신·출산 지원센터에서 성인, 장애인 위기임산부 지원 담당자로 일하다 올해부터 서울 지역 상담기관인 서울시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전국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위기임산부 지원 단체들 중 일부가 정부 지원을 받는 지역 상담기관으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현재 17개 지역 상담기관의 상담원들이 365일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고 씨는 위기에 처한 사람, 특히 아이를 보호한다는 가치에 공감해 위기 임산부를 지원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다른 사회복지 지원 대상에 비하면 위기임산부의 숫자는 많지 않다”며 “기댈 곳 없는 엄마와 아이의 생명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상담 사례는 다양하다. 임신 가능성 문의부터 출산 이후 지원 대책, 시설 입소, 입양, 보호 출산 등 임신·출산에 대한 모든 불안과 고민이 상담 대상이다. 고 씨는 “응급 분만이나 긴급 대응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 혼자서 출산을 시도하다가 상담 전화를 들기도 하고 베이비 박스 앞까지 갔다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며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연락을 준다”고 했다.

응급 분만 상황에서는 우선 119에 신고할 것을 권하고 상담원이 직접 병원으로 간다. 응급 분만 병원을 찾기 어려워 함께 병원을 수소문하기도 한다. 고 씨는 “불안, 우울로 자살 충동이 있는 임산부도 있다. 임신기에는 약물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찾아가서 직접 대화를 나눈다”며 “우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심어주고 향후 절차에 대해 차분하게 논의한다”고 했다.

고 씨가 보람을 느낄 때는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불안에 시달리던 산모도 아이의 얼굴을 보고, 직접 기르면서 많이 변한다. 고 씨는 “위기 임산부는 보통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호르몬의 변화도 있어 예민하다. 하지만 대부분 ‘선생님 그동안 제가 많이 괴롭혔죠? 죄송해요’라고 말한다”며 “아기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고초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울 때도 많다. 고 씨는 ‘원가정 양육’을 제1의 목표로 두고 상담 한다. 하지만 출생 신고 후 입양이나 보호 출산을 원하는 임산부도 있기 마련이다. 고 씨는 “위기 임산부 상담은 상담원에게도 높은 심리적 부담감을 안기는 일”이라며 “아기를 지켰다는 마음보다 아기가 보호자 밑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 많이 든다. 아이를 위해 출생 증서에 최대한 자세히 당시의 상황을 적지만 자라난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만 출생 신고 후 입양되거나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도 향후 절차를 통해 친부모의 정보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친부모가 동의하면 인적사항을 제공할 수 있고, 친부모의 동의를 확인할 수 없거나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인적사항을 제외한 입양 정보나 출생증서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다.

고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로 한 청소년 위기임산부를 들었다. 위기임산부 지원을 위해 법이 만들어졌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허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아이를 낳은 뒤 보호 출산을 요청한 경우였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웠다.

병원 밖 출산이라 출생증명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해 출생 확인을 받을 수 있지만 ‘성인’만 신청서를 적을 수 있었다. 청소년 산모의 부모가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지만 산모 본인이 이를 거부했다. 고 씨는 “산모의 유전자 정보를 취합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출생 등록을 했다. 아이가 시설로 인도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마음이 무거웠다”며 “저뿐만 아니라 병원, 법원, 지자체 등 관계 기관도 익숙하지 않아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상담 업무를 하다 보면 제도의 빈틈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미성년 산모는 위기 임산부일 가능성이 높은데 관련 법이 미비하거나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