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서울 광진구청장 10일 오후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소통하며 발전하는 행복광진 일꾼 김경호입니다‘ 책 출판기념회 개최...오세훈 시장, 김병민 정무부시장, 오신환 전 정무부시장 등 참석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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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이 김경호 광진구청장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하 말씀을 하고 있다. |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김경호 서울 광진구청장이 10일 오후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소통하며 발전하는 행복광진 일꾼 김경호입니다‘ 제목의 책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김 구청장의 북콘서트 형식의 출판기념회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 오신환 전 정무부시장(전 국회의원)과 서울시의원, 광진구의원, 그리고 지역 주민모임단체장 300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 축하했다.
특히 오세훈 시장은 축하말을 통해 “제가 10년 전(민선 4기) 시장 시절 서울 공기 질이 너무 좋지 않아, 하루만 와이셔츠를 입고 일 해도 컬러가 더러워질 때 서울시 공기질을 좋게 하기 위해 ‘맑은서울본부’를 만들어 맑은 서울 만들기를 추진할 때 주무과장이 김경호 구청장”이라고 소개했다.
또 “당시 서울시내 8000여대 디젤 버스를 CNG(천연가스) 버스로 3년내 교체했다”고 김 구청장의 업무 추진력을 칭찬했다.
또 “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지하철 공기질도 깨끗해졌다”며 “당시 김 과장이 3년만에 일을 해냈다”고 치켜세웠다.
오 시장은 “이런 김 구청장을 내가 광진구청장 후보로 추천해 당선시켰다”면서 “김 구청장 취임 당시 25개 서울 자치구 중 상업지역 면적이 23위였는데 이를 19위로 끌어올렸다”고 칭찬했다.
이어 “이처럼 김경호 구청장 취임 이후 광진구는 눈부신 변화가 있었다”며 “4년간 광진구민 행복도가 크게 늘었다”고 자랑했다.
오 시장은 “김 구청장은 일머리, 능력을 갖춘데 이어 겸손함까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 만들 때 반대자들이 많았지만, 현재는 연간 1500억원을 벌어들이는 효자라고 자랑했다.
청계천 만들 때, 한강르네상스 추진할 때, 한강 버스를 추진할 때도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성공하지 않았느냐며 일방적으로 반대만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오 시장은 종묘 앞 세운상가 개발도 결국 발목을 잡는데 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도 했다.
특히 한강버스는 재운항 1주만에 2만여명이 타면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10만~20여만 명이 타게 되면 결국 비판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오 시장은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다면서 광진구민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겠다고 마무리했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김경호 광진구청장은 일을 정말 잘하면서 구민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구청장이라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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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호 광진구청장(오른쪽) 북콘서트 |
‘착실부장’이라 불리던 소년에서 영등포구청 건전생활과장, 그리고 광진구청장까지 소통하며 발전하는 행복광진 광진구청장 김경호의 인생 이야기 지금의 김경호를 만든 30년을 회고해본다
이 책은 광진구 구청장 김경호의 이야기다. 그가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구청장 직통문자’로 들어온 민원을 살펴보는 것이다. 광진구는 일하기 좋고(職), 살기 좋고(住), 쉬기 좋은(樂) 직주락(職住樂)이 어우러진 도시, 그것이 바로 ‘행복광진’이 그리는 미래이다. 40년 전에는 중곡, 구의 지역 모두가 국민주택단지로 형성돼 서울시에서 각광받는 주거지였다.
‘2040 광진 재창조 플랜’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은 미래먹거리 창출을 통한 산업 구조 혁신이다. 광진구의 모든 정책과 사업은 궁극적으로 국민 한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소통’이다. 광진구 구청장 김경호는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사장과 30년의 서울시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체감했다. 그래서 오늘도 ‘소통’에 진심이고 일 잘하는 구청장으로서 기억되기 위해 더 소통하고 늘 배우려고 한다. 공직자의 기본 소양 중에서 청렴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그는 생각한다. 청렴은 주민들에게는 신뢰를, 직원들에게는 자부심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1959년 겨울, 김경호는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접정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각각 영광 김가와 김해김가 출신이다. 아버지는 9남매의 맏이, 어머니는 8남매의 맏이셨다. 그는 일곱 살이 될 무렵, 아버지가 경찰관 시험에 합격하시고 해남경찰서에 발령받기 전까지 고향에서 자랐다. 어릴 적 집에는 삼촌, 고모, 외삼촌, 이모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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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호 광진구청장 출판기념회 참석자와 기념 촬영 |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김경호의 철학 한 마디,
“내가 하는 일로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남으로 이사한 후 아홉 살에 해남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해남동초등학교 1학년 때 실시된 학력평가 시험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여 학교 어린이 신문에 소개된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경찰지서로 발령 나셔서 한 달간 어란초등학교에 다녔다. 이후 아버지의 근무지가 송지면 산정리 산정지서로 바뀌면서 2학년은 그곳에서 마쳤다. 아버지를 따라 3학년 때 해남동초등학교로 다시 전학하여 제61회 졸업생이 된 뒤 해남중학교에 입학했다. 광주 사레지오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와 함께 서울의 학원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예비고사 성적에 따라 전남대학교에 진학했다. 1982년 5월 아버지가 훈련받으셨던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기초훈련을 이수했다. 후반기 교육은 부산의 병기학교 옆 병참학교에서 받았다. 1986년 행정고시 1차 시험, 1987년 2차 및 3차 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에는 과천에 위치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1년여의 연수를 받았다. 강동구청에서 현장 연수를 마치고 영등포구청 건전생활과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공직생활 중에 아버지 말씀을 명심하여 인사를 잘했는데 그 덕에 승진이 빨랐다. 구청 홍보지를 만들면서 소통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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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 기념회 인파 |
‘DMC 개발사업’, ‘버스 준공영제 정착’ 등 굵직한 정책을 이끌어온 엘리트 행정 관료출신, 자원 순환 정책의 출발점으로 쓰레기 분리배출 제도를 도입하다!
숨 쉬는 도시, 맑은 서울을 만들다!
서울국제불꽃축제를 기획하다!
소비자 피해 신고 및 구제 시스템을 강화하다!
광진구의 새 역사, ‘종합청렴도 1등급’ 달성하다!
난지도 매립지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재민에게도 재해 구호기금을 사용하게 되었다. 쓰레기 종량제는 1995년부터 전국 시군구로 확대 실시되었다. 1998년 8월에는 서울시 산업경제국 소비자보호과장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물가정보시스템을 구축했다. 2000년 1월에는 서울시 문화관광국 문화월드컵 기획담당관으로 서울국제불꽃축제를 기획했다. 2001년 6월부터 2003년 6월까지 미국에 유학했다. 2001년 9월 오리건 주 유진 시에 위치한 오리건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졸업논문은 서울의 쓰레기 분리수거 정책을 주제로 정리했다. 그 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스크린도어 확대 설치, 오세훈 시장의 결정으로 8년 만의 국장 승진,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협동조합택시, 따릉이, CCTV 설치 확대와 신호체계 최적화, 광진구정 3년의 성과 등등이 있다. 오세훈 시장과의 인연은 2006년부터다. 오세훈 시장의 1호 공약인 ‘대기질 개선사업’의 담당 실무자였다. 구민으로서 광진구 사정을 잘 아는 오세훈 시장이 광진구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광진을 함께 바꿔보자’고 해 출마하게 됐다. 구민들께서도 저를 광진구를 변화시킬 적임자로 봐주신 것에 감사하며 오로지 광진의 발전을 위해 일할 생각이었다. 광진구에서는 문화예술과 생활체육, 평생교육 등 구민의 삶을 채워줄 수 있는 여가를 제공하기 위해 ‘문화교육국’을 신설했다.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과 함께한 ‘능동로 패션 페스티벌’은 청년들의 감각과 실험정신이 담긴 무대였다. 광진구 재개발을 가로막던 접도율 제한이 4m에서 6m 이상으로 완화되었다.
2024년 1월 1일부터 기존의 ‘생활쓰레기 격일 수거제’에서 ‘생활쓰레기 주 6일 수거제’로 개편했다. 광진구는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2024년도 ‘제14회 어린이 안전대상’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