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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보다 섬으로 돌진한 항해사…관제센터도 전혀 몰랐다 [세상&]

신고받고서야 좌초사고 발생 인지한 VTS
‘운항 소홀’ 일등항해사·조타수 긴급 체포
267명 승객 전원구조…“그래도 불안했다”

승객 246명과 승무원 21명 등 총 267명을 태운 퀸제누비아2호는 지난 19일 오후 8시17분께 전남 신안군 장산면 장산도 남방 족도에 좌초했다. [목포해경 제공]

[헤럴드경제=이용경·김아린 기자] 19일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대형 카페리 ‘퀸제누비아2호’ 좌초 사고 당시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항로 이탈 징후를 제때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항해사와 더불어 관제센터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21일 목포해경에 따르면 여객선은 사고 지점인 전남 신안군 족도(무인도)에서 약 1600m 떨어진 지점에서 통상 방향을 틀어야 함에도 해당 지점을 그대로 통과해 항로를 이탈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여객선은 족도에 정면충돌하듯 좌초했다.

사고의 1차 원인은 휴대폰을 보다 항로 변경 시기를 놓친 항해사에 있지만, 관제 시스템 또한 항로 이탈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해 사고 방지에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목포 VTS는 당시 여객선이 항로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제때 파악하지 못했고 좌초됐다는 사실도 사고 여객선의 일등항해사로부터 신고를 받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 수사팀은 여객선의 당시 속력(시속 40~45km)을 고려할 때 항로 이탈 지점에서 좌초 지점까지 약 2~3분가량 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좌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목포 VTS는 퀸제누비아2호의 항로 이탈을 인지할 수 있는 시점이 족도와 700~800m 가까워졌을 때이며 실제로 관제사가 항로 이탈을 인지할 수 있었던 시간은 1분에 불과했다고 해명했다. 관제사가 교신을 시도해도 충돌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수사팀이 밝힌 2~3분 거리의 항로 이탈 지점은 선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실제와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당시 사고 해역의 관제는 1명의 관제사가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관제사는 총 5척의 선박을 동시에 관리하며 항로를 벗어난 다른 선박을 집중 모니터링하던 중으로 조사됐다.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목포해경은 항해 기록장치(VDR)와 선박 안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를 보면서 여객선 운항을 소홀히 한 혐의(중과실치상)를 적용해 일등항해사인 40대 A씨와 인도네시아 국적 조타수 40대 B씨를 긴급체포해 수사 중이다. 사고 당시 조타실에 없었던 60대 선장도 형사 입건됐다.

해경 구조선에 탑승한 승객들(왼쪽). 좌초 후 흐트러진 여객선 내부(오른쪽). [이하나 씨 제공]

앞서 승객 246명과 승무원 21명 등 총 267명을 태운 퀸제누비아2호는 지난 19일 오후 8시17분께 전남 신안군 장산면 장산도 남방 족도에 좌초했다. 변침(방향 전환)구간에서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 통상적인 항로를 이탈하면서다. 출동한 해경은 구조본부를 가동하고 여객선 승객들을 경비함정으로 이동시키며 사고 발생 3시간10분 만인 오후 11시27분께 267명 전원을 구조했다.

당시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 중에서는 세월호 참사 등을 떠올리며 큰 불안감을 느꼈다는 경우도 많았다. 반년간 ‘제주살이’를 마치고 충남 천안으로 오르던 이하나(23)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씨는 사고 직후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는 선내 방송부터 ‘해양경찰을 불렀다’는 안내가 있기까지 30여분 동안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표현했다.

이씨는 헤럴드경제에 “여객선 측에서는 배가 좌초됐는데 침수된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며 “해경이 오면 차례대로 나갈 수 있으니 중요한 짐은 꺼내 챙겨두고 대기해달라고 했다”고 처음 사고를 인지하게 된 상황을 전했다.

어린이와 노약자 순으로 진행된 구조 작업은 마지막 승객을 경비함정에 태우기까지 3시간가량 걸렸다. 그날 오후 10시56분께 해경 구조선에 탑승한 이씨는 거의 마지막에 구조됐다. 그는 “계속 긴장한 탓에 온몸에 근육통이 있다”고 했다.

안내받은 호텔에 도착한 뒤에도 한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는 이씨는 “바다 한가운데서 사고가 나니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고 큰 공포가 엄습했다”며 “제주살이의 끝이 이럴 줄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이날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죽다 살아난 기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