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필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
한국에서 지난해 7월 약 4300개 모발이식
“30년 전의 나 되찾아…힐링 콘서트 원동력”
한국에서 지난해 7월 약 4300개 모발이식
“30년 전의 나 되찾아…힐링 콘서트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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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의 모발이식 전후 [베를린필, 명지병원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은은한 금빛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두피를 빽빽하게 채운 건강한 머리카락은 따뜻한 오보에 선율과 함께 눈부시도록 반짝였다. 수많은 ‘오보에 키즈’를 탄생시키며 현재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오보이스트’로 꼽히고 있는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그 어느 때보다 “무대 위에서 자신감을 되찾는 경험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른바 빅오케스트라 ‘서울 대전’ 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베를린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60)가 최근 의외의 곳에서 목격됐다. 지난 7~9일까지 이어진 베를린필의 서울 공연 하루 전날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1층 로비에서다.
그는 이날 베를린의 비올라 수석 연주자 아미하이 그로스(46)와 함께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힐링 콘서트’를 가졌다. 마이어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아리아를, 그로스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비올라로 들려줬다 두 사람은 아렌트 흐로스펠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함께 하프시코드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도 들려줬다. 그는 “병원 로비라는 공간 특성상 30분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 구성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사흘간 이어진 베를린필의 공연을 앞두고 그가 굳이 명지병원까지 찾은 데엔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마이어가 20년 넘게 인연을 맺은 황성주 명지병원 모발센터장이 제안해 이 공연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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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 공연에서의 알브레히트 마이어(첫 줄 오른쪽) [빈체로 제공] |
마이어는 클래식 애호가인 황성주 센터장과의 오랜 인연으로 지난해 7월부터 명지병원에서 약 4300개의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흉부외과 의사이자 음악 평론가인 유정우를 통해 시작됐다. 마이어는 ‘힐링 콘서트’ 전날에도 명지병원에서 모발이식을 받았다.
마이어는 “아마도 10명 중 9명의 남자는 모발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며 “아내와 딸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베를린필에서 모발이식을 한 단원을 보고 그 역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럼에도 모발이식은 꽤 망설여지는 선택이었다. 그는 “20년간 황 박사를 알고 지낸 인연이 아니라면 섣불리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에 오가며 한국 사람들은 매우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이어는 연주 일정차 보통 한국에 2년에 한 번꼴로 오고 있다. 모발이식을 시작한 이후로는 더 자주 찾는다.
현재 3~4차례 이식을 받은 그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특히 한국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국내 종합병원에서 모발이식 센터가 있는 곳은 명지병원이 유일하다. 마이어는 “한국에 올 때 외부의 시선을 고려해 머리를 밀지 않고 시술하는 비절개 방식을 선택했더니 시술 이후 통증이 거의 없다”며 “가족들은 있는 그대로도 좋다고 했지만, 내겐 30년 전의 나 자신을 회복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의 아내도 “최고의 환갑 선물”이라며 병원에서의 힐링콘서트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마이어는 “몸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로 이어졌고, 그 회복의 감정을 음악에 담아 환자들에게 희망으로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번 힐링 콘서트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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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와 비올라 수석 연주자 아미하이 그로스의 힐링콘서트 리허설 [명지병원] |
마이어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마주한 그로스 역시 탈모 치료를 시작했다. 마이어는 “외모가 완벽한 것보다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자기관리가 중요하다”며 “체중 감량은 생활 습관을 바꾸면 되지만, 탈모는 건강 관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마이어에게 병원에서의 공연은 그리 생소한 일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알브레히트 마이어 시각장애인 재단’을 운영, 다양한 자선공연을 하고 있다. 이 재단은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아 시력을 잃은 친구를 위해 설립한 재단이다. 그는 “나 역시 망막색소변색증을 앓고 있다. 야맹증이 있어 시야가 어둡지만 낮에는 정상 시력이라 생활에 문제가 없다”며 “망막색소변색증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을 위해 15년째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음악을 통한 회복의 감정을 환자들에게 희망으로 전하는 것”이다.
마이어는 1990년 밤베르크 심포니 수석 오보에 연주자로 경력을 시작, 2년 뒤인 27살에 베를린필 수석 오보이스트로 입단했다. 이 자리를 30년 넘게 지켜온 그는 오케스트라는 물론 솔리스트를 꿈꾸는 ‘오보에 연주자’들의 꿈이자 롤모델이다. 특히 베를린필하모닉이 운영하는 2년 과정의 관현악 연주자 양성 기관인 카라얀 아카데미를 거친 한국인 연주자들은 한결같이 “알브레히트 마이어가 나의 우상”이라고 말한다. 한이제 도이치오퍼 부수석은 “마이어가 있어 카라얀 아카데미로 선택하게 됐다”고 했고, 현재 카라야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정성경은 “옆에서 연주하는 것만 봐도 배우는 것이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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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 [명지병원 제공] |
마이어는 “최근 5~10년 사이 한국 출신 연주자들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베를린필과 카라얀 아카데미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입단한다”며 “특히 내게 오는 한국인 학생들은 상당히 많은데 다들 굉장히 실력이 뛰어난 여성 연주자들”이라고 했다. 그는 “두려움을 주는 방식보단 동기부여를 통해 잠재력을 꺼낼 수 있는 레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무대 위의 모든 순간에 그가 늘 0순위에 두는 것은 청중이다. 마이어는 “음악가는 청중에게서 받는 긍정적 에너지로 살아간다. 우리가 관객에게 행복감을 주면 그들의 행복한 에너지가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며 “그래서 음악가에겐 늘 청중이 필요하고, 음악을 통해 행복을 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물론 독주자와 실내악 연주자, 지휘자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온 그는 “다음 생에는 오직 지휘자로 살고 싶다”며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