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맞은 2025 서울국제음악제 참석
오보이스트 한이제·바수니스트 김민주
서울대 선후배, 7년 만에 실내악 한 무대
오보이스트 한이제·바수니스트 김민주
서울대 선후배, 7년 만에 실내악 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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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1년 선후배 사이인 오보이스트 한이제와 바수니스트 김민주가 2025 서울국제음악제를 통해 7년 만에 한 무대에 선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서울대 14학번과 15학번. 오보이스트 한이제(30)와 바수니스트 김민주(29)는 “올해는 우리가 만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라며 웃었다. 대학 땐 목관 오중주 앙상블을 꾸려 함께 활동했던 사이다.
지난 7년, 두 사람은 닮은 듯 다른 각자의 길을 걸었다. 저마다 유수 콩쿠르에서 수상 이력을 새기며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14학번인 한이제는 2018년 베를린필하모닉이 운영하는 2년 과정의 ‘관현악 연주자 양성 기관’인 카라얀 아카데미로 향했고, 지금은 도이치 오퍼 베를린 오케스트라의 오보에 부수석으로 몸담고 있다. 김민주는 스위스 취리히 예술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2022년 한국인 최초로 프라하 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부터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바순 종신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의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 것은 2018년이 마지막이었다.
한이제는 “함께 무대에 서는 건 7년 만이라 서로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에 김민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어 기쁘다”며 웃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국내 대표 클래식 가울 축제인 서울국제음악제(SIMF)를 통해 성사됐다. 한 주에 각기 다른 오페라를 3~4편씩 올리는 독일의 저명한 두 악단에서 활동하는 관악 주자들의 화려한(?) 외출이다. 오는 30일 개막 무대를 시작으로 일주일간 축제의 여정에 나서는 두 사람을 최근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만났다.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매순간 도전”
한이제는 이때만 되면 ‘방앗간을 찾는 참새’처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올해가 벌써 네 번째. 도이치오퍼 베를린은 본격적인 시즌을 시작했으나, 잠시 ‘휴가’를 내고 이 축제를 찾았다. 그에게 이 무대는 무수히 많은 클래식 음악 축제 중 하나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귀하고 특별한 의미가 따라온다. 한이제는 “이곳에 오면 매 순간이 배움이고 도전이 된다”고 했다.
지금은 축제를 앞두고 리허설에 한창인 상황. 전날에도 저녁 8시 30분까지 개막 연주를 위한 리허설이 이어졌다. ‘모차르트부터 탱고까지’라는 타이틀로 준비한 올해 축제의 개막 음악회는 세계적인 호르니스트 라덱 바보락이 지휘와 협연(10월 30일, 롯콘서트홀)을 맡았다. 라덱 바보락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8년간 호른 수석을 활동했고, 이후 솔로 연주자이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단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라덱 바보락과 협주곡 리허설을 함께 하면서, ‘와, 정말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마치 사람의 몸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아크로바틱 선수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호른으로 만든 현의 진동이 플루트보다 섬세하고 오보에보다 아름답더라고요. 호른의 멜로디를 이어받은 제 오보에 소리가 쇳소리처럼 거칠게 느껴지더라고요. 라덱의 음악은 한계가 없었어요. 함께 하는 내내 오보에의 한계를 넘어서야 할 것 같다는 도전이 생겼어요.” (한이제)
국내 최정상 연주자가 모여 축제를 위한 오케스트라(SIMF)를 만들고, ‘헤쳐 모여’ 역대급 앙상블을 이루는 실내악은 서울국제음악제의 자랑이다. 이 음악제에선 자기 자리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며 탄탄한 내공을 쌓아온 연주자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이제는 “이렇게 최정상에 있는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굉장히 귀한 일”이라며 “앞서 음악의 길을 걸어간 대선배와 동료들과 만나며 영감을 받고, 친분을 이어가며 음악적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그가 해마다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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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1년 선후배 사이인 오보이스트 한이제와 바수니스트 김민주가 2025 서울국제음악제를 통해 7년 만에 한 무대에 선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
김민주는 올해 처음으로 축제를 함께 하기 위해 지난 27일 독일에서 날아왔다. 그는 “한국에서의 활동이 많지 않은 데다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은 처음인데 다양한 연령대와 국적이 섞여 수평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굉장히 재밌다”며 “함께 실내악을 하며 음악적으로도 성장하고 연륜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무수히 많은 축제가 있지만, SIMF의 강점은 프로그램에서 나온다. SIMF는 3년 전부터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이 음악제는 익숙한 작곡가와 작품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여타 페스티벌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택한다. 많은 오페라와 교향곡을 섭렵했던 김민주도 “생전 처음 해보는 낯선 레퍼토리가 많다”고 할 정도다. 한이제 역시 “음악제는 대중적 곡이 있어야 티켓이 팔리니 다양한 편성을 하기가 어려운데, 서울국제음악제는 굉장히 다채로운 레퍼토리와 편성으로 관객과 만난다”며 “이미 17년간 차별화된 축제이자 단체로 존재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할 실내악은 글린카 7중주(11월 1일, 세종문화회관)다. 김민주는 “실내악은 혼자 연습하면서 재밌기가 힘든데 이 곡은 혼자 할 때도 지루하지 않은 곡”이라고 했다. 한이제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느낄 수 있는 곡”이라며 “이 작품을 마주하다 보면 드보르자크도 보인다. 민족적이며 느린 선율의 2악장은 멜로디와 화성은 복잡하지 않은데 많은 감정이 담겨있다. 심플해서 어렵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곡”이라고 했다.
한이제는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곡으로 폐막 음악회(11월 6일,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할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를 꼽았다. 그는 “카라얀 아카데미를 다니던 마지막 해에 베를린필의 상임이 된 키릴 페트렌코가 취임 연주 때 했던 곡이라는 인연이 있다”며 “보통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을 아주 좋아하지만, 그것을 능가할 만큼 한국의 감성에 잘 맞는 곡“이라고 귀띔했다.
“바순 알리고, 연주력 유지하는 게 목표”
스무 살즈음에 처음 만나 10년을 보내니 새삼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목관오중주로 함께 하던 그 시절로 시간을 돌린다. 당시 김민주는 줄줄이 선배들을 모시고 있던 ‘막내’였다. 그는 “(한이제) 언니가 리더십이 있어 팀을 끌고 가는 힘이 굉장했다”며 “덕분에 나태해지지 않고 열심히 했다. 특히 아이디어가 상당히 많아 공부가 많이 됐다”고 돌아본다.
김민주의 이야기에 한이제는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는 “학생 시절엔 오케스트라보다 솔로와 콩쿠르에 집중하던 때라 함께 하기에 불편할 수 있고, 어찌 보면 독단적일수도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민주가 중심을 잡아뒀다”며 “그때 민주의 연주 방식은 굉장히 유연했다. 상대에게 맞추면서도 자기 연주를 하는 학생이었다”고 돌아봤다.
보통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다 자기 악기를 찾아가는 대부분의 연주자와 달리, 김민주는 처음 만난 악기가 ‘평생 친구’가 됐다.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아빠 친구가 ‘바순을 잘할 것 같다’며 권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오케스트라에 바순 단원이 없었다고 한다. 금관악기인 튜바나 현악기인 더블베이스처럼 저음을 내면서도 지금도 손이 자그마한 김민주에게 무게와 크기의 부담이 없는 바순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바순은 사람의 목소리와 닮았고, 사람의 목소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며 “특히 악기의 숨결대로 나아가는 연주가 내겐 너무나 큰 매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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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보이스트 한이제와 바수니스트 김민주.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
오케스트라에서 악기의 음을 맞출 때, 가장 먼저 ‘등판’하는 오보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의 정석이다. 한이제는 “어릴 때부터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오보에는 잘 맞는 악기였다”며 “플루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멜롱콜리한 소리를 가졌다. 솔로로서도 존재감을 가지면서도 튀지 않고 어우러지는 오보에의 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피아노, 바이올린과 비교하면 바순은 희귀 악기에 가깝다. 김민주는 “바순을 사랑하는 연주자라고 소개하면, ‘바순’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며 웃는다. 바순 연주자이자 음악가로의 바람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는 “바순이라는 악기를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있다”며 “바순을 통해 음악적으로 더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해 악기의 매력을 많이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한이제는 이제 막 30대가 됐다. 달라진 숫자만큼 최근엔 현실과 꿈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고민도 깊었다. 고민의 답은 이번에 한국에서 찾았다.
한이제는 “이번 음악제에서 만난 라덱을 비롯해 앞서 활동해 온 선배들을 보며 어떻게 지금까지도 이런 연주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며 “때론 타성에 젖기도 하는데, 나이가 들어도 열정이 살아있는 분들을 보며 단 한 번뿐인 이 연주를 대충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