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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사용자성 확대 이후…현장은 이제 ‘교섭단위 전쟁’ 시작된다

원청 사용자성 확대에 맞춘 절차 첫 완비
교섭요구 시점·단위설정 불확실성 줄여...정보 비대칭·교섭 부담 증폭
전문가 “20일 내 판단 현실적 한계…다단계 업종은 구조적 복잡성 커질 것”

노란봉투법의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중소기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 자동차 공장의 쟁의 모습. [헤럴드]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내년 3월 10일 개정 노동조합법(노조법) 2·3조 시행을 앞두고 24일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원·하청 교섭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내용이다.

법은 원청 사용자성을 대폭 확장하는 원칙을 세웠고, 시행령은 그 원칙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절차적 기반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독자적인 교섭창구를 구성할 수 있게 되면서, 노사관계 흐름이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교섭단위 분리 기준 첫 명문화…하청노조, 원청 교섭권 보장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교섭단위 분리’다. 그동안 하청노조가 원청과 실질적 교섭에 나서기 어려웠던 이유는 구조적 제약에 있었다. 원청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했고,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은 자동적으로 ‘창구단일화’ 절차가 적용되면서 원청노조 중심으로 단일창구가 구성됐다. 이 틀 안에서 하청노조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새 시행령은 이 구조를 전제로 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다른 통로를 열었다.

하청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 사업장에서도 기존과 동일하게 창구단일화가 적용되지만, 필요할 경우 노동위원회가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는 기준을 명문화한 것이다. 정부가 시행령 제14조의11 제3항에 신설한 이 기준은 그동안 판례와 실무에만 흩어져 있던 요소들을 법령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용노동부 제공]

노동위원회는 ▷근로조건·직무·조직범위의 차이 ▷노조 간 이해관계의 공통성 또는 충돌 가능성 ▷특정 노조가 다른 노조의 이익을 적절히 대표할 수 있는지 여부 ▷분리된 단위의 독자적·안정적 교섭 가능성 ▷당사자 의사와 기존 교섭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섭단위를 나눌 수 있다.

이 기준이 실제로 적용되면, 교섭 구조는 ‘원청단위 창구단일화→교섭단위 분리 신청→노동위 판단→하청 노조의 독자 교섭창구 구성’이라는 흐름으로 재편된다. 하청노조가 그동안 원청노조 뒤에 묶여 교섭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던 구조적 한계를 처음으로 제도적으로 해소하는 절차가 마련된 셈이다.

실무적으로 가장 큰 쟁점은 하청노조가 원청에 교섭요구를 언제부터 할 수 있는지 여부다. 현행 시행령 제14조의2는 단체협약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유효기간 만료 3개월 전’부터 교섭요구를 허용한다.

단, 원청노조와 교섭 단위 분리를 한 하청노조는 원청과 단체협약 자체가 없기 때문에, “교섭요구의 기준시점이 없다”는 해석부터 “기존 창구단일화 시점을 준용해야 한다”는 해석까지 혼선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원청노조와 교섭단위 분리를 통해 독자 교섭창구를 갖게 되는 하청노조는 기존 단체협약이 없기 때문에 내년 3월 10일 시행과 동시에 교섭요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사용자성 판단 절차도 강화됐다. 노동위원회의 판단 기한은 기존 ‘10일 이내’에서 ‘10일+추가 10일(1회 연장)’로 현실화됐고, 원청의 실질적 지배·결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직권조사도 법적 근거가 명확해졌다.

‘정보 비대칭’과 상급단체 의존 심화 가능성

개정안은 원·하청 교섭의 법적 구조를 정비하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교섭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지적되는 대목은 정보 비대칭 문제다. 개별 하청노조는 교섭 전략을 세우는 데 필요한 정보가 제한적이다.

어떤 기준으로 교섭단위를 구성해야 하는지, 직무·직군별 임금 수준을 어느 범위에서 제시해야 하는지, 유사 업종의 교섭·협약 사례가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는지, 쟁의 대응 전략이나 관련 판례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등 실무 판단에 필요한 기준을 갖추기 어렵다. 교섭 의제별로 복잡한 분석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보 부족은 곧 협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는 다르다. 전국 단위의 교섭 데이터, 직무·직군별 임금 기준표, 업종별 교섭사례, 쟁의 대응 매뉴얼 등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교섭 구조가 세분화될수록, 정보·전략이 많은 상급단체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비가맹 하청노조의 양대노총 가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노동계와 재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노동계는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권이 처음으로 절차화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창구단일화가 기본 원칙으로 남아 있어 소수노조 의견 반영이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재계는 원청의 교섭 부담이 급증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조선·물류·자동차 등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많은 업종에서는 한 사업장에서 수십 개의 교섭단위가 동시에 운영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노동위원회 역시 사용자성 판단과 교섭단위 분리 심사 업무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하도급 많은 업종 교섭요구→판단→분리 심사 반복…초기 혼란 불가피”

대다수 전문가들은 초기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지침과 매뉴얼에서 공고 범위·방식, 의제별 사용자성 기준 등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보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하청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은 이를 공고해야 하는데, 공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어떤 방식으로 하청들에게 통지해야 하는지부터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노동위원회의 판단 절차와 관련해서도 “사용자성 여부 판단과 교섭단위 분리 심사를 각각 20일 안에 처리하도록 한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실질적 지배·결정 여부를 노무·법률 전문가의 도움 없이 짧은 기간 안에 정리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교섭구조가 세분화되면 개별 하청 의제가 어디까지 원청 사용자성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복잡해질 수 있다”며 “특히 자동차나 조선·물류처럼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많은 업종에서는 교섭 요구 공고→거부 여부 판단→교섭단위 분리 신청→노동위 심사 등 절차가 반복되며 기업과 노동위가 모두 과부하를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 역시 시행령·시행규칙만으로는 현장의 혼란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연말까지 ▷사용자성 판단 기준 지침 ▷노동쟁의 대상 범위 지침 ▷원·하청 교섭절차 매뉴얼 등 3종의 세부 지침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교섭 현장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쟁점을 중심으로 추가 사례를 담아 실무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