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금산분리 빗장 완화’ 시사에도
주무부처 공정위는 “최후의 수단” 신중론
해외선 대규모 금융·산업 융합 투자 쇄도
한국선 금산분리의 벽 막혀 실현 불가능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발전 막아”
주무부처 공정위는 “최후의 수단” 신중론
해외선 대규모 금융·산업 융합 투자 쇄도
한국선 금산분리의 벽 막혀 실현 불가능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발전 막아”
![]()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인공지능(AI) 협력 확대 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은희·김벼리·유혜림·고은결 기자] “736조원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한국선 꿈도 못 꾼다?”
빅테크의 ‘기술’과 세계적 금융사의 ‘자본’이 결합해 AI(인공지능)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따른다. 금융 계열사를 활용한 대규모 자금 조달은 물론 기업 주도의 초대형 펀드 조성·운용이나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확대 등도 금산분리라는 ‘빗장’으로 잠겨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에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AI 등 첨단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법 개정 주도권을 쥔 공정거래위원회가 ‘최후의 수단’이라는 신중론을 제기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모양새다.
정작 현장에서는 전 세계가 AI 생태계 구축에 혈안이 돼 있는 지금이야말로 공정위가 말한 ‘극약 처방’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치열한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대규모 투자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 산업과 금융의 전략적 융합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24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하는 규제로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82년 도입됐다.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불공정 거래를 일으키는 것을 막고 산업 부실이 금융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금산분리는 금융 안정과 공정 경쟁을 위해 꼭 필요한 규제였고 그간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 |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금산분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빠른 기술 발전과 글로벌 금융환경의 변화 속에서 금산분리는 혁신과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산업과 금융의 융합을 막아 AI, 핀테크 등 신산업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고 금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금융과 산업이 손잡고 AI 등 첨단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다. 차세대 AI를 구동하기 위한 인프라 시설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공·민간 협력 사업으로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소프트웨어·클라우드 기업 오라클을 비롯해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SBG) 등이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4년간 최대 5000억달러(약 736조원)를 투자해 미국에 10GW 규모의 AI 연산 인프라를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지난해 9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4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펀드를 조성했다. 다양한 국적의 기업과 금융사가 펀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메타는 지난달 사모펀드 블루아울캐피털과 27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개발 합작투자 계약을 맺었고, 인텔도 최근 경영난에 부닥친 뒤 아일랜드 반도체 공장 건설을 위해 아폴로자산운용으로부터 약 110억달러를 투자받았다. 인텔의 경우 앞서 지난 2022년 향후 10년 동안 유럽연합(EU)에 800억유로(약 135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투자다. 기저에는 금산분리가 있다.
![]() |
최근 재계가 앞장서서 금산분리 완화를 요청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에서 출발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기업성장포럼에서도 “각 나라가 과거에 보지 못한 수준의 숫자를 AI에 쏟아붓고 있다”며 “필요한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거듭 호소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AI 분야에 한해 금산분리 등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며 재계의 목소리에 호응했으나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정부의 금산분리 검토 움직임을 ‘민원성 논의’라고 꼬집었고 “금산분리 완화는 최후의 수단으로 다른 대안이 있다면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AI 사업 분야는 막대한 투자금이 뒷받침돼야 국내의 우수한 기술과 인력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며 “글로벌 빅테크, 정부 지원을 받는 해외 기업과 경쟁하기엔 기업 혼자만의 힘으로 역부족이다. 기업과 정부가 한 몸으로 AI 리더십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도 “기업이 성장하려면 AI 역량을 키워야 하고 AI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면서 “각종 규제로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금산분리 규제 등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도 산업자본이 금융을 활용해 상생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목적에 한해서라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현재 시장에서 요구하는 금산분리는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산업자본이 금융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적 여지를 허용하자는 취지”라며 “고정된 기계적 숫자 규제는 시대에 뒤떨어진다. 포용금융·생산적 금융·불평등 완화 등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업 영역이라면 지분 보유나 비금융 진출에 유연하게 룸(여유)을 열어주는 완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술 변화가 금융 구조를 바꾼 만큼 제도·정책도 현실에 맞게 재설계해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아날로그 시대엔 통제가 어려워 금산분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기술로 언제든지 들여다보고 실시간 감독할 수 있는 시대”라며 “침대의 길이에 맞게 사람 다리를 잘랐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멈춰 있는 규제는 시장 발전과 역동성만 막는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기술 전환에 맞춰 제도와 정책도 재설계돼야 경제가 성장하고 수요자·소비자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