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6일 스타 지휘자 메켈레와 RCO
세계 3대 오케스트라 대전 스타트 끊어
악단 역량 살려낸 버르토크 인상적
세계 3대 오케스트라 대전 스타트 끊어
악단 역량 살려낸 버르토크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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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과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한국경제신문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휘계의 슈퍼스타 클라우스 메켈레, 세계 3대 최정상 악단인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2023) 키릴 게르스타인….
누구를 먼저 언급해야 할지 고민이 드는 조합이 있다. 나이, 인지도, 영향력 무엇 하나 누가 우위를 점한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쟁쟁한 이름들이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 이들은 클래식 관객들이 오래 기다린 ‘꿀조합’이다.
이미 예술의전당에 들어서자마자 열기는 확인됐다. 공연 30분 전부터 로비는 북적이기 시작했고, 애호가는 물론 ‘클알못’을 자처하는 관객들도 세계 3대 악단(베를린필, 빈필, RCO) 중 내한 첫 타자의 등판을 반겼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무대를 사로잡은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몇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RCO와 함께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오슬로 필하모닉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있는 그는 2027년부터 RCO의 상임 지휘자로 악단을 이끈다.
첫날 공연은 키릴 게르스타인과 함께 하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었다. 둘째 날은 블랙핑크와도 무대를 꾸몄던 스웨덴 출신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말러 교향곡 5번을 들려줬다.
클라우스 메켈레는 이미 지휘계의 슈퍼스타다. 그는 등장과 함께 전 세계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모았다. 그가 서는 무대는 한국에서도 클래식계 최고 스타인 조성진, 임윤찬의 공연 같은 ‘피케팅’(피 튀기는 티켓팅)이 벌어진다. 일부 관객들 사이에선 메켈레의 공연은 ‘합창석이 명당’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휘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쯤 하면 K-팝 스타급 열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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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과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한국경제신문 제공] |
유서 깊은 최정상 악단의 단원들은 다가올 미래를 함께할 젊은 지휘자는 여러 오케스트라를 홀렸다. 파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3초만 듣고 메켈레의 천재성을 알았다”고 했고, RCO 역시 지휘자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공연은 ‘젊은 거장’과 188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137살의 악단이 만들어갈 음악 세계의 미리보기인 셈이었다.
게르스타인과 메켈레는 2019년 오슬로 필하모닉에서는 물론 파리 오케스트라에서도 호흡을 맞췄으나, RCO와의 동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브람스가 청년 시절인 스물다섯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끓어오르는 브람스의 열정과 좌절, 숭고한 예술세계를 만들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강렬한 팀파니로 시작되는 1악장은 불협화음의 충돌로 음악을 빚었다. 각 악기군은 작은 소동을 일으키듯 때때로 어긋났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도 톱니처럼 맞물리진 않았지만 그 자체로 음악은 브람스의 내면 갈등과 투쟁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치열한 불협 사이로 피아노는 투명하고 청량한 사운드로 자기만의 오케스트라를 펼쳐냈다. 메켈레는 종종 게르스타인을 바라보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슈만이 죽은 뒤 클라라 슈만을 도와 함께 그의 집을 돌볼 때 쓰인 2악장은 서정의 극치를 들려준다. 애초 피아노 두 대를 위해 써진 이 악장에선 내내 감정을 억누르면서도 클라라 슈만을 향한 진심 어린 목소리가 게르스타인의 음색이 돼 노래했다. 카덴차에선 피아노가 트릴로 일렁이는 마음을 애틋하게 전했다. 3악장에 접어들어 피아노가 강렬하게 뚝 떨어지면 오케스트라가 묵직하게 이어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피아노도 오케스트라처럼 두터운 질감으로 표현하는 브람스답게 꽉꽉 채워진 묵직한 티키타카에 스리슬쩍 실리는 경쾌한 리듬감이 흥미로웠다. 메켈레가 이끄는 RCO와 게르스타인은 3악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연스러운 대화를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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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한국경제신문 제공] |
첫날 공연은 사실 셋의 만남보다 RCO의 역량이 잘 살아난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Orchestra)’이었다. 나치를 피해 고국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버르토크가 뉴욕에서 힘든 시간을 살아낼 때 쓴 곡이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이자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위촉해 태어난 이 곡은 오직 ‘오케스트라의, 오케스트라에 의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기존 심포니에선 찾아보기 힘든 출발이다. 더블 베이스와 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저음의 선율로 시작되는 1악장은 버르토크의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처럼 들린다. 하지만 향수에 젖는 것은 찰나. 음악은 이내 선율을 바꿔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며 생기를 새긴다. ‘바순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생동감 넘치는 음색으로 노래하는 바순을 비롯한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 이유’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메켈레는 버르토크의 이야기와 더불어 RCO의 강점을 속속 끄집어냈다. 때때로 메켈레는 무대 위 단원들의 연주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자유롭게 맡겼다. 그러자 음악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 저음 악기의 맹활약이 이어진 3악장 엘레지아를 지나자 4악장에서 만화경 속 세상처럼 찬란한 금관의 향연이 이어졌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인 ‘레닌그라드’를 조소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5악장에 이르면 역량의 대폭발이 일어난다. 까끌거리며 충돌하는 악기들의 생동감은 이 곡이 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인지를 증명한다. 최정상 악단의 면모가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에선 두 곡의 앙코르가 프로그램과 유기적인 연결을 만들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게르스타인의 앙코르는 슈만의 ‘꽃의 노래’. 협연자의 앙코르 중 놀랍도록 긴 시간을 할애했지만, 브람스 뒤로 찾아온 슈만은 안성맞춤이었다. 버르토크를 위로하는 2부의 앙코르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헝가리 만세’였다. 아직 충분히 합을 맞춰보지 않은 메켈레와 RCO는 종종 물음표를 남겼다. 메켈레가 추구하는 음악색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얼굴 가득 미소를 잃지 않고 모든 순간 황홀경에 빠진 채, 춤을 추듯 음악을 만들어가는 스물아홉 젊은 지휘자의 활력에 객석은 아낌없는 함성을 쏟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