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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이 마사아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왼쪽)이 18일 베이징에서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국장·맨 오른쪽)과 협의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중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중국의 일본에 대한 보복 조치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이런 조치가 대만에 대한 ‘선전전’ 성격을 띠는 상황으로 일본 정부로서는 장기 대치를 각오하고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일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중국의 모습은) 대만 문제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선전전’의 일환이라는 측면이 있고, 일본 정부는 사태의 장기화를 각오하면서도 냉정한 대응에 힘쓸 방침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중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한 뒤 ‘한일령’(限日令)으로 평가받는 보복조치가 본격화한 가운데 나온 분석이다.
중국 정부의 대일본 ‘실력 행사’는 지난 13일부터 단계적으로 본격화했다.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13일 심야에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했고, 이튿날인 14일에는 우장하오 주일 중국대사가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찾아가 항의 입장을 전했다.
중국은 두 번의 항의에 관한 보도자료에서 이례적으로 ‘지시를 받들어’(奉示)라는 표현을 삽입해 ‘윗선’의 의지가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관영 중국중앙TV(CCTV)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 ‘위위안탄톈’은 중국이 실질적 반격(反制) 준비를 마쳤다며 ‘대일본 제재’와 ‘양국 정부 간 교류 중단’을 중국의 대응 수단으로 꼽았고, 15일부터 ‘핀셋식 보복’이 시작됐다.
우선 중국 외교부는 15일 자국민에게 일본 방문 주의보를 발령했고,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중국동방항공·중국남방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은 일제히 일본행 항공편 무료 취소 지원에 나섰다.
16일에는 중국 교육부가 “최근 들어 일본 사회 치안이 불안하고 중국인을 겨냥한 위법한 범죄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중국 학생들이 일본 유학 계획을 신중히 세워야 한다고 공지했다.
또 17일에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와 ‘일하는 세포’ 등 중국 개봉을 앞둔 일본 수입 영화들의 상영이 잠정 중단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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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이 마사아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왼쪽)이 18일 베이징에서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국장·맨 오른쪽)과 협의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영상에는 류 국장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굳은 표정으로 가나이 국장을 내려다보고, 가나이 국장은 류 국장에게 고개를 숙인 듯한 모습이 담겨있다. [엑스(X·옛 트위터) 캡처] |
자국의 큰 시장 규모나 일본의 대중국 의존성을 이용해 일본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부문을 고른 셈이다. 당장 피해가 확인된 분야는 여행업계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일본 관광업계의 최대 시장이었고, 올해 1∼9월 일본 방문 중국인이 700만명을 넘어서며 관광객 수와 소비액 모두 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중국의 ‘일본 여행 자제령’ 직후부터 여행 취소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날까지 사흘 동안 중국발 일본행 항공권이 49만1000건 취소됐다고 전했다. 이는 전체 예매 건수의 32%에 달하는 수치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중국인 여행객 전문인 한 일본 여행사는 이달 하순부터 내달 초순까지 기업 단체 여행 일정 약 30건이 모두 중지됐으며 내년 1∼2월로 예정됐던 9개 팀의 일본 방문도 취소됐다고 밝혔다.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쉐젠 주오사카 총영사·8일)는 발언이나 “불장난을 하는 자는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외교부·13일), “위험을 무릅쓴다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국방부·14일) 등 중국 특유의 거친 언사가 여전한 가운데 일본 각 업계에 구체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치를 꺼내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대화 자리를 마련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국장)은 중국을 방문한 일본 외무성의 가나이 마사아키 아시아대양주국장과 이날 만남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류 국장이 이날 협의에서 가나이 국장에게 다카이치 총리의 대중국 부적절 발언과 관련해 다시 한번 엄정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마오 대변인에 따르면 류 국장은 이번 협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전후 국제 질서를 훼손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일 4개 정치문서 정신을 심각하게 위배해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발언의 성격과 영향은 극히 악질적이며, 중국 국민의 공분과 규탄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중국은 일본 측이 잘못된 발언을 즉각 철회하고, 대중 문제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를 중단하며, 실제 행동으로 잘못을 바로잡아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지킬 것을 엄중히 촉구했다”고 전했다.
마오 대변인은 또 브리핑에서 향후 중일 관계 전망을 묻는 중국중앙TV(CCTV) 기자의 질의에 “현재 중일 관계 상황은 다카이치 총리가 공개적으로 대만 관련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중국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일본 측은 즉각 잘못된 발언을 철회하고, 깊이 반성하며, 중국 국민에게 명확하고 책임 있는 설명을 내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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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쿄 아사쿠사 지역의 인기 관광지인 센소지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거닐고 있다. [로이터] |
일본 외무성은 협의 이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가나이 국장이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관의 ‘다카이치 총리 참수’ 극언에 대해 거듭해서 중국 측에 “매우 부적절하다”며 강력히 항의하고 적절한 대응을 조속히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 뒤 온라인상에는 류 국장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굳은 표정으로 가나이 국장을 내려다보고, 가나이 국장은 류 국장에게 고개를 숙인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확산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해당 영상이 관영 매체인 CCTV 계열 소셜미디어 계정 ‘위위안탄톈’에 게재됐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중국 측이 이 장면을 의도적으로 공개·유포한 것으로 추측됐다. 약 20초짜리 영상에서 류 국장은 시종 굳은 얼굴로 가나이 국장을 대했다. 가나이 국장은 고개를 숙인 채 류 국장의 발언을 듣는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후 맥락에 대한 언급이나 구체적인 내용 설명 없이 공개된 영상이기는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모습처럼 비칠 수 있는 장면인 셈이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한 일본 외무성 간부는 “이번 상황을 2012년 센카쿠 열도 국유화 이후 가장 격렬한 사태”며 “중국이 이번 사안을 철저히 물고 늘어지기로 작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총리를 지지하는 보수층이 강경한 대중 외교를 요구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중국에 긴장 고조의 구실을 주지 않으면서도,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는 이에 대해 “이는 일본 정부가 신중한 대응을 유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