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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채무상환자에 ‘금리 덤터기’…포용금융의 역설

취약계층대상 금리 등 혜택 확대에
주요 은행서 금리 역전현상 나타나
“신용점수 높은데 금리도 더 높아”
‘저소득=저신용’ 아닌데 시장선 혼란


“신용은 경제생활을 하면서 돈을 빌린 후 약속한 기한에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금융거래에서는 신용이 특히 중요한데, 신용도에 따라 은행이 빌려주는 돈의 크기와 이자가 달라지게 된다. 신용도는 부채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상환 실적과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금융위원회는 어린이 누리집에서 ‘신용’에 대해 이같이 설명한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이자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이자로 돈을 빌리는 구조가 금융시장의 기본 원칙이자 순리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은행권에서는 신용점수가 높은 대출자에게 신용점수가 낮은 대출자보다 더 높은 금리가 적용되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이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저소득·저신용자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성실하게 돈을 갚으며 신용을 관리해 온 금융소비자에게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행이 이자수익 방어를 위해 고신용자 가산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선한 의지의 정책이 금융시장의 기본 질서를 흔들 경우 포용금융의 그늘이 짙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17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 9월 신규취급액을 기준으로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SC제일은행, iM뱅크 등에서 가계대출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일단 신한은행의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신용점수 601~650점 대출자 금리는 평균 연 7.72%로 600점 이하 대출자 금리(연 7.49%)보다 0.23%포인트 높았다.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도 601~650점 금리가 각각 평균 연 6.19%, 연 4.85%로 600점 이하 금리(연 5.98%, 4.80%)보다 높았다. iM뱅크의 경우 601~650점 대출자와 600점 이하 대출자의 금리 격차가 3.54%포인트에 달하기도 했다.

나이스(NICE) 신용평가를 기준으로 한 IBK기업은행의 신용점수별 금리를 봐도 601~650점 대출자에게 연 5.13%를 적용했는데 이는 600점 이하 대출자(연 4.73%)보다 0.4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701~750점 대출자의 금리가 평균 연 4.36%로 751~800점 대출자 금리(연 4.41%)보다 0.05%포인트 낮았다.

통상 신용점수가 높을수록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는 게 일반적이지만 중하위권 점수대를 중심으로 이례적인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은행이 최근 정부의 포용금융 주문에 따라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금융 상품을 중심으로 가산금리는 낮게, 우대금리는 높게 조정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러한 금리 역전 현상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데 있다.

정부는 핵심 경제정책으로 생산적 금융과 함께 포용 금융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향후 5년간 포용금융에 약 7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6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금융을 꼽고 “현재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금융계급제가 아니냐. 이를 해결하라”고 언급했다. 앞서 지난 9월 “고신용자의 대출 금리를 높여 저신용자의 대출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 데 이어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부과하는 구조를 바꾸라는 신호를 재차 보낸 셈이다.

이 대통령의 주문은 경제적 약자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전반적으로 공감되는 분위기이지만, 실제 시장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금융 시스템 자체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서민 금융 안정을 꾀하는 ‘묘수’를 좀더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신용점수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낮은 소득을 신용과 연결시킴으로써 저소득과 저신용, 고소득과 고신용이 동일시되는 시장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용점수는 주로 개인의 부채 상환 이력과 부채 수준, 신용거래 기간, 신용 형태 등 금융활동에 기반해 산정된다. 소득과 저축성 금융자산 등은 비금융 성실납부실적과 함께 7% 안팎의 낮은 비중으로 반영되는데 그마저도 소득여부만 확인하는 등 보조자료로만 활용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신용점수 체계에서 소득 규모나 자산 수준은 신용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데 이번 금융계급제 언급과 관련해 ‘고신용자는 고소득자 또는 자산가’로 인식되는 부분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포용금융을 확장하는 정부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시장원리는 지키면서 금융 지원을 해야 한다”면서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계급제 발언은) 시장원리와 맞지 않다. 금융시장의 신용 평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리스크가 실물로 전이될 수 있다”며 “대출을 전반적으로 신용등급에 반해서 실행하게 되면 그 규모는 수백, 수천 조원인데 잘못되면 금융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은희·김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