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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비즈] 자사주 의무소각, 제도 균형으로 접근해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뜨겁다. 국회는 상장사가 취득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반드시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표면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자율성과 시장의 안정성, 나아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제도 변화다. 자사주 소각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주주환원과 경영자율, 이 두 가치의 균형에 있다.

자사주는 기업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것으로, 이는 자신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자 잉여현금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특히 시장이 불안정할 때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가를 안정시키고, 투자자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지 않고 수년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이후 코스피 200 기업 중 약 3분의 1이 자사주를 3년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채 때로는 사실상 ‘죽은 자본’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구조적 문제의식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출발했다.

그러나 자사주는 단순한 잉여자금 소진 수단이 아니라, 전략적 자산이기도 하다.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사주는 기업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우수 인재에 대한 성과보상, 인수합병 시 교환 수단, 시장 급락 시 주가 방어 등은 실제로 기업 경영에 필요한 전략적 도구다. 이런 기능까지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기업의 자본정책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

또한 자사주가 경영권 안정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체 수단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순환출자 해소와 의결권 제한 강화 등으로 이미 경영권이 상당히 취약해진 상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와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 확대 속에서, 자사주는 사실상 마지막 방어선으로 쓰이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러한 방어 수단을 전면적으로 제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인수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기 전에,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정한 경영권 분쟁 절차 확립, 장기투자자 보호 장치 강화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미국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지 않는다. 대신 SEC(증권거래위원회)는 자사주 매입 시기, 가격, 수량, 목적을 철저히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내부자 거래를 엄격히 규제한다. 일본 역시 2001년 상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 취득을 자유화하면서도, 보유 목적과 기한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들 국가는 강제보다 ‘투명성’과 ‘책임성’을 중심에 두고 있다. 즉, 핵심은 소각의무가 아니라 기업이 자사주를 왜,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구조다.

결국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는 단순히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충돌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균형의 문제다. 기업의 정당한 전략적 자율성을 보장하되, 투명한 공시, 명확한 목적 구분, 합리적 보유기간 설정, 그리고 실효성 있는 감독이 결합될 때 비로소 자사주 제도는 본래의 취지대로 작동할 수 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