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한국형 원자력 잠수함 건조지역 대립
수십년 숙원 ‘원잠’ 승인에도 장소 줄다리기
의견 조율에 팩트시트 발표도 늦어져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한국형 원자력 잠수함(원잠) 건조 장소를 두고 한·미 정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국내 잠수함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국내 건조 원칙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 및 학계 의견도 원잠에서 시작해 경항모까지 군함 산업을 키우려면 시설 투자부터 국내에서 시작해 건조를 완료하는 게 적절하다는 쪽으로 모인다. 다만 일각에선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려면 필리조선소 건조로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건조 방침을 최우선으로 세우고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리조선소를 원잠 건조지로 언급했지만, 필리조선소에 잠수함 건조 관련 기반 시설이 전무해 원잠 건조에 긴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직후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한미 양국 관세 협상 설명자료 ‘팩트시트’ 발표가 지연되는 것도 건조 장소에 대한 의견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국내 건조가 적절하다는 뜻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한국이 이미 원잠 건조를 위한 기술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만큼 해외 건조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국내에 기술과 설비가 이미 갖춰져 있다”며 국내 건조가 합리적이라고 단언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 필리조선소 건조 시 최대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현실적으로 국내 인프라를 활용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잠은 국내에서 건조하되, 필리조선소는 미국 원잠 구성품을 생산하는 시설로 확장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계에선 ‘한국형’ 원잠 건조가 미국에서 이뤄질 경우 한미 조선협력 자체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측이 얻는 실익이 지나치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미국에서 원잠을 지으려면 결국 국내 인력이 가야 하는데, 국내 조선소에 일할 사람이 남지 않는다”며 “미국 원조를 위해 우리 잠수함 건조 생태계를 마비시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미국 잠수함과 한국 잠수함은 운용 개념부터 다르다”며 “미국은 고농축 우라늄을, 한국은 저농축 우라늄을 쓰기 때문에 호환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필리조선소가 미국 방위사업체로 지정되면 미국이 전 단계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며 “자주국방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이 원잠 확보라는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한 만큼, 건조 장소 문제는 향후 한미 협의 과정에서 신중히 다뤄질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한국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원잠 기술을 축적하고 있어, 미국에서 우라늄 공급만 받아 건조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인 것은 맞다”면서도 “미국도 자국 조선·함정산업 재건이라는 전략적 목적이 있는 만큼, 건조 장소는 양국 간 세부 협의를 통해 조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의견 역시 미래 조선산업 경쟁력을 위해 국내서 건조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인다. 한국형 원잠 규모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업계선 최소 5000톤(t)급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국내엔 아직 이 정도 규모의 잠수함을 지을 시설이 없어 결국 한국에서 건조하더라도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이미 잠수함 건조 경험이 있는만큼 국내 투자가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엔 이미 잠수함 인프라가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공장만 지으면 된다”며 “미국의 경우 잠수함 공장부터 부가 설비, 기자재 협력까지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십년 숙원 ‘원잠’ 승인에도 장소 줄다리기
의견 조율에 팩트시트 발표도 늦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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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한국형 원자력 잠수함(원잠) 건조 장소를 두고 한·미 정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국내 잠수함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국내 건조 원칙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 및 학계 의견도 원잠에서 시작해 경항모까지 군함 산업을 키우려면 시설 투자부터 국내에서 시작해 건조를 완료하는 게 적절하다는 쪽으로 모인다. 다만 일각에선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려면 필리조선소 건조로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형 원잠 韓·美 어디서…정부는 ‘한국 건조’ 강경
1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건조 방침을 최우선으로 세우고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리조선소를 원잠 건조지로 언급했지만, 필리조선소에 잠수함 건조 관련 기반 시설이 전무해 원잠 건조에 긴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직후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한미 양국 관세 협상 설명자료 ‘팩트시트’ 발표가 지연되는 것도 건조 장소에 대한 의견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국내 건조가 적절하다는 뜻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한국이 이미 원잠 건조를 위한 기술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만큼 해외 건조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국내에 기술과 설비가 이미 갖춰져 있다”며 국내 건조가 합리적이라고 단언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 필리조선소 건조 시 최대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현실적으로 국내 인프라를 활용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잠은 국내에서 건조하되, 필리조선소는 미국 원잠 구성품을 생산하는 시설로 확장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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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 Ⅲ Batch Ⅱ 1번함 장영실함(3600톤급).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방위사업청 제공] |
“한미 잠수함, 운용 개념부터 달라” vs. “이미 수십년의 숙원 풀어”
학계에선 ‘한국형’ 원잠 건조가 미국에서 이뤄질 경우 한미 조선협력 자체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측이 얻는 실익이 지나치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미국에서 원잠을 지으려면 결국 국내 인력이 가야 하는데, 국내 조선소에 일할 사람이 남지 않는다”며 “미국 원조를 위해 우리 잠수함 건조 생태계를 마비시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미국 잠수함과 한국 잠수함은 운용 개념부터 다르다”며 “미국은 고농축 우라늄을, 한국은 저농축 우라늄을 쓰기 때문에 호환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필리조선소가 미국 방위사업체로 지정되면 미국이 전 단계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며 “자주국방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이 원잠 확보라는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한 만큼, 건조 장소 문제는 향후 한미 협의 과정에서 신중히 다뤄질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한국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원잠 기술을 축적하고 있어, 미국에서 우라늄 공급만 받아 건조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인 것은 맞다”면서도 “미국도 자국 조선·함정산업 재건이라는 전략적 목적이 있는 만큼, 건조 장소는 양국 간 세부 협의를 통해 조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미 건조시 천문학적 투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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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로스엔젤레스급(6900t급) 핵추진잠수함(SSN) 아나폴리스함이 2023년 7월 제주해군기지에 군수적재를 위해 입항한 모습. [헤럴드DB] |
조선업계 의견 역시 미래 조선산업 경쟁력을 위해 국내서 건조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인다. 한국형 원잠 규모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업계선 최소 5000톤(t)급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국내엔 아직 이 정도 규모의 잠수함을 지을 시설이 없어 결국 한국에서 건조하더라도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이미 잠수함 건조 경험이 있는만큼 국내 투자가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엔 이미 잠수함 인프라가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공장만 지으면 된다”며 “미국의 경우 잠수함 공장부터 부가 설비, 기자재 협력까지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