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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광장] 정책수립, ‘감’이 아닌 ‘데이터’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5명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OECD 평균 1.5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2006년부터 만들어진 점을 감안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표다.

이는 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책 설계와 집행방식이 막연한 추정, 관성적 접근에 머물면서 한정된 예산과 인력 등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 결과, 정책에 대한 신뢰와 국민의 기대감은 충족되지 못하고,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저출생과 같이 원인이 복잡하고 정책 투입과 효과 사이에 시차가 큰 문제의 경우 경험이나 추측에 의존한 정책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책의 성패는 한정된 재원과 사회적 역량을 가장 효과적인 영역에 집중시키는 것에서 출발하며, 그 판단은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근거에 토대해야 한다.

실제로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합계출산율이 0.19~0.26% 감소한다는 최근의 연구는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전체 출산율 하락의 최대 22.3%가 교육비 부담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주택 매매와 전세가격이 각 1% 오를 때 무주택자의 출산율은 각각 3.8%, 4.5%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실증적 결과들은 정책 설계 시 막연한 현금 지원을 넘어, 사교육비 경감이나 주거 안정성 확보와 같은 핵심 개입 지점에 자원을 집중해야 함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근거기반의 정책 설계는 정책 무용론을 극복하고 정책을 일관되게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효과의 체감까지 오래 걸리는 인구정책의 특성상, 단기적인 출산율 증감만으로는 정책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하자면 정책목표와 전달경로, 대상을 데이터로 정밀하게 규명하고, 정책 투입의 효과성을 입증해야 한다. 실증적 근거 위에서 정책이 설계되고 평가될 때 비로소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실증연구에 기반해 양육부담 완화, 일·가정양립, 주거지원에 역점을 두고, 사교육비 경감 등 구조적 문제의 대응책도 포괄한 ‘저출생 추세반전대책’을 발표했다. 더불어 ‘인구정책평가센터’를 신설해 정책이행, 성과평가, 결과환류를 아우르는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지자체 현금지원, 일·가정 양립정책 등 주요 저출산 정책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또 여러 행정 데이터를 연계해 인구지표에 대해 정밀 모니터링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와 현장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고용, 교육, 사회보험 등 다차원 자료와 인구 패널데이터를 연계하여 결혼·출산 등 개인의 중대한 의사결정 전후의 소득, 고용, 돌봄 환경을 정밀 분석할 수 있는 생태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학계와 현장이 참여해 정책을 검증하며, 그 결과를 다시 국민에게 설명하는 선순환이 정착할 때 정책의 실효성과 설득력은 동시에 획득된다.

과학적인 데이터와 실증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끌어낼 수 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